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 원장(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저출산 정책, ‘선택과 집중’ 요구···가장 약한 고리 찾아내야”

/ 사진=김은실 디자이너
/ 사진=김은실 디자이너

[시사저널e=고명훈 기자] 대한민국이 위기를 맞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우리나라 출산율은 0.65명까지 감소했다. 이대로 가면 2750년에는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세계지도에서 지워질 것이란 전망도 있다.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나라 대한민국에서 다시 우렁찬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100명의 입을 통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되살릴 방법을 들어본다. [편집자 주]

회사마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사회적인 분위기가 아직 조성되지 않았다는 의견들이 많다. 특히, 남성 육아휴직에 대해서는 아직도 사회적인 시선이 따갑다. 중소기업이나 영세 사업장의 경우 직원 한명이 육아휴직을 사용할 시 큰 손해를 감당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 원장(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위원)은 육아휴직을 표현하는 새로운 단어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휴가나 휴직 등의 개념이 아닌, 육아출근, 근무의 성격이 드러나도록 명칭을 바꾸고, 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와 함께 육아휴직자를 대신해 업무가 가중된 직원에겐 그에 따른 적절한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 원장(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위원) / 사진=아동관리보장원
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 원장(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위원) / 사진=아동관리보장원

Q. 연간 출생아 수와 합계 출산율이 지속 감소하는 등 저출산 문제가 벼랑 끝에 몰렸다는 시각이 짙다. 현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는지

“해외보다 국내에서 남북한 대치로 인한 전쟁 위협에 더 둔감한 것처럼 인구소멸국가 1호라든지, 흑사병이 창궐했던 중세유럽보다 인구감소가 더 빠르다든지 등 해외발 기사로 타국에서 걱정이 더 큰 것 같다. 예전에는 한 해 동안 아동 100만명이 출생했다면 지금은 30만명 선이 무너져 지난해 신생아수는 23만명 수준이었다. 매년 70만명 이상이 줄어드는 셈이다. 지난해 기준 제주도민이 67만 5000명이었단 점을 감안하면 해마다 제주도 하나가 통째로 사라지는 것과 같다.

‘우리나라가 땅도 좁고 인구 밀도가 높은데, 오히려 잘 된 거 아니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인구가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교통, 교육, 의료 등 필수 인프라뿐만 아니라 미용실, 목욕탕, 세탁소 등 생활 인프라가 사라진다. 생활편의 부족으로 도시에 더 집중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면서 거주지역의 인구 밀도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저출산이 우리 경제뿐만 아니라 삶의 질을 붕괴시킬 수도 있는 상황이다.”

Q. 2030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을 고민하는 가장 큰 이유로 경제적인 요인을 꼽았다. 과거 베이비붐 세대와 비교해 우리나라 경제 수준은 매우 높게 올라왔는데, 이러한 모순이 일어나는 원인은 무엇인가

“빈부격차, 중산층의 몰락 등이 있긴 하지만 한국 사람이 아이를 낳고 키울 돈이 없을 정도로 절대적 가난에 시달리는 것은 아니다. 청년들이 이야기하는 경제적 요인은 생존권 수준을 넘어 사회적·문화적 수준이 올라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한다는 의미다. 단어는 같지만 이전의 경제적 고민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디지털 환경으로 삶의 최고 순간을 SNS로 전시하고, 타인과의 비교와 경쟁에 매몰돼 그로 인한 불안과 박탈감은 더 커지는 것 같다. 만족할 수 있는 삶의 기준점은 높아졌지만, 국가의 경제 상황 악화, 양질의 일자리 부족 등으로 인해 다중격차가 발생하고 경쟁과 비교 속에서 자녀를 기죽지 않게 키워야 한다는 압박비용이 높아지는 등 이유로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을 주저하는 것이다.”

Q. 정부에서 여러 저출산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청년들은 만족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어떤 개선점이 필요할까

“저출산은 하나의 원인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정적 한 방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일자리, 주거, 교육, 돌봄, 지역격차 등 다양한 요인이 저출산 현상으로 이어진다. 각 요인은 모두 우리 사회의 난제 중 난제다. 현재까지는 한정된 예산으로 이를 전방위적으로 해결하려고 했기 때문에 효과가 없다는 의견들이 많았을 것이다. 이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가장 약한 고리를 찾아내 비용 대비 효과성이 높은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이번 정부의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에서는 ‘일·가정 양립’을 선택과 집중의 대상으로 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에 대한 효과 검증도 예정되었으니, 증거 기반 정책 추진을 통해 현재 상황이 점차 개선될 것이라 기대한다.”

