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 공모, 삼우·희림 등 대형사 총출동
특수채 5000억 발행···토지 보상에 활용
“토지소유주 70% 협의···거주민 이주가 관건”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전경 / 사진=시사저널e DB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서울 강남 한가운데 대규모 판자촌인 구룡마을이 개발 궤도에 오른 모양새다. 설계 공모와 보상 절차를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며 속도를 내고 있다. 다만 지장물 보상과 주민 이주 문제 등은 변수로 꼽힌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이 발주한 ‘개포 구룡마을 개발사업’ 설계 공모에는 국내 내로라하는 설계사들이 총출동했다. 삼우건축사사무소, 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 포스코이앤씨건축사사무소, 디에이그룹엔지니어링종합건축사무소 에이앤유디자인그룹건축사사무소 등 17개 업체가 공모에 참여했다. 강남의 마지막 판자촌이라는 상징성을 갖춘 데다 수주에 성공할 경우 설계사의 주요 포트폴리오가 될 수 있는 만큼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구룡마을은 강남 최대 판자촌이다. 전체 면적만 26만7466㎡로 축구장 40개 크기에 달한다. 이곳은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서울 곳곳이 개발되며 쫓겨난 철거민들이 이주해 형성됐다. 1989년 양재대로 개통으로 주변과 단절됐고 불법 무허가 건축물이 늘어나 주거환경이 급격히 악화했다. 지금도 판잣집이나 비닐하우스로 만들어진 집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개선 필요성이 꾸준히 대두돼 2011년 민간 개발이 시도되기도 했지만 무산됐고 2016년부터 SH공사가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하며 다시 개발에 나섰다. 지난해 5월 최고 35층, 3520가구 규모 아파트 단지로 개발하는 계획이 발표되며 사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공모안에 따르면 구룡마을 도시개발사업의 공동주택 건설 용지는 6개 블록으로 주상복합용지(F1·F2) 2개 블록, 공동주택용지(M·B1·B2·B3) 4개 블록이다. SH공사는 4개 블록(F1·M·B2·B3)을 직접 개발하고 2개 블록(F2·B1)은 매각해 민간 건설사가 개발하게 할 계획이다. 개발을 통해 공공임대 1896가구, 공공분양 1031가구, 민간분양 960가구 등 3887가구를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당초 개발계획보다 367호 증가한 규모다. 2029년 준공 목표다. 

이번 설계 공모는 SH공사가 직접 개발할 4개 블록(2927가구)에 대한 구체적인 설계안을 제출하는 게 핵심이다. 설계비는 155억원으로 책정됐다. 설계사는 기존에 마련된 토지이용계획을 바탕으로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설계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다. SH공사는 오는 3월 21일 공모안 접수를 마감한 뒤 기술검토, 작품 심사 등을 거쳐 31일 당선작을 발표할 예정이다.

보상 작업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SH공사는 올해 특수채 5000억원을 발행해 구룡마을 판자촌의 보상비로 투입할 계획이다. 지난해 발행액 6100억원과 견줘 18% 감소했다. 특수채 발행은 공기업이나 특정 법인이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발행하는 채권이다. 쉽게 말해 SH공사가 일반 투자자들로부터 돈을 빌리겠다는 약속으로 채권을 발행하고 나중에 이자와 함께 갚는 구조다. 이런 방식은 정부의 예산 지원을 기다리지 않고 필요한 자금을 직접 조달할 수 있어서 사업을 빠르게 진행하는 데 도움을 준다.

구룡마을은 주변 개포동 재건축 아파트들의 잇따른 입주로 땅값이 크게 상승해 보상액도 늘어났다. SH공사에 따르면 구룡마을 용지비는 1조2456억원으로 추정됐다. 2022년 탁상감정(현장 조사 없이 전산 등을 통한 평가)으로 추산된 7300억원에 비해 5156억원 증가한 규모다. 전체 용지비 중 토지보상비는 1조1043억원이다. 구룡마을 토지 소유주는 231명으로 1인당 평균 보상액이 44억원으로 알려졌다. SH공사는 올해 상반기 중 보상 절차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SH공사에 따르면 현재 토지 소유주 약 70%와 보상 협의를 마친 상태다. 나머지 미협의 토지 소유에 대해선 공탁 절차를 통해 보상을 진행할 계획이다. 다만 토지 소유주와 별개로 비닐하우스 등 지장물(개발을 위해 철거해야 하는 간이 건물)에 거주하는 대상자들에 대한 보상과 이주 문제는 남은 과제로 남아 있다. SH공사 관계자는 “토지보상은 순조롭게 진행 중이나 실제 거주민들의 이주가 관건이다”며 “주민들과의 원활한 협의를 통해 상반기까지 보상 절차를 마무리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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