머스크·하팍로이드 각각 1·2위···HMM과 격차 벌려
초대형 선박 비중 높고 태평양 노선 쏠림 현상 원인
해운사 면책 조항, 피해는 고스란히 화주에게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HMM이 지난 4월 글로벌 12대 컨테이너 선사 중 정시운항률 ‘꼴찌’를 기록했다. 글로벌 해운사들이 ‘허브앤스포크’ 전략을 통해 항만 체류 시간을 단축하고 정시율을 높이고 있는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화주들만 피해 본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가운데 HMM이 뒤처진 정시율을 극복하지 못하면 향후 물동량 확보에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함께 나온다.
14일 덴마크 해운조사기관인 ‘이시(eeSea)’에 따르면 HMM의 지난 4월 정시운항률은 10%인 것으로 나타났다. 12개 선사 중 최하위다. 10척 중 1척만 정해진 일정을 지켰다는 의미다. 경쟁사인 머스크가 1위를 차지했으며, 하팍로이드가 2위, 완하이가 3위로 뒤를 이었다.
특히 머스크는 지난해 4분기 46%였던 정시운항률을 4월 57%까지 끌어올리며 꾸준한 상승세를 보였다. 하팍로이드 역시 26%에서 43%로, 완하이는 24%에서 42%로 급격한 상승을 이루며 항로 최적화의 성과를 입증했다.
제미나이 협력사인 머스크와 하팍로이드는 주요 항로를 세 곳의 허브 항만에 집중시키는 ‘3 STOP 전략’을 도입하면서 물류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허브앤스포크 전략의 핵심은 항만 밀집도를 높이고, 물류 흐름을 최적화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항만 회전율이 빨라졌고 정시성이 크게 개선됐다는 분석이다.
반면 HMM은 글로벌 12대 선사 중 유일하게 정시운항률 10%에 머물고 있다. 경쟁사들이 항만 밀집도와 회전율을 개선하며 정시성을 극대화하는 동안, HMM의 항만 체류 시간은 오히려 길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HMM 측은 “정시성 개선을 위해 내부적인 노력도 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외부적인 요인이 크다”고 했다. HMM 관계자는 “미중 관세 문제와 전쟁 이슈로 인해 미국 항로의 물동량이 급감하면서 항차 조정이 불가피했다”고 했다. 특히 HMM이 속한 신규 해운동맹 ‘프리미어 얼라이언스’는 태평양 노선의 비중이 높고, 북유럽 및 대서양 항로와 달리 항만 혼잡이 빈번해 정시성에 불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와 더불어 일부 전문가들은 HMM의 구조적 문제를 지목하고 있다. 특히 초대형 컨테이너선 비중이 높다는 점이 정시성 확보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는 평가가 나온다. HMM이 보유한 컨테이너의 32%가 1만8000TEU급 이상의 초대형 선박이다. 초대형 선박은 만선을 채우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항만 체류 시간도 길어지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구교훈 한국국제물류사협회 회장은 “HMM의 초대형 컨테이너선은 코로나 시기에는 강점이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독이 되고 있다”며 “2만4000TEU를 가득 채우려다 보니 항만 체류 시간이 길어지고, 고정 화주가 적다 보니 선적 속도도 느리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경쟁사들은 1만~1만3천 TEU 정도만 채우면 되기 때문에 훨씬 빠르게 항차를 돌린다”며 “HMM의 현재 구조는 향후 물동량이 줄어들면 더 큰 부담이 된다”고 덧붙였다.
피해는 온전히 화주들에게 돌아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시성을 맞추지 못해 화주들이 약속된 시점에 물건을 받지 못하면서 글로벌 공급망에 혼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해운사는 이러한 지연에 대한 법적 배상 책임이 거의 없다. 헤이그 비스비 규칙에 따라 불가항력적 상황에서 해운사는 면책 조항을 적용받는다. 태풍·항만 파업 같은 돌발적 요인은 물론, 항만 혼잡이나 항차 조정으로 발생한 지연 역시 해운사의 과실로 간주하지 않는다. 통상 화주와 해운사 간의 운송 계약서인 ‘B/L’에도 ‘정시 도착 보장’이 아닌 ‘ETA(예상 도착 시간)’만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
한 물류업계 관계자는 “물류 일정이 지연되면 이는 모두 화주의 추가 비용으로 이어진다”면서 “특히 대기업에 비해 장기계약이 어렵고 협상력이 떨어지는 중소기업은 최악의 경우 계약 취소·거래 중단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장기적으로는 HMM도 피해를 볼 수 있다. 일각에선 향후 컨테이너 공급이 넘치는 ‘빙하기’가 오면 정시성이 높은 제미나이 협력사나 값싼 운송료를 무기로 한 대형 해운사에게 물동량을 뺏길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 회장은 “HMM이 현재처럼 정시성을 개선하지 못하면 글로벌 화주들의 신뢰를 잃을 수밖에 없다”며 “특히 대형 화주들은 안정적인 공급망을 원하기 때문에 정시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다른 선사로 이탈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이에 HMM은 정시 운항률을 높이기 위해 노선 다변화 전략을 지속 추진하겠단 계획이다. 회사는 올 초 대서양과 인도~유럽 구간에서 새롭게 컨테이너 서비스를 시작했다. HMM 관계자는 “프리미어 얼라이언스 체제에선 미주 노선 비중이 높아 미중 관세 전쟁에 따른 물동량 감소 영향을 크게 받는다”면서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했다. 회사 측은 신규 노선 운영이 안정화하면 정시성도 개선될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