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유한양행 등 6개 제약사에 무죄 선고···벌금형 선고 1심 판결과 정반대 결과 주목
핵심은 32개사에 부과한 409억원 회수···법조계 “3심 판결 중요, 32개사 유리한 위치 점유”
공정위 “재판과 과징금 사건은 일부 차이 있다”···32개사 중 상당수 업체는 공정위와 소송 중
[시사저널e=이상구 의약전문기자] GC녹십자 등 6개 제약사가 백신 입찰에서 담합했다는 의혹에 대한 항소심 무죄 판결이 나왔다. 이에 이번 판결이 유사한 의혹으로 32개 사에 409억원 과징금을 부과한 공정거래위원회 처분에 대한 취소소송에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형사 3부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GC녹십자와 유한양행, 광동제약, 보령바이오파마, SK디스커버리, 글락소스미스클라인 등 6개 업체와 각사 임원 7명에게 전날 무죄를 선고했다. 이번 선고는 이들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고 전원에 벌금형을 선고한 1심 판결을 뒤집은 것이어서 주목된다. 서울고법 재판부는 “애초 국가예방접종사업(NIP) 입찰에서 공정한 자유경쟁을 통한 가격 형성이 전제됐다고 보기 어렵고 피고인들에게 경쟁을 제한하거나 낙찰가에 영향을 미쳐 공정성을 해칠 고의가 있었음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처럼 1심 판결이 항소심에서 뒤집힌 상황에서 해당 제약사들은 원론적 입장만 밝혔다. GC녹십자는 검찰 상고 여부가 결정되지 않아 공식 입장이 없다고 밝혔다. 유한양행은 진행 중인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SK디스커버리는 재판부 판단을 존중하고 향후 절차에 충실히 임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비공식적으로는 당연한 결과라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청한 제약업계 관계자 A씨는 “검찰 압수수색부터 항소심 판결 결과가 나올 때까지 해당 업체들만 억울한 상황이 이어졌다”며 “이번 판결은 당연한 결론”이라고 지적했다.
향후 핵심은 이번 항소심 판결 결과가 업체들이 현재 공정위와 진행 중인 시정명령 및 과징금 납부명령 취소소송에 영향을 주느냐 여부로 요약된다. 공정위는 당초 검찰 요청에 따라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입찰 담합 의혹을 검찰에 고발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정위는 지난해 7월 32개 백신 관련 사업자들이 2013년 2월부터 2019년 10월까지 조달청이 발주한 170개 백신 입찰에서 사전 낙찰 예정자를 정하고 들러리를 섭외한 후 투찰 가격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담합한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409억원 부과를 결정했다.
32개 사업자는 백신 제조사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과 광동제약, GC녹십자, 보령바이오파마, SK디스커버리, 유한양행, 한국백신판매 등 6개 백신총판, 25개 의약품 유통업체 등이다. 공정위는 과징금 납부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은 없었다고 밝혀 32개사 전체가 과징금을 납부한 것으로 파악된다. 32개사 중 일부 업체는 단독으로 일부는 공동으로 소송대리인을 내세워 공정위에 과징금 취소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가 밝힌 과징금 취소소송은 13건이다. 기자가 이중 11건 사건번호를 입수해 일일이 검색한 결과, GC녹십자와 유한양행, 광동제약, 보령바이오파마, SK디스커버리, 한국백신판매 등 제약사와 10개 유통업체가 공정위에 취소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업계는 32개사 중 상당수 업체가 공정위와 소송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제약업계는 향후 과징금 취소소송에 영향을 주는 부분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이다. 제약업계 관계자 B씨는 “대법원 판결까지 확정돼야 과징금 소송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고 언급했다. GC녹십자 관계자 C씨는 “현재 공식 입장이 없으며 차후 결정되면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날 판결이 일부 영향을 줄 것이라는 예상도 적지 않았다. D제약사 관계자는 “23일 판결 결과가 공정위 소송에도 일부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했다. 소송 경력이 많은 모 로펌 변호사 E씨는 “형사재판에서 확정된 사실관계는 행정처분을 진행할 때 감안할 수 밖에 없다”며 “무죄 판결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법원으로 넘어간다면 그 결과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E씨는 “1심이 아니라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왔기 때문에 공정위 소송에서 제약사와 유통업체들이 유리한 위치를 점유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반면 공정위는 항소심이 종료된 재판과 32개사를 대상으로 부과한 과징금 조치는 일부 내용이 다르다는 점을 지적했다. 서울고법이 전날 판결한 재판 핵심은 GC녹십자 등 6개 업체의 입찰담합 행위였다. 이에 반해 공정위가 과징금을 부과한 대상은 입찰담합 행위에 참여한 업체가 상대적으로 더 많고 내용도 광범위하다. 기소되지 않았던 한국백신판매와 25개 의약품 유통업체가 추가된 것이다.
쉽게 설명하면 형사재판 기소 사건이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 사건에 포함되는 구조다. 참고로 만약 이번 과징금 취소소송에서 해당 업체들이 승소할 경우 공정위에 납부한 과징금에 이자가 가산돼 돌려받게 된다. 제약업계 관계자 F씨는 “과징금 회수도 중요하지만 해당 업체들은 명예가 더 중요할 수 있다”며 “형사재판 3심과 공정위 소송에 시간은 소요되겠지만 정부가 시킨 대로 한 제약사들 억울함이 해소됐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