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회사 전환 과정서 사업회사 주가조종해 이익 얻은 혐의
회장 차명계좌로 '시세조종'한 재무·회계 실무진만 유죄 판결
전문적이고 조직적 범행 아니라 무죄?···검찰 항소로 재판 계속

/ 사진=한일홀딩스 홈페이지 갈무리
/ 사진=한일홀딩스 홈페이지 갈무리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허기호 일가가 보유하게 될 한일홀딩스 지분율 50% 이상을 확보하기 위한 동기가 있었고 (중략) 자신의 차명계좌의 자금으로 한일시멘트 주식을 매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는 한다.”(서울서부지법 2021고합472 사건, 허기호 한일홀딩스 회장 판결문 109면)

지주회사 전환 과정에서 사업회사의 주가를 조종해 120억원에 달하는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 등으로 수년간 재판을 받아온 허기호 한일홀딩스 회장이 1심에서 사실상 무죄 판결을 선고받았다. 허 회장의 차명계좌로 시세 조종성 거래를 한 재무·회계 임원들이 유죄를 선고받은 반면, 정작 일가가 지주회사 과반의 지분율을 확보하고 막대한 이익을 취했다는 허 회장 본인은 시세조종 관련 형사책임을 면했다.

허 회장의 동기가 의심된다고 봤던 1심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하게 된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허 회장 1심 판결문을 톺아봤다.

국내 ‘시멘트 업계 1위’ 한일시멘트의 시세조종 의혹은 2018년 7월1일 지주회사 전환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일시멘트는 기업지배 구조의 투명성과 기업가치를 높인다는 목적 아래 한일홀딩스(분할 존속회사)와 한일시멘트(분할 신설회사)로 인적분할했다. 지주회사인 한일홀딩스는 사업회사의 관리 및 투자를 담당하고, 사업회사인 한일시멘트는 기존의 시멘트, 레미콘, 레미탈 사업 부문을 영위해 전문화 제고를 꾀했다.

관건은 한일홀딩스의 한일시멘트 지분 비율이었다. 인적분할 전 한일시멘트 주식은 허 회장이 10.11%(최대주주), 20명의 특별관계인이 46.19%, 한일시멘트가 자기주식 8.06%를 갖고 있었다. 한일홀딩스는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승인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한일시멘트의 주식을 더 확보할 필요성이 있었다.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설립요건, 특히 ▲지주비율(지주회사가 소유하고 있는 자회사의 주식가액 합계액이 지주회사 자산총액의 100분의 50 이상)과 ▲지분율 요건(사업회사 발행주식총수의 100분의 20 이상으로 소유)을 충족해야 했다.

이에 한일홀딩스는 한일시멘트 주주를 상대로 한일시멘트 주식을 공개 매수하되, 공개매수에 참여한 주주들에게 그 대가로 한일홀딩스 신주를 교부하는 내용의 ‘공개매수 및 현물출자 방식의 신주발행’을 진행했다. 결과적으로 한일시멘트 공개매수가는 15만4350원으로, 한일홀딩스의 신주발행가격은 5만9227원으로 정해졌다. 최종적으로 신주의 교환비율은 2.6:1로 정해졌다(한일시멘트 1주당 한일홀딩스 2.6주).

‘공개매수 및 현물출자’ 완료 후 한일홀딩스에 대해 허 회장은 22.91%를, 특별관계인은 65.56%의 지분을 갖게 됐다. 한일시멘트에 대해 한일홀딩스는 최대주주로서 34.63%의 지분을, 한일홀딩스 및 공개매수에 참여하지 않은 11명의 특수관계인은 합계 55.37%의 지분을 갖게 됐다.

◇ 한일시멘트 주가, 공개매수 가격 산정기간 31.5% 올라···교환비율은 2.1→2.6주로 상승

문제는 15만4350원으로 산정된 한일시멘트 공개매수 가격이었다. 재무·회계 임원들이 허 회장의 차명계좌를 통해 공개매수 가격 산정기간(2018년 8월10일부터 9월7일) 동안 한일시멘트 주식을 사들인 결과다. 8월13일까지 12만원 안팎이던 한일시멘트 주가는 8월14일부터 상승해 9월7일에는 16만7000원까지 상승했다. 임원들의 주식매수 기간 한일시멘트 주가는 31.5% 상승(12만7000원→16만7000원)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후 한일시멘트 주가는 공개매수가격 산정 다음 거래일인 9월10일부터 하락해 10월23일 다시 12만원대로 돌아갔다.

