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세조종 및 배임, 범죄수익 은닉 혐의 무죄···법원 “공모 증거 없다”
공시 의무 위반만 유죄 인정해 1억 벌금형···허 회장 “드릴말씀 없다”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시세조종을 통해 사익을 취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허기호 한일홀딩스 회장이 1심에서 사실상 무죄 판결을 선고받았다. 함께 기소된 재무 담당 임직원들에게 시세조종 혐의가 인정된 것과 대비된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4부(재판장 장성훈 부장판사)는 11일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허 회장의 선고기일에서 공시 의무 위반 혐의를 유죄로 인정, 그에게 벌금 1억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허기호 피고인은 단독 범행으로 기소된 주식 소유 상황 보고 의무 위반 등에 대해 공소사실을 인정하고 있으며, 그 부분에 대한 보강증거도 있어 유죄로 인정한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핵심 범죄사실인 시세조종 및 사기적 부정거래 혐의,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배임, 범죄수익 은닉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 피고인에게 시세조종의 동기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재무 담당 임원들과 공모했다는 점이 증명되지 않았다”면서 “시세조종으로 가격이 얼마나 상승할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업무상 의무 위배도 단정하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반면 재무 및 회계담당 임원들인 신아무개 상무와 한아무개 상무에게는 시세조종 혐의를 인정해 각각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징역 1년3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지주회사 전환 TFT(태스크포스팀)의 일원으로서 허기호의 차명계좌 자금으로 한일시멘트 주식을 취득하는 행위가 한일홀딩스와 한일시멘트에 미치는 영향 등을 누구보다 잘 알 수 있는 지위에 있었다”면서 “재무와 회계 쪽 요직을 거친 피고인들의 지식과 경험에 비춰볼 때 이를 몰라 범죄의 고의가 없다고 보기도 어렵다”라고 밝혔다.
김아무개 한일시멘트 부사장에게도 재무 담당 임원들과의 순차적·암묵적인 의사 결합에 따른 시세조종에 관한 공모가 인정된다는 이유로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허 회장은 1심 판결 직후 재판 결과에 대한 평가와 그간 소회를 묻는 말에 “현재는 드릴말씀이 없다”라고 짧게 답했다.
허 회장은 2020년 한일시멘트가 한일현대시멘트 모회사인 HLK홀딩스를 흡수합병할 때 지주회사인 한일홀딩스 합병법인 지분율을 높이기 위해 한일시멘트 주가를 조작한 혐의로 2021년 11월 기소됐다. 회사는 지주사 한일홀딩스→한일시멘트→한일현대시멘트의 수직 지배구조 형태를 띄고 있다.
그는 2018년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현물출자 방식으로 신주를 발행할 당시 회사에 약 306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