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 EQ 차종 소유자 24명 집단소송···매매·리스 취소 및 손해배상 청구
CATL 아닌 farasis 배터리 장착···“거래의 중요사항에 대한 허위 고지”
설계 결함도 주장···결함 은폐 인정 시 최대 5대 ‘징벌적 배상’ 가능성도

지난 10일 오전 서울 강남구 한 공유오피스에서 하종선 변호사(법률사무소 나루)가 벤츠 EQ 차종 소유자 24여 명이 메르세데스벤츠 독일본사,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등을 상대로 공동소송을 제기하는 것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 10일 오전 서울 강남구 한 공유오피스에서 하종선 변호사(법률사무소 나루)가 벤츠 EQ 차종 소유자 24여 명이 메르세데스벤츠 독일본사,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등을 상대로 공동소송을 제기하는 것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지난 8월 인천 청라동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전기차 화재가 발생가 발생한 지 2달여 만에 화재 차량과 같은 전기차 모델을 소유한 24명이 제조사인 벤츠 본사와 수입사인 벤츠 코리아, 판매사, 금융리스사 등을 상대로 집단소송에 돌입했다.

벤츠가 차량에 탑재한 배터리 제조사를 소비자에게 속였는지, 그리고 배터리 설계 자체에 하자가 존재함에도 회사가 이를 은폐했는지 등이 핵심 쟁점으로 분석된다.

◇ “배터리사 속일 의도 없었다”는 벤츠···2022년 거짓 인터뷰 논란

이아무개씨 등 벤츠 EQ 차종 소유자 24명(공동명의 포함)은 지난 10일 제조사인 벤츠 본사와 수입사인 벤츠코리아, 판매사, 금융리스사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청구이유는 ▲사기 및 착오에 기한 매매·리스계약 취소 ▲허위광고에 기한 손해배상 ▲결함 은폐에 기한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 등 크게 세 가지다.

벤츠가 소비자에게 배터리 제조사를 속였다는 점은 첫 번째 책임의 원인으로 주목된다.

벤츠는 EQ 차량에 세계 1위 업체인 중국 닝더스다이(CATL)사 배터리가 장착된다고 홍보했으나 대부분 모델에는 세계 10위권 배터리 제조업체인 farasis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드러났다.

원고들은 farasis 배터리가 장착된다는 사실을 고지 받았더라면 차량을 구입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매매 계약이 무효임은 물론, 나아가 허위광고에 기한 손해배상 책임까지 묻고 있다. 

또 이와 같은 기망행위에 의해 전기차 구입계약의 중요 부분인 배터리 제조업체가 세계 1위인 CATL이라고 ‘착오’하고 각 매매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민법(109조, 착오로 인한 의사표시)에 따라 회사는 매매대금을 부당이득으로 반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 벤츠사 전기차 개발을 총괄한 크리스토프 스타진스키 부사장은 지난 2022년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EQ 차종에는 CATL사 배터리가 장착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화재 우려’에 대한 질문을 받고 “소비자가 배터리에 대한 우려를 전혀 할 필요가 없다”고 답변했다.

원고들을 대리하는 하종선 변호사(법률사무소 나루)는 “부품 발주 시점 등을 고려할 때 farasis 배터리 장착은 최소 3년 전부터 결정됐을 것이다”면서 “개발 총괄 책임자가 배터리 제조업체를 달리 말한 것은 전기차 구입 거래의 중요한 사항에 대한 허위 고지에 해당한다”라고 지적했다.

벤츠사와 공식 판매 대리점들은 국내 소비자들을 상대로 전기차를 판매할 때 ‘CATL 배터리를 적극 홍보한다’는 지침을 세웠던 사실도 뒤늦게 드러나 뭇매를 맞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벤츠코리아의 공식 딜러사 교육용 내부 자료 ‘2023 EQ 세일즈 플레이북’에서도 확인됐다.

벤츠의 허위·거짓 광고 논란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 현장에서도 쟁점이 됐다. 마티아스 바이틀 벤츠코리아 대표는 지난 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소비자를 기망하려는 의도는 없었다”라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벤츠코리아가 전기차 배터리와 관련해 고의로 잘못된 정보를 제공했는지 조사를 진행 중이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21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표시광고법 또는 공정거래법상 고객 유인 등의 관점에서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 에너지 밀도 높은 farasis 배터리·····“열폭주·열전이 방지 설계 안 해”

배터리의 안정성이나 결함 등도 중요한 이슈다. 원고들은 배터리 설계 결함 등 안정성도 허위광고의 근거로 삼고 있다. farasis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아 열폭주(TR) 및 열전이(TP)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은데, 벤츠가 TR과 TP 최소화에 필요한 farasis의 설계를 채택하지 않고 “소비자는 배터리에 대한 우려를 전혀 할 필요가 없다”라고 밝힌 것은 허위광고라는 주장이다.

farasis사는 홈페이지를 통해 TR과 TP의 위험을 낮추기 위해서 단 2개의 셀 후에 TP를 멈추는 모듈을 개발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벤츠는 이 모듈을 채택하지 않았다. 차주들은 이 같은 ‘모듈 미채택에 의한 결함’이 TP 차단 실패로 이어졌다고 지적한다.