검찰은 차명계좌를 통한 시세조종성 거래가 있었고, 그 목적은 허 회장 일가의 한일홀딩스 지분율 증가를 위한 것이라고 봤다. 일반적으로 인적분할 이후 지주회사 주가는 하락하고 사업회사 주가는 상승하는데, 공개매수 시 소액주주의 참여율은 저조한 반면 대주주는 공개매수에 적극 참여해 결과적으로 대주주가 보유했던 사업회사 지분율보다 높은 지주회사 지분율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한일시멘트 주가가 상승하지 못했고, 공개매수 가격 하락에 따른 지주회사 지분율 상승이 크지 못할 것이라 예상한 피고인들이 한일시멘트 주가를 인위적으로 상승시켰다는 게 공소사실 요지다.

검찰에 따르면, 전아무개 한일홀딩스 대표이사 부사장은 김아무개 한일시멘트 부사장과 함께 2018년 8월 중순 재무·회계 임원 신아무개씨, 한아무개씨 등에게 ‘2018년 8월21일부터 허기호 차명계좌 자금을 이용해 한일시멘트 주가를 인위적으로 상승시킬 것’을 지시했다.

이에 신씨는 공개매수가격 산정기간 중인 2018년 8월21일~9월7일 337회에 걸쳐 4027주의 고가매수 주문과 566회에 걸쳐 1986주의 물량소진 주문을, 19회에 걸쳐 799주의 종가관여 주문을 제출했다. 한씨는 공개매수가격 산정기간 중인 2018년 8월21일~8월23일까지 10회에 걸쳐 3890주의 고가매수 주문, 4회에 걸쳐 900주의 물량소진 주문 및 1회 10주의 종가관여 주문을, 2018년 8월24일~9월7일 134회에 걸쳐 6910주의 고가매수 주문과 221회에 걸쳐 3653주의 물량소진 주문을 제출했다. 한일시멘트 임원 출신이자 협력사 임원인 김씨도 2018년 8월27일 아내 명의의 계좌를 통해 시세조종성 주문을 했다.

검찰은 한일시멘트 주식 공개매수가격 주가조작으로 공개매수가격이 12만6550원에서 2만7800원오른 15만4350원으로 결정됐으며, 신주 교환비율은 주가조작이 없었을 경우 2.1주보다 높은 2.6주로 책정됐다고 봤다. 허 회장이 한일시멘트 주식 41만9204주를 한일홀딩스에 현물출자한 결과 주가조작이 없었을 경우보다 19만6766주 더 많은 한일홀딩스 신주 109만2475주를 교부받았다고 결론내렸다. 검찰이 산정한 부당이득액은 총 122억원(허 회장의 한일홀딩스 주식 무상취득액 115억여원+시세조종 계좌의 한일시멘트 주식의 시세차익에 따른 부당이득액 6억여원)이다.

◇ 시세조종 한 재무·회계 임원들 징역형 집유···“허기호 위해 범행”

김 부사장과 신씨, 한씨의 허기호 회장 차명계좌를 통한 한일시멘트 주식매수는 시세조종으로 인정됐다. 변호인들은 단순히 물량확보와 시세차익을 얻기 위해 주식을 정상 매집한 것이라고 항변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건을 심리한 서울남부지법 형사14부(재판장 장성훈 부장판사)는 피고인들이 단지 물량확보 목적만을 갖고 주식을 매수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량 매도 주문으로 주가가 하락하는 경우 대량 매수 주문을 제출해 주가 하락을 방지하려거나, 단주 매수 주문을 많이 제출하는 등 시장의 관심이 높아진 것으로 보이게 하려는 태양을 보였다는 것이다. 종가에 영향을 미치려 한 주문도 있었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주식매수는 자본시장법에서 규정한 ‘매매가 성황을 이루고 있는 듯이 잘못 알게 하거나 그 시세를 변동시키는 매매’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라고 밝혔다.

범죄의 인식에 대해서도 “피고인들은 한일시멘트의 지주회사 설립 프로젝트를 담당하면서 인적분할 후 공개매수 및 현물출자에 대한 전반적인 절차를 알고 있었고, 공개매수가격이 한일시멘트와 한일홀딩스 주식의 교환비율과 허기호 등 대주주의 지분율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자세히 알고 있었다”면서 “허기호를 위해 공개매수 가격을 높게 산정하기 위해 한일시멘트의 주가를 상승시키거나 하락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고 보인다”라고 판단했다. 이어 “나아가 이러한 목적은 다른 목적과의 공존 여부나 어느 목적이 주된 것인지 문제 되지 않고, 미필적 인식만 있으면 족하다”면서 “피고인들에게 매매를 유인할 목적에 대한 미필적 인식은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다”라고 밝혔다.

