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내외 악재 증폭에 기업 경영 ‘비상’
미국도 반도체 지원하는데···韓 특별법 통과는 하세월
[시사저널e=유호승 기자] 경제계가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및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 등으로 ‘최악의 12월’을 보냈다.
임원인사 및 조직개편 마무리로 새해 사업계획의 실행을 준비하던 시기에 정국 혼란으로 로드맵 수정은 물론 대응방안을 모색하는 처지에 놓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본격 행정부 가동이 며칠 남지 않은 상황에 국내에서도 정치 리스크가 불거져 어느 때보다 대내외 불안정성이 큰 시점이다.
재계가 탄핵 정국 도래로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는 현 정부가 추진해 온 다수의 친기업정책이 좌초될 위기에 놓여서다. 다양한 산업군에 대한 연구개발(R&D) 지원금 확보와 규제완화 등에 제동이 걸린 셈이다.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를 중심으로 윤석열 정부가 추진 중인 경제 관련 정책이 국회 문턱을 통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정국혼란에 법안 발의 등이 언제 가능할지 ‘미지수’다.
반도체 특별법이 최우선 통과 과제로 꼽힌다. 이 법안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의 반도체 기업에 대한 직접 보조금 등의 재정 지원과 R&D 종사자의 주 52시간제 예외를 골자로 한다.
특별법은 지난달 21일 첫 심사에 돌입했으나, 12·3 비상계엄 사태 등으로 추가 논의 없이 한 달 넘게 표류 중이다. 일본과 중국 등은 정부와 기업이 합세해 국가 경쟁력으로 평가 받는 반도체 산업 육성에 속도를 내고 있는데, 한국만 뒤처지는 모양새다.
미국 역시 SK하이닉스에 이어 삼성전자에도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직전 반도체법(칩스법) 보조금 계약을 매듭지었는데, 우리나라에서만 지원금 등의 혜택이 주어지지 않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삼성전자에 6조9000억원의 직접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최종 계약했다.
재계는 국회와 소통을 강화하는 동시에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과도 긴밀히 협력해 하루 빨리 반도체 특별법을 통과시키려 한다. 한 대행도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 회장 등 주요 기업인과 대화를 통해 정책 통과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각에선 반도체 근로자의 주 52시간 예외 규정을 제외하고 직접 지원금 혜택 등의 법안을 올해 안에 통과될 것으로 본다. 더불어민주당은 R&D 업무가 반도체 업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어서, 주 52시간 예외 규정을 적용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국민의힘 측도 반도체 산업이 우리나라를 지탱하는 핵심 산업인 만큼 주 52시간 예외를 빼고 조속히 법안을 통과시키는데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재계 관계자는 “정국혼란과 시장상황을 별개로 놓고 봐야 한다”며 “여야 대립 수준이 어느 때보다 격화돼 있지만 수출·생산이 흔들리면 국가 기반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 조속한 반도체 특별법 통과는 물론 정재계가 합세해 국내외 경제 회복 방안을 마련해야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경제계는 주요 법안 통과는 물론 사업계획 수정에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삼성전자와 현대차, SK, LG 등 주요 기업은 최근 최고경영진 회의를 통해 내년 경영전략을 다시 점검하고 수정했다. 트럼프 정부 출범에 맞춰놓은 사업계획에 국내 정치적 상황까지 고려한 것이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세계 각국이 트럼프 행정부 재출범을 앞두고 혹시 모를 무역전쟁을 대비하고 있는 상황에 우리나라는 내부 사정으로 국제 시장에 집중을 못하고 있다”며 “정부 차원의 대응을 기대하기 힘든 만큼 기업 스스로 위기에 대처할 수밖에 없는 시기”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