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신한·KB국민, 가계대출 실수요자 예외조건 연이어 발표
은행별 실수요자 예외요건 상이···차주 불편 우려
[시사저널e=김희진 기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가계대출 관련 정책에 혼선을 초래한 점에 대해 사과했다. 금융당국이 대출 억제 기조에서 한발 물러서면서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취급을 조이던 은행들은 각각 실수요자 예외 조건을 마련하며 경쟁에 나서는 모습이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날 이복현 금감원장은 은행장 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가계대출 급증세와 관련해 세밀하게 입장과 메시지를 내지 못한 부분, 국민이나 은행 창구 직원에게 불편과 어려움을 드린 점에 대해 죄송하다”고 밝혔다.
이 원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가계대출에 대한 은행권의 ‘자율 관리’를 주문했다. 그는 “가계대출을 엄정하게 관리하겠다는 당국의 기조는 변함이 없다”면서도 “감독당국의 가계대출 규제는 기본적으로 준수해야 하는 최소한의 기준”이라며 “은행이 각자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자율적으로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올해 초부터 은행권에 가계대출 관리 강화를 주문해왔다. 은행들은 이에 맞춰 주담대 금리를 인상하는 등 대출 문턱을 높였지만 그럼에도 가계부채 증가세가 이어지자 이 원장은 지난달 은행권을 향해 “(대출금리 인상은) 당국이 바란 게 아니다”라며 은행권에 강력한 개입을 예고한 바 있다.
이에 시중은행들은 금리 인상을 넘어 대출 한도와 만기 등을 축소하고 1주택자에 대한 대출 취급까지 중단하는 등 대출 문을 걸어 잠갔다.
금융당국의 규제로 대출길이 막히자 실수요자들의 원성이 높아졌고 과도한 개입이 시장 혼란을 키운단 지적이 이어졌다.
실수요자들의 불만을 진화하기 위해 이 원장은 지난 4일 “갭투자 등 투기 수요 대출에 대한 관리 강화는 바람직하지만 대출 실수요까지 제약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관리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간 은행권에 가계대출 관리를 압박하던 태도에서 자율 관리를 권장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바꾼 것이다.
이에 은행들은 실수요자를 대상으로 한 예외 규정을 연이어 발표하고 나섰다.
먼저 우리은행은 9일부터 주택담보 및 전세자금대출 취급 시 실수요자 예외 요건을 적용한다. 기존에는 1주택자에 주담대와 전세자금대출을 내주지 않기로 했으나 결혼이나 상속을 앞둔 사람은 부모가 주택을 소유한 경우를 제외하고 주담대와 전세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예외를 뒀다. 단 청첩장과 예식장 계약서, 상속 결정문 등 증빙자료를 제시해야 한다.
신한은행도 전날부터 1주택 소유자에 대해 처분조건부 예외를 허용하기로 했다. 신규 주택 구입 목적 주담대를 실행하는 ‘당일’에 기존 보유 주택을 매도하는 조건으로 구입 주택 매수 계약을 체결한 차주의 경우 주담대를 받을 수 있다. 이 경우 차주는 보유주택 매도계약서와 구입주택 매수계약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전에는 1주택자가 기존 집을 처분하는 경우에도 원천적으로 대출을 취급하지 않았으나 규제 수위를 한 단계 낮춘 것이다.
또한 지난 3일부터 시행된 생활안정자금 목적의 주담대 한도 1억원 규제도 임차보증금 반환목적 생활안정자금 주담대의 경우 1억원을 초과할 수 있도록 예외를 뒀다.
KB국민은행은 서울과 수도권의 1주택 소유 세대는 처분조건부, 결혼예정자, 상속 등에 한해 신규 주택 구입 목적의 주담대 예외를 허용하기로 했다.
또한 이전에는 다주택자에 대한 생활안정자금 목적 주담대 한도를 연간 1억원으로 제한했으나 임차인에게 전세보증금을 반환하는 주담대 생활안정자금은 연간 1억원 한도를 초과해 취급할 수 있도록 예외를 적용한다. 단 임대차계역서 등 증빙자료를 제시해야 한다.
주요 은행들이 대출 허용 예외 요건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실수요자들의 대출 절벽이 다소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일각에서는 은행별로 예외 조건이 상이한 탓에 이에 따른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은행권 관계자는 “이전에는 대출 금리와 한도, 만기 등을 고려해 은행별로 대출을 알아봤다면 이제는 이런 조건에 더해 예외 조항까지 따져보며 대출을 실행할 은행을 정해야 한다”며 “실수요자 입장에서는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더 늘어난 셈이라 불편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