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부실저축은행 적기시정조치 일정 연기
부동산 PF 관련 저축은행 부실채권 정리 및 조치도 난항 가능성 제기
정치적 불확실성 따라 정책 추진 불투명···적시 조치 중단 시 더 큰 건전성 위기 맞을 수도
"최악의 상황 막기 위해 각 저축은행별로 건전성 개선 노력 지속 필요"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시사저널e=김태영 기자] 비상계엄 사태로 시작된 탄핵 정국이 장기화되면서 금융당국의 부실 저축은행에 대한 조치가 연기됐다. 현 정국 상황에서는 관련 조치가 자칫 혼란을 낳을 수 있다는 판단인데 일각에서는 연장선상으로 현재 당국이 추진 중인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관련된 저축은행의 부실채권 정리 및 적기시정조치 등도 난항을 겪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부실 사업장 정리에 대한 관리 주체가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황이 장기화된다면 적시 조치를 받지 못한 저축은행들이 향후 더 큰 건전성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이번 주에 예정됐던 부실 저축은행에 대해 적기시정조치를 부과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적기시정조치란 부실 소지가 있는 금융사에 대해 금융당국이 경영개선조치를 내리는 것으로 건전성 강화 노력을 유도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크게 권고, 요구, 명령 등 3단계로 분류된다. 당초 당국은 이번 주중 저축은행 2곳에 대해 적기시정조치를 부과할 예정이었으나 현 정국 상황에서는 예금자들의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판단에 결국 일정을 연기했다. 정치적 불안으로 제2금융권의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우려가 거론되고 있는 만큼 부실 저축은행에 대한 적기시정조치가 예금자들의 더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앞서 금융당국은 지난 3월 말 기준으로 자산건전성 지표가 악화된 저축은행들을 선별해 부실자산 처분이나 자본금 증액과 같은 경영개선권고를 내리는 적기시정조치 부과를 준비해왔다. 지난해부터 실적과 건전성 악화로 저축은행의 부실 우려가 커지면서 옥석 가리기가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비상계엄 사태 이후 정치적 불안으로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관련 조치를 보류할 수 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이번 계엄 사태로 부실 저축은행에 대한 총체적인 관리가 지지부진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금융당국은 저축은행의 건전성 악화와 더딘 구조조정을 우려해 부동산 PF 부실채권 정리를 압박해왔다. 3개월 이상 연체된 부동산 PF 대출을 부실로 규정하고 1개월마다 경·공매를 실시하라고 강제해왔는데 이번 계엄 사태로 인한 정치적 불확실성 확대에 따라 당국의 정책 추진 일정도 불투명해졌다는 전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탄핵 논의가 모든 의제를 집어삼키면서 금융당국의 정책 추진 동력이 상실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부동산 PF의 사업성 평가 기준은 4단계(양호, 보통, 유의, 부실우려)다. 이 중 유의 또는 부실우려 사업장이 구조조정 대상이다. 유의 사업장은 대주단이 재구조화 또는 자율 매각에 나서야 하고 부실 우려 사업장은 상각해 손실로 인식하거나 경·공매에 넘겨야 한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부동산 PF 구조조정 절차가 본격화한 지난 9월 이후 3개월 동안 경·공매 대상 PF 사업장 중 부실 정리가 이뤄진 곳은 20% 수준에 불과했다.. 

업권별로 살펴보면 저축은행의 부동산 부실 PF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하나금융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부동산 PF 부실 현황과 저축은행업의 미래' 보고서에 따르면 저축은행의 유의·부실 우려 사업장 비율은 27%로 상호금융(18%), 증권(12%) 등 타 업권을 크게 상회하는 수준이다. 전체 PF 익스포져 중 고위험 PF인 브릿지론과 토지담보대출의 비중은 무려 61%에 육박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부동산 PF 부실 문제가 있는 일부 저축은행들의 자산건전성 관리 강화 조치가 중단된다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저축은행은 PF 기초자산이 타 업권 대비 열악한 데다 비아파트 대출 및 투기·무등급 시공사 대출 비중이 높다"며 "부동산 경기 회복해도 정상화까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상황인데 이번 계엄 사태로 당국의 적시 조치가 중단된다면 더 큰 건전성 위기로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희재 하나금융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상반기 기준 저축은행 79개 가운데 절반이 넘는 41개 저축은행이 영업 적자를 기록하고 고정이하여신비율이 10%를 초과한 저축은행도 63개에 달한다"며 "부동산 PF 부실 여파로 일부 저축은행의 연체율 급등과 부실위험이 확대되는 등 2011년 저축은행 사태가 재발할 우려가 부각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금융당국의 난처한 상황 전개 속에서 적시 조치를 받지 못한 저축은행들이 향후 더 큰 건전성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적극적인 리스크 관리로 연착륙을 유도하고 있었는데 최근 계엄 사태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추진 여부가 장담하기 어려워졌다"며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각 저축은행별로 꾸준히 건전성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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