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범행 주장하다 구속 후 입장 번복···“SPC 발전 위해 사실대로 진술”
허 회장 측도 사실관계는 인정···‘법리적’으로 부노행위 아니라는 입장

허영인 SPC회장/ 사진=연합뉴스
허영인 SPC회장/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민주노총 소속 파리바게뜨 제빵기사에게 노조 탈퇴를 종용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허영인 SPC 회장과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황재복 SPC 대표이사가 16일 법정에서 만났다. 황 대표는 허 회장의 지시로 이른바 민주노총 탈퇴 종용 등 부당노동행위(부노행위)가 이뤄졌다면서 SPC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 사실대로 증언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2부(재판장 조승우 부장판사)는 이날 허 회장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혐의 공판기일을 열고 황 대표를 증인신문했다. 황 대표는 이 사건 공동피고인이나 변론분리를 통해 증인 신분으로 출석했다.

애당초 황 대표는 이 사건 부노행위가 자신의 단독범행이었다고 주장하다가, 지난 3월 구속된 이후 허 회장의 지시 아래 회사의 부노행위가 이뤄졌다고 입장을 바꿨다.

본격적인 증인신문에 앞서 황 대표는 ‘증인은 검찰에서 증거들을 확인하고 허영인의 지시를 은폐할 수 없다고 판단해서 (허 회장의) 지시를 증언했고, SPC 대표이사로서 더 이상 위증과 증거인멸을 방지하고, SPC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 사실대로 말하겠다는 다짐이 유효한가’라는 검사의 물음에 “네”라고 답했다.

이어진 신문에서 황 대표는 사건의 배경과 허 회장의 반응, 및 지시 등을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2019년 7월 조합원 수 3배에 달하는 득표로 5600여명의 파리바게뜨 제빵·카페기사 근로자대표로 당선된 임종린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화섬노조) 파리바게뜨지회장과 관련해서는 “보고를 받은 허 회장이 ‘(한국노총 소속) 피비파트너즈의 조합원 수가 더 많은데 어떻게 이런 일(민주노총 화섬노조 임종린 지회장이 근로자 대표로 선출된 사안)이 일어날 수 있느냐’고 질책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노사관리를 총괄하던 최아무개 임원(전무)이 이를 계기로 인사조치됐으며, 임종린 근로자대표의 지위를 번복하기 위해선 한국노총 노조원을 과반으로 늘리면 된다는 보고를 올렸고, 허 회장이 그렇게 진행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도 주장했다. 이 같은 지시 이후 6주 만에 한국노총 조합원은 900명 이상 증가했으며, 한국노총 산하 피비파트너즈가 과반노조가 됨에 따라 임종린 대표의 지위가 곧바로 상실됐다고도 했다. 이후 허 회장의 반응은 “잘했다. 잘 관리하라”였다고 황 대표는 말했다.

그는 민주노총 화섬노조의 집회 시위가 허 회장의 심기를 크게 거슬리게 했다고도 했다. 황 대표는 “사회적 합의이행을 주장하는 시위가 2019년 양재동 본사 앞에서 8개월간 열렸고, 2020년 코로나로 사라진 시위가 2021년 재차 시작되자 본격적인 탈퇴 종용 지시가 있었다”면서 “1년 간 중단됐던 집회가 2021년 한남동 ‘패션5’에서 열리자 (허 회장은) 지인들과의 저녁약속도 지키지 못해 화가났다”라고 말했다.

황 대표는 “조합비와 상급 단체의 지원으로 집회·시위 재원이 마련된다는 보고를 받은 허 회장이 조합원 수를 줄이라는 지시를 내렸다”면서 “허 회장의 지시가 없었으면 탈퇴를 종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집회와 시위로 경영상 어려움은 있었으나, 제가 나서서 불법적인 일을 할 이유는 없었다”라고 강조했다.

이날 허 회장의 변호인들은 황 대표 등 공동피고인들의 검찰에서의 진술과 관련자 진술 모두 인정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진술에 기초한 사실관계도 모두 인정하겠다고 했다. 검찰이 제시한 증거 대부분을 부동의 했던 변론 태도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다만 변호인들은 법리적으로 부노행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방식으로 변론을 하겠다고 밝혔다.

허 회장의 두 아들 허진수 SPC그룹 글로벌BU장 겸 파리크라상 사장과 허희수 SPC그룹 부사장도 법정에 나와 황 대표에 대한 증인신문을 지켜봤다.

허 회장은 SPC 자회사인 PB파트너즈 내 민주노총 화섬조노 파리바게뜨 지회가 회사에 비판적인 활동을 이어가자, 지난 2021년 2월~2022년 7월 조합원 570여명에게 탈퇴를 종용한 혐의 등으로 지난 4월21일 구속기소됐다. 또 2021년 5월 민주노총 화섬노조 소속 근로자라는 이유로 승진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부여하는 등의 방법으로 승진 인사에서 배제한 혐의, 2019년 7월 사측에 친화적인 한국노총 조합원 모집을 지원하는 한편, 2021년 4월~2022년 8월 한국노총 노조 위원장에게 사측의 입장을 대변하는 인터뷰를 하게 하는 등 노조의 조직과 운영에 깊게 개입한 혐의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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