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등 국내 주요 기업,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 10%대 머물러
남성 육아휴직 의무제 도입 필요성 대두
"지원 미비한 기업, 인재 확보 어려워질 수도"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국내 주요 기업들이 올해부터 시범 시행된 ‘워라밸 공시’ 제도에 적잖은 부담을 느끼고 있다. 특히 남성 육아휴직률을 포함한 육아휴직 사용 현황을 의무적으로 공개해야 하면서 기업들의 가족 친화 정책이 실질적으로 얼마나 실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평가가 본격화하고 있다.
◇ 여전히 갈 길 먼 ‘남성 육아휴직’ 문화
최근 공시한 지난해 기업들의 사업보고서를 보면 ‘육아휴직과 단축근무 사용률 공시항목’이 새로 생겼다. 국내 거래소에 상장한 기업은 올해부터 직원의 육아휴직 사용률을 남녀로 나눠 의무적으로 공개해야 하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일과 가정을 모두 균형 있게 유지할 수 있도록 기업들이 얼마나 배려하고 있는지를 누구든지 알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시가총액 1위 삼성전자는 육아휴직 사용률이 여성의 경우 97.8%, 남성의 경우 13.6%를 기록했다. 남성의 유아휴직 사용률은 2022년 8.3% 2023년 12.2%, 2024년 13.6%로 꾸준히 상승했다.
이차전지 제조업체 LG에너지솔루션의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은 22.7%로 집계됐다. 여성은 89.6%로 10명 중 1명꼴로 육아휴직을 썼다. 국내 1위 철강업체 포스코는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이 16.9%, 여성은 93.1%를 기록했다. 포스코의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은 전년(8.9%) 보다 8%P 올랐다.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여성 육아휴직 사용률은 90∼100%에 달하는 데 반해 남성의 경우는 여전히 대체로 10~20%대에 머문다는 점이다. 꾸준히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남성 사용자수가 증가하고 있지만, 여성에 비해선 한참 모자라는 수치다.
◇ 남성 육아휴직 의무제 도입 기업 ‘고작 4%’
최근 발표된 ‘2025 인구경영 우수기업 기초평가’ 결과에서도 국내 기업들의 출산·육아 지원 정책이 여전히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 결과를 통해 육아휴직 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기업들의 대응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비영리 민간 연구기관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한미연)이 공개한 평가 결과에 따르면 국내 주요 300개 기업 중 남성 직원의 육아휴직 사용을 의무화한 곳은 12개(4%)에 불과했다.
특히 이 중 9개가 롯데그룹 계열사였고 나머지는 한미글로벌, 한국콜마홀딩스, 코스맥스비티아이였다. 지난해보다 3개 기업이 늘긴 했지만 여전히 남성 육아휴직이 보편적인 기업 문화로 자리 잡기에는 갈 길이 멀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업들이 남성 육아휴직을 적극 권장하지 않는 이유는 ▲업무 공백에 대한 부담 ▲승진·성과 평가에서의 불이익 우려 ▲조직 내 문화적 장벽 등이 꼽힌다.
한 제조업 인사담당자 나 모(35) 씨는 “제도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실제 사용을 권장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라며 “기업들이 단순한 법적 준수를 넘어 육아휴직을 실제로 장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어린이집 운영도 안 해···‘출산·육아 지원’ 손 놓는 기업들
직장 내 어린이집 운영 비율도 줄어드는 추세다. 한미연 연구 결과에 따르면 법적 설치 의무(여성 근로자 300인 이상 또는 전체 근로자 500인 이상)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249개 기업 중 55개 기업이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었다.
어린이집을 운영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설치 및 운영에 드는 비용이 과태료(연 최대 1억 원)보다 크기 때문이다.
기업으로서는 단기적으로 비용 절감이 가능하지만, 직원들의 출산·육아 부담을 고려하면 오히려 장기적인 인재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워라밸 공시는 기업들의 인사 정책이 단순한 ‘복지 차원’을 넘어 기업 가치 평가의 중요한 척도가 될 것임을 보여주는 신호”라며 “관련 지원이 미비한 기업은 자연스럽게 ‘가족 친화적이지 않은 기업’으로 낙인찍혀 우수 인재 확보에도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