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주주총회서 ‘수소 사업’ 추가
단순 확장 아닌 체질 전환 의지 담겨
정부 지원 힘입어 성장 가능성.
막대한 초기비용 부담 ‘변수’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건설업계 1·2위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이 신사업 확장에 적극 나서는 모양새다. 특히 이달 정기주주총회를 통해 정관을 변경하고 수소 사업을 공식적으로 추가할 계획이다. 건설업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수소 사업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삼성물산, 국내외 수소 거점 확보에 속도
4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물산은 오는 14일 정기주주총회에서 ‘수소 발전 및 관련 부대 사업’을 정관의 사업 목적에 추가하는 안건을 의결할 예정이다. 현대건설 역시 20일 열리는 정기주주총회에서 ‘수소에너지 사업’을 정관에 추가하는 내용의 정관 변경 안건을 상정한다. 정관에 수소 관련 사업을 추가한다는 결정은 일시적 사업 확장이 아닌 회사 체질 자체를 전환한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두 회사 모두 기존의 플랜트 사업 역량을 활용해 수소 생산, 저장, 운송 인프라 구축을 선점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삼성물산이 정관에 수소 사업을 추가하는 건 에너지 전환 핵심으로 떠오른 수소 시장 진출을 본격화하기 위해서다. 삼성물산은 국내외에서 수소사업 확대를 위해 보폭을 넓히고 있다. 지난해 8월 호주 청정 에너지 기업 DGA 에너지솔루션스와 그린수소 공동 개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으며, 호주 크로스번시 항구 지역에 그린수소 생산 시설을 구축해 2026년 연간 최대 300톤 그린수소를 호주 내수 시장에 공급할 계획이다.
특히 오만에선 일본 마루베니와 오만 국영에너지회사(OQ),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코(Dutco)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살랄라 H2 그린암모니아 프로젝트’에 대한 사업권을 확보했다. 이 프로젝트는 오만 남부 항구도시인 살랄라 무역지대에 연간 100만톤 규모의 그린암모니아를 생산하는 사업이다. 태양광과 풍력 등 대규모 신재생 발전단지를 조성하고 OQ가 보유한 암모니아 플랜트를 활용해 그린암모니아를 생산한다. 2027년 착공해 2030년부터 생산에 나선다. 생산된 그린암모니아는 한국과 일본 등 글로벌시장으로 수출돼 무탄소 청정에너지 전력생산에 활용될 전망이다.
국내에선 경북 김천시에 국내 최초로 외부에서 에너지를 받지 않고 직접 생산하는 ‘오프 그리드’ 태양광 발전 그린수소 생산 설비를 구축하고 있다. 해당 시설은 김천 태양광발전소와 연계해 신재생에너지로만 매일 0.6톤의 그린수소를 생산하고 저장, 운송할 수 있는 인프라다. 또한 한국수력원자력, 두산에너빌리티와 협력해 소형모듈원자로(SMR) 및 대형 원전을 활용한 청정수소 생산 인프라 구축을 추진 중이다. 이를 통해 하루 4톤 이상의 청정수소를 생산·저장·출하할 수 있는 시설을 2027년까지 구축할 계획이다. 삼성물산은 수소 생산부터 저장, 운송, 활용까지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하며 글로벌 청정수소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키운다는 방침이다.
삼성물산은 올 초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U&I사업부(건축·토목) ▲개발주택사업부 ▲하이테크사업부 ▲에너지솔루션사업부 ▲신성장사업부 5개 사업부로 조직을 정비했다. 특히 에너지솔루션 사업부엔 전력·신재생·원전 사업본부를 두고 수소 사업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또한 올해 수소 등 신사업 수주 목표를 1조7000억원으로 설정했다. 이는 작년(7000억원)보다 1조원 늘어난 규모로 수소 사업을 핵심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대건설, 그룹 시너지로 수소 밸류체인 확장
현대건설이 수소에너지 사업에 진출하는 건 현대자동차그룹 수소 밸류체인 확장 전략과 맞물려 있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24조3000억원 국내 투자 중 상당부분(11조5000억원)을 전동화와 함께 수소 시스템에 투자하며 친환경 미래 기술 개발에 주력할 계획이다. 아울러 기존 전통적 건설 역량에 치중된 사업 환경을 개선하겠다는 의지도 담겼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연결 기준 영업손실이 1조2209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현대엔지니어링이 수주한 해외 대형 프로젝트에서 발생한 대규모 손실을 반영한 결과다. 현대건설이 적자 전환한 건 23년 만이다.
현대건설은 수소 인프라 구축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현재 국내 최대 규모 수전해 기반 수소 생산 기지를 전북 부안에 건설 중이다. 올해 5월부터 본격적인 생산을 시작한다. 이 시설은 2.5MW 용량 전기로 하루 1톤 수소를 생산할 수 있다. 수소는 부안군 내 수소 연구 시설 및 수소 충전소에 공급돼 부안군 수소 도시 구축 사업 핵심 인프라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또한 한국수력원자력과 협력해 원전에서 생산된 전력을 활용한 ‘핑크수소’ 생산기지 구축에도 나서고 있다. 핑크수소는 원자력 발전으로 생산된 전기를 이용해 물을 분해해 만든 수소를 말한다. 생산과정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 에너지로 주목받고 있다. 여기에 충주에선 폐기물 기반 수소 생산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해당 사업은 음식물 쓰레기, 하수슬러지 등 유기성 폐기물을 활용해 바이오가스를 생산하고 이를 정제해 수소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현대로템과 함께 바이오가스를 활용한 수소 생산·실증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하루 60톤의 폐기물을 활용해 500kg 규모의 수소를 생산하고 수소차까지 통합적으로 상업 운영된다.
◇정부 ‘수소경제 활성화’ 수혜 기대
정부는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핵심 에너지원으로 수소를 지목하고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과 ‘수소경제 육성 및 수소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제정을 통해 2050년까지 청정 수소 생산량을 연간 2700만톤으로 확대하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에 따라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이 추진하는 수소 생산 및 저장, 운송 사업도 정책적 수혜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수소 사업이 생산·저장·운송 인프라 구축 등에 막대한 초기 비용이 투입된다는 점은 변수로 꼽힌다. 업게 관계자는 “수소 플랜트 건설과 관련한 기술적 난이도가 높고, 장기적인 사업 수익성이 아직 명확하지 않다는 점에서 기업들의 재무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며 “두 기업이 지속적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사업성을 검증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글로벌 시장에선 이미 미국, 유럽, 일본 등 주요 기업들이 수소 사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와 기술 개발을 진행 중이다”며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추가적인 연구개발(R&D)과 기술 협력을 강화하고 수소 생산방식과 저장·운송 기술 등에서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