Q. 육아유직 제도를 활성화하는 방안도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남성 육아휴직에 대해서는 아직도 사회적인 시선이 따가운 것이 사실이다

“한 직원이 육아휴직을 들어가면 그 주변에 남겨진 같은 부서 팀원들은 불안해진다. ‘내가 또 일을 더 떠맡아야 되지 않을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육아휴직을 가는 사람과 보내는 사람 모두 마음이 편해지려면, 남은 직원들에게 일이 늘어나는 만큼 그에 따른 업무분담지원금 등 적절한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 육아휴직자의 업무가 보상 없이 동료들에게 가중되면 육아휴직 자체를 혐오하는 모습이 나타나 노노(勞勞)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 아울러, ‘휴가’, ‘휴직’ 등의 표현은 놀다 온다는 느낌을 줄 수 있으므로 육아휴직을 표현하는 새로운 단어를 고민해야 한다. 휴직자에게 육아휴직은 휴직이 아니라, 육아출근이자 근무이기 때문이다.

육아휴직자가 빠르게 늘고 있지만, 대기업과 공공부문 중심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대-중소기업 간 격차는 여전하다. 전체 근로자의 80%가 중소기업에 다니지만, 2023년 기준 근로자 1000명당 육아휴직 사용자수는 대기업이 12명, 중소기업이 6명으로 나타나 20배 이상 이용률 차이가 난다. 기업 규모와 관계없이, 자영업이나 특수고용직 등도 육아휴직을 이용할 수 있는 맞춤형 접근이 추진돼야 한다. 이를 위해선 고용보험을 넘어서는 예산확보 방안이 필요하다.”

Q. 돌봄 제도에 대한 구체적이고 확실한 방안이 요구된다. 정부도 최근 다양한 돌봄 제도를 제시했는데, 실질적으로 활용도가 높은 정책이 될 것으로 기대하는지

“영유아기보다 초등학교 입학 시 돌봄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어린이집·유치원은 종일반의 경우 오후 6시까지 아이를 돌봐주지만, 초등학교 1학년의 경우 ‘늘봄학교’에 들어가지 못하면 낮 1~2시 이후 누군가 아이를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육자의 경력 단절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시기는 자녀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다. 이 시기의 돌봄을 어떻게 안정적으로 지원할 것인지를 고민해봐야 한다. 늘봄학교가 초등학교 내에서 안정화되고, 지역아동센터 등 마을돌봄과 함께 협업해나가는 방안이 필요하리라 판단된다. 궁극적으론 자녀돌봄 시기에 근로시간 단축, 유연근무 등을 ‘여성은 주양육자, 남성은 보조’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성별과 상관없이 쉽게 이용하도록 하고, 초등학교의 하교 시간을 학년과 상관없이 오후 3시로 통일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Q. 청년들의 삶의 질을 먼저 높여줘야 출산율도 늘 것이란 목소리도 나온다

“얼마 전 온라인에서 충격적인 댓글을 봤는데, ‘내가 아이를 안 좋아해서 안 낳는 것이 아니다. 미래에 태어날 아이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안 낳는다’라는 내용이었다. 청년들이 보기에 지금 환경에서는 아동들이 행복하지 않고, 그 아이들을 양육하는 부모 또한 행복하지 않은 것이다. 끊임없이 비교·경쟁하는 문화, 노키즈존처럼 아동이 환영받지 못하는 환경 속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청년들이 ‘나와 아동,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 출산하지 않겠다’라고까지 생각하는 것이다. 다양하고 진정성 있는 정책들을 통해 청년들의 이러한 부정적인 생각의 고리를 끊어주는 일이 필요하다. 또한 청년들의 목소리를 많이 들어야 한다.”

Q. 이외에 제안하고 싶은 저출산 대책이 있다면

“그동안의 대책은 신혼부부 혹은 청년을 중심으로 운영됐다. 앞으로는 아동 중심의 대책도 필요하다. 아동이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아동이 태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아동권리보장원에서 발표한 2024 아동분야 주요통계를 살펴보면, 우리나라 아동의 ‘삶의 만족도’는 26.1점으로 OECD 평균 33.8점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 아동의 행복에 대한 의구심도 저출산의 원인이다.

“아이를 소중히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는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다. 노키즈존의 확산과 아동 혐오 사회에서는 아이가 행복할 수 없고, 아이가 불행한 사회에서 부모는 아이를 낳을 수 없으니 인구 소멸은 당연한 수순이다. 아동에 대한 관점과 태도를 변화시킬 때 한국은 아동을 혐오하지 않고 존중하고 환영하는 사회로 조금씩 나아갈 수 있으며, 저출생 국가에서도 벗어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를 위해서는 아동이 환영받고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는 사회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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