차주들은 연기가 승객 룸으로 스며들기 시작하기 5분 전 별도의 화재 경고가 없었다며 이 또한 설계결함으로 지적한다. 충전식 에너지 저장장치에 대한 국제공인표준인 UNECE R100을 미충족한다는 것이다. UNECE R100 6.15.1.조는 “내부 단락으로 인한 단일 셀 열 폭주로 인해 화재, 폭발 또는 연기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승객실 내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기 최소 5분 전에 차량에 비상 경고 신호를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 사진=법률사무소 나루 제공
/ 사진=법률사무소 나루 제공

하 변호사는 “farasis는 현행 법률(ECE R100 rev3)이 탑승자에게 5분의 사전 경고 시간을 규정하고 있다고 하면서 farasis의 지적재산권인 알고리즘은 화재발생을 조기에 감지한다고 강조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사고 차량의 차주의 핸드폰 앱에서는 이러한 경고알람이 뜨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만약 사실이라면 이는 설계 결함에 해당한다”라고 지적했다.

배터리가 ‘외부적인 충격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발표는 원고들에게 다소 불리한 조사 결과다. 차량이나 배터리의 결함이 아닌 외부적 요인에 의한 화재 발생 가능성을 남겼기 때문이다.

이에 원고들은 배터리 주변부가 장애물의 충격을 막아내지 못하는 재질 및 구조라면 이 또한 설계 결함으로 보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 변호사는 “벤츠는 배터리 하부를 단순히 부직포로 감쌌을 뿐 별도의 하부 쉴드를 설치하지 않았다”며 “테슬라가 배터리 하부에 ‘방탄 등급’의 하부 쉴드 등 추가적인 보호장치를 설치한 것과 대비된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집단소송을 준비 중인 우세종 변호사(법무법인 두우)는 “배터리 하부에 추가적인 보호 장치를 하느냐 마느냐는 자동차 업체마다 기술적 판단이 달라 현 단계에서 무조건 문제가 있다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재판과정에서 기술적 다툼이 필요한 대목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벤츠 전기차 하부에서 촬영된 배터리 팩. 부직포를 떼어내면 바로 배터리 팩이 노출된다. 차주들은 테슬라 전기차와는 달리 방탄이 되는 수준(Ballistic Grade)의 하부 쉴드가 결여되어 있고, 배터리팩 하부도 도로의 장애물과의 충격으로부터 배터리 셀을 보호하지 못하는 재질 및 구조로 돼 있어 결함에 해당한다고 지적한다. / 사진=법률사무소 나루 제공
벤츠 전기차 하부에서 촬영된 배터리 팩. 부직포를 떼어내면 바로 배터리 팩이 노출된다. 차주들은 테슬라 전기차와는 달리 방탄이 되는 수준(Ballistic Grade)의 하부 쉴드가 결여되어 있고, 배터리팩 하부도 도로의 장애물과의 충격으로부터 배터리 셀을 보호하지 못하는 재질 및 구조로 돼 있어 결함에 해당한다고 지적한다. / 사진=법률사무소 나루 제공

◇ 결함 알고도 은폐했나···징벌적 손해배상시 최대 5배 배상

원고들은 ‘결함 은폐에 따른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요구한다. 벤츠가 결함을 미리 알고 있었거나, 최소한 지난 8월1일 인천 청라에서 화재 발생 이후 결함의 존재를 알게 됐음에도 리콜 등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동차관리법은 자동차 제작자나 부품 제작자 등이 결함을 알면서도 이를 은폐·축소 또는 거짓으로 공개하거나, 이를 시정하지 않아 생명, 신체 및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입힌 경우 손해의 5배까지 배상책임을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사건 각 배터리팩 교체 비용이 7000만 원인 것을 고려하면 최대 3억5000만원의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이 발생할 수 있다.

벤츠는 미국에서 전기차 일부를 리콜하기도 했다. 플로리다주에서 발생한 2023년형 EQE 350+ 모델의 화재 때문이다. 이 차량은 주차된 지 된 22시간 뒤 불이 났다. 미국 도로안전교통국은 고전압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 관련 결함이 발견됐다는 조사 결과를 밝혔다.

물론 국내 화재가 BMS 문제를 원인으로 발생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에서 발생한 것과 유사한 사고가 1년 후 국내에서 발생했다는 점은 주목할 대목이다. 국내 사고 차량은 60여 시간 주차돼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 변호사는 “제조물책임법은 제조물(자동차)이 정상적으로 사용되는 상태에서 손해(화재)가 발생했다는 사실, 손해(화재)가 제조업자의 실질적인 지배영역에 속한 원인으로부터 초래됐다는 사실, 손해(화재)가 제조물의 결함 없이는 통상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경우 제조물(전기차)의 결함으로 인해 손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면서 “전기차를 정상적인 방법으로 주차해 둔 후 상당한 시간이 지난 상태에서 특별한 외부적 요인 없이 화재가 발생했다면 전기차의 결함으로 인한 화재 발생이 추정될 가능성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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