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e=김희진 기자] 은행권에 잇따라 터지고 있는 부당대출, 횡령 등 일련의 금융사고를 보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머릿속을 스친다. 이미 사고가 터진 후에야 내부통제 시스템 강화에 나서며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행태를 보며 뒤늦게 수습에 나선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 탓이다. 내부 직원이 연루된 부당대출 사건과 심사과정의 허점은 은행의 기본적인 관리 체계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드러냈다.

은행의 대출 업무는 단순한 돈 거래가 아니다. 고객의 신용과 은행의 리스크 관리가 맞물려 돌아가는 정교한 시스템이어야 한다. 하지만 연이은 금융사고들을 보면 그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심사 과정에서 조작된 서류가 걸러지지 않았고 내부 직원이 개입한 정황까지 나왔다. 은행 내부자가 대출 시스템을 잘 알고 있는 만큼 부당대출을 계획적으로 실행하면 외부 감시망을 피하는 것도 상대적으로 쉽다. 결국 내부통제가 허술하면 같은 사고가 반복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은행의 내부감사 시스템이 이런 문제를 사전에 잡아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많은 은행이 내부감사를 운영하고 있지만 사고가 터지고 나서야 움직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실질적인 감시 기능보다는 형식적인 절차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는 의미다. 내부고발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직원들이 내부 문제를 제보할 수 있도록 창구가 마련돼 있지만 제대로 활용되는 경우는 드물다. 내부고발자가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는 불신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은행들이 사고 수습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예방 체계를 마련해야 할 때다. 단순히 감사 인력을 늘리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활용해 의심스러운 대출 패턴을 감지하는 기술적 보완이 필요하다. 또한 내부고발자가 사내 암묵적 불이익을 피할 수 있도록 보호 조치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은행은 고객의 신뢰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곳이다. 하지만 이런 부당대출 사고가 계속되면 신뢰는 바닥을 칠 수밖에 없다. 금융당국도 사후 처벌만 할 게 아니라 은행들이 엄격한 내부통제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정기적인 점검에 나서야 한다. 이번 사고를 단순히 일부 은행에 속한 직원의 일탈 정도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내부통제가 부실하다면 언제든 비슷한 사고가 재발할 수 있다. 이제는 ‘사고 수습’이 아니라 ‘사고 예방’에 초점을 맞춰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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