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BAL0891 바실리아로부터 기술 도입
韓·美서 임상 1상 전개···약 500억원 연구비 확보
베이진서 BAL0891 병용임상 약 무상 지원 '청신호'
[시사저널e=최다은 기자] 신라젠이 진행성 고형암 대상 표적항암제 개발을 고도화하고 있다. 펙사벡 임상 3상 실패를 만회할 카드로 키우겠다는 의지다. 면역항암제 개발에 전문 역량을 갖췄던 신라젠이 표적항암제로 R&D(연구개발) 시야를 넓히면서 그에 따른 기술이전 가능성에 업계의 이목이 쏠린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신라젠의 고형암 대상 표적항암제 ‘BAL0891’ 임상 1상 연구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스위스 바젤에 본사를 둔 글로벌 제약사 베이진으로부터 항암 치료제를 무상 지원받아 BAL0891과 병용 임상을 진행할 수 있게 되면서다.
신라젠의 주요 신약 파이프라인은 신장암, 흑생종, 전립선암 타깃의 면역항암제 ‘펙사벡(Pexa-Vec)’, 전임상을 완료한 고형암 타깃 면역항암제 ‘SJ-600’ 시리즈, 진행성 고형암 타깃의 표적항암제 BAL0891가 있다.
이중 BAL0891은 2022년 9월 스위스 바실리아로부터 기술 도입한 물질이다. 유사분열 체크포인트 억제제(MCI)로 계열 내 최초 물질로 개발 중이다. 현재 고형암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1상이 전개되고 있다. 신라젠은 BAL0891을 고형암뿐만 아니라 급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를 대상으로 추가 연구도 염두하고 있다.
2006년 설립된 신라젠은 국내 1세대 바이오텍으로 2016년 12월에 기술특례상장으로 코스닥에 입성했다. 이후 주력 파이프라인 펙사벡(Pexa-Vec)을 앞세워 주목받았다. 그러나 2019년 8월 간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펙사벡 글로벌 임상 3상에서 미국 독립데이터모니터링위원회(DMC, Independent Data Monitoring Commitee)로부터 ‘임상중단’ 권고를 받았다.
펙사벡 3상 중단으로 상장 후 9만원까지 치솟았던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2020년 5월에는 신라젠 경영진이 펙사벡의 임상 중단 사실을 사전에 알고 주식을 매도하는 등 배임 및 횡령 혐의를 받으면서 주식거래가 정지됐다. 2022년 1월 한국거래소 기업심사위원회로부터 ‘상장 폐지’가 결정됐다. 그러나 코스닥시장위원회에서 신라젠의 상장 폐지가 아닌 6개월의 개선 기간을 부여했다.
이 기간 신라젠의 최대주주는 엠투엔으로 변경됐다. 든든한 새 주인을 맞으면서, 신라젠은 R&D 역량 강화와 경영 정상화에 사활을 걸었다. 특히 거래 재개를 위해 펙사벡 연구에만 올인했던 파이프라인을 다양하게 구성할 필요가 커졌다. 3상 단계에서 임상 중단 위기를 겪은 만큼, 신약 개발 실패 리스크를 분산시켜야 한다는 거래소와 시장의 요구가 높아지면서다.
결과적으로 신라젠은 2022년 10월 거래 재개에 성공했다. 또 2022년 9월 바실리아로부터 확보한 BAL0891 임상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됐다. 업계는 신라젠이 펙사벡, SJ-600 Series과 같은 면역항암제(항암 바이러스) 위주의 파이프라인에서 표적항암제로 시야를 확장한 데에 의미가 있다고 보고 있다.
신라젠 관계자는 “BAL0891은 바실리아로부터 기술 도입할 당시 비임상시험을 통해 뛰어난 효능 데이터가 확보됐다”며 “해외에서도 주목받은 파이프라인이었던 만큼 상업 가치가 높다고 판단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3월에는 대규모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추진하며 자본조달을 단행했는데, R&D 자금의 절반 이상은 BAL0891 개발에 투입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신라젠이 BAL0891을 핵심 파이프라인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시 신라젠은 1300억원 규모로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 유상증자를 신청했다. 투자설명서를 통해 밝힌 자금 활용 계획에 따르면 주요 파이프라인 연구개발비로 펙사벡에 77억원, BAL0891에 574억원, SJ-600 시리즈에 170억원을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최종 발행가액이 1차 발행가액 대비 낮아지면서 유증 규모는 1031억원으로 줄어들었다. 다만 전체 조달액에서 R&D에 투입되는 자금 비중은 유증을 추진했던 방향대로 유지할 방침이다.
신라젠 관계자는 “처음 구상했던 것보다 유증으로 확보된 자금 규모가 낮아진 것은 맞지만, 전체 조달 금액에서 R&D 쓸 자금 비중에는 큰 변함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추가 조달한 연구개발비에서 절반 이상은 BAL0891에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신라젠은 2019년 간암 환자 대상의 펙사벡 3상 임상을 중단한 뒤, 신장암·흑색종·전립선암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재개했다. 현재는 펙사벡과 리제네론의 면역항암제 ‘리브타요(성분 세미플리맙)’ 병용 투여 임상 2상 결과를 바탕으로 기술이전을 모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