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핵심 관계자 모두 한도 상향 공언···금융위원장도 공감
국정감사서 관련 관련 논의 급물살 전망···은행업계, 난색
부담 늘고 실익 없다는 판단···보험료 인상으로 실적 직격탄 가능성

새마을금고에 부착된 고객 예치금 안전 보호 안내문 / 사진=연합뉴스
새마을금고에 부착된 고객 예치금 안전 보호 안내문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김태영 기자] 예금자보호한도를 현행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올려야 한다는 이슈가 22대 국회 첫 국정감사를 앞두고 재점화되고 있다. 여야 핵심 관계자 모두 한도를 상향하겠다고 밝힌 만큼 오는 10일 예정된 금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관련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은행업계에서는 부담만 늘어날 뿐 실익이 없다는 판단과 함께 보험료 인상이 실적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예금자보호한도를 현행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높이는 법안을 신속하게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같은 날 정무위원장을 맡고 잇는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도 이 대표의 발언에 대해 "좋은 제안을 해준 만큼 적극적으로 검토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예금자보호한도는 금융회사가 파산 등으로 예금을 돌려줄 수 없게 됐을 때 예금보험공사가 금융회사 대신 지급해주는 최대한도 금액이다. 대부분의 금융사 원금 보장형 상품에 적용된다.

국내 예금보호한도는 원금과 이자를 합해 5000만원으로 정해져 있다. 문제는 이 한도가 지난 2001년부터 23년간 유지돼 왔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001년 1만5736달러에서 지난해 3만5003달러로 과거보다 2배 이상 증가했지만 예금자보호한도는 23년째 동결돼 있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의 1인당 GDP 대비 보호한도비율은 약 1.2배로 미국(3.1배), 영국(2.2배), 일본(2.1배) 등 해외 주요국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5000만원의 보호 한도가 1인당 국내총생산(GDP)과 경제 상황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다른 국가에 비해 낮다는 지적이다.

사실 예금자보호한도 상향 논의는 지난해부터 거론된 이슈다. 앞서 지난해 3월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국내에서는 예금자보호한도를 상향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바 있다. 40년 역사의 미국 실리콘밸리은행이 파산하는 데 걸린 시간은 36시간에 불과했다. 언제 어디서나 돈을 뺄 수 있는 모바일 뱅킹 기술이 야기한 결과였다.

같은 해 7월 한국에서도 새마을금고 위기설이 확산하면서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사태까지 벌어지자 예금자 보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더욱 커졌다. 하지만 금융위원회를 포함해 일부 반대 여론에 막혀 최종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올해는 새로 취임한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청문회 당시 "한도 상향의 방향성에 공감한다"는 완화된 의견을 밝히면서 여야와 금융당국 모두 예금자보호한도를 상향해야 한다는 주장에 한 목소리를 내면서 어느 때보다 힘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예금자보호한도 상향은 금융 안정성뿐만 아니라 소비자 편의성을 높이는 효과도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최근 발간한 '국정감사 이슈분석'에서 "대부분의 예금자가 보호 한도 내에서 여러 기관에 분산 예치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한도 상향이 소비자의 편익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은행업권에서는 여전히 예금자보호한도 상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보호 한도가 높아지면 금융사들이 예금보험공사에 납부하는 예금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실익이 거의 없다는 설명이다. 

실제 예금보험료 인상은 향후 은행권 실적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2년 은행업계가 예금보험공사에 지불한 예금보험료는 2조9284억원에 달한다.

아울러 이를 어떻게 분배할지 업계 간 의견 차이도 나온다. 현재 예금보험료는 예금액 대비 은행 0.08%, 금융투자회사·보험사 0.15%, 저축은행 0.4%씩 지불하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보호한도를 높이기 위해 반드시 이뤄져야 할 업권별 예금보험료율 조정도 업권별로 실적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일부 금융사가 본업인 위험관리를 소홀히 하는 것은 물론 예금자들도 이를 악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사가 위험도가 큰 대출 영업을 해 부실 우려가 커져도 타행보다 이자를 0.1%포인트라도 더 쳐준다면 보험 한도까지 예금을 맡길 수 있다는 설명이다. 

보험연구원 관계자는 "저축은행은 은행보다 높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해 고위험 자산에 투자하는 등 위험 노출이 상대적으로 큰데 은행과 동일한 보호 한도가 적용되면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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