양형에 대해서는 “지주회사 전환 절차 전반에서 회사의 핵심 구성원이자 실무진으로서 시세조종의 영향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 범행에 나아갔음에도 이 사건 범행을 부인하며 반성하지 않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들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 전문적이지 못한 시세조종이라 무죄?···검찰은 항소

허기호 회장에 대한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허 회장의 시세조종 동기가 의심된다면서도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증명이 부족하다고 봤다.

일반적으로 사업회사의 소액주주들은 공개매수에 참여하지 않는 경향이 있고, 대주주는 공개매수에 참여해 지주회사 신주를 교부받으므로 대주주의 지주회사에 대한 지분율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며, 설령 지분율이 한일홀딩스를 지배하기에 다소 부족했더라도 이 사실만으로 시세조종의 동기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차명계좌를 통한 주식매수에 대해서도 차명계좌 6개 중 4개만 활용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만약 인위적으로 한일시멘트 주가를 높이려는 의도가 있었다면, 나머지 계좌도 활용해 더 쉽게 공개매수가격을 상승시킬 수 있었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재판부는 한일홀딩스 주식을 매수하고, 한일시멘트 공개매수가격이 산정된 후 한일홀딩스 신주발행가격 산정기간에 한일홀딩스 주식을 매도하는 방법으로 한일홀딩스 신주발행가격을 낮춰 교환 비율을 높이는 더 효율적인 방법도 있었다고 했다.

허 회장이 전문적인 주가조작 업체를 통하거나 한일시멘트의 협력업체들을 통해 더 전문적이고 조직적으로 한일시멘트 주가를 부양하지 않은 점도 허 회장에게 유리하게 봤다. 이밖에 차명계좌 자금으로 한일홀딩스 주식을 매수해 본인의 우호지분으로 활용하는 법 등 한일홀딩스 지배력을 높이는 다른 방법도 있었다고 봤다.

실무진들의 시세조종과 허 회장의 공모관계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시세조종 행위를 할 것을 계획했다면 이 사건 범행보다 더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시세조종 행위를 할 것을 지시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그러면서 허 회장의 시세조종 및 사기적 부정거래로 인한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특히 재판부는 허 회장의 배임 혐의에 무죄를 선고하면서, 피고인들의 시세조종 행위가 없었을 경우 공개매수가격이 12만6550원이었다는 공소사실 전제가 완전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했다. 당시 한일시멘트 주식이 ‘남북 경협주’라 불리며 시장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었고, 기관투자자들도 대량 주식을 매수해 주가가 상승한 점, 제3자가 야기한 변동요인 등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오로지 시세조종 범행으로 주가가 16만7000원까지 상승했다고도 보기 어렵다고 했다.

검찰은 유죄의 의심이 드는 여러 사정이 있는데도 더 치밀한 범죄 수법을 활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은 잘못이라며 지난 17일 항소했다. 허 회장도 일부 유죄가 선고된 부분에 항소했다.

◇ 주식보고의무 위반 1억 벌금형···法 “양성화했다면 시세조종도 없었을 것”

허 회장에게 유죄가 인정된 혐의는 한일홀딩스가 한일시멘트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대량보유상황을 보고할 당시 자신의 차명계좌에 보유하던 한일시멘트 주식 내역을 포함하지 않은 일부 공소사실이다.

재판부는 “보고의무 대상인 허기호의 차명계좌에 보유하던 한일시멘트 주식은 다른 피고인들이 차명계좌 자금으로 이 사건 시세조종 범행을 통해 매수한 것이다. 허기호는 위 보고의무 위반을 저지르기 전부터 차명계좌의 존재를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피고인이 자금을 양성화하거나 직접 관리해 왔다면 본인의 보고의무 위반 범행뿐만 아니라 이 사건 시세조종 범행 또한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큰 점에 비춰볼 때 비난 가능성이 크다”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보고의무 위반과 관련된 3개의 차명계좌를 비롯한 자신의 모든 차명계좌 자산에 대해 2008년부터 2019년까지 명의신탁 증여의제 증여세, 현금 증여세, 종합소득세, 양도소득세 등 합계 113억6000만원을 납부했다”면서 “늦게나마 자금을 양성하려는 노력을 보인 점, 한일홀딩스의 대표이사 및 회장으로서 성실하게 한일시멘트 그룹을 운영해 온 것으로 보이는 점, 아무런 범죄 전력이 없는 초범인 점 등을 감안했다”라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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