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노조법 위반’ 구속기소 허 회장 보석청구 심문
형사소송법 ‘예외적 사유’ 없으면 원칙적으로 보석 허가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노동조합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형사소송법상 보석을 허가하지 않을 예외적 사유가 없다며 불구속재판을 호소했다. 검찰은 증거인멸 염려나 도주 우려 등 구속 당시 사정과 달라진 게 없다며 기각을 주장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조승우 부장판사)는 9일 허 회장이 청구한 보석 사건 심문을 열었다. 보석은 법원이 적당한 조건을 붙여 구속의 집행을 해제하는 제도다. 법원은 보석의 청구가 있으면 검사의 의견을 물어 허가 여부를 결정한다.
이날 허 회장의 변호인은 “형사소송법에서 정한 필요적 보석 예외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형사소송법 제95조(필요적 보석)는 보석의 청구가 있는 때에는 예외적 사정을 제외하고는 보석을 허가하도록 규정한다.
예외적 사정은 ▲피고인이 10년이 넘는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때 ▲누범에 해당하거나 상습범인 죄를 범한때 ▲ 죄증을 인멸하거나 인멸할 염려가 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때 ▲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때 ▲ 주거지가 분명하지 않을 때 ▲ 피고인이 피해자, 당해 사건의 재판에 필요한 사실을 알고 있다고 인정되는 자 또는 그 친족의 생명, 신체나 재산에 해를 가하거나 가할 염려가 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때 등 6가지다.
변호인은 “이 사건의 법정형, 피고인의 범죄 전력, 주거불명 여부와 함께 도망의 우려가 없다는 점, 이 사건 피해자들에게 위해를 가할 우려가 없는 점은 분명하다”면서 “장기간 수사를 통해 충분한 증거가 확보된 만큼 피고인이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없고 그러한 생각 또한 없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관련자나 공동피고인들에 대한 진술 회유가 우려된다면 관련자 접촉금지 등 적절한 보석 조건을 붙이는 방식으로 해소가 가능하다”라고 덧붙였다.
허 회장의 건강 상태도 강조됐다. 변호인은 “피고인은 만 75세의 고령이고, 4~5년 전부터 간헐적 부정맥이 확인돼 정밀한 검사가 필요하다”면서 “공황장애 증상 등을 겪고 있어 어떨 때는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느낄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은 점도 고려해 달라”고 말했다.
◇ 검찰 “진술 회유 가능성” “재판 지연 우려” 주장
반면 검찰은 허 회장의 구속 이유에 대한 “사정변경이 전혀 없다”면서 보석 청구를 기각해 달라고 요청했다.
검찰은 “피고인의 부당노동행위는 매우 중대하고, 피해자들이 인사에서 배제된 후 그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계속되고 있는데도 (피고인은) 자신의 범행을 여전히 부인하고 있다”면서 “죄질과 범죄의 중대성이 비춰 최종책임자에 대한 보석은 불허되어야 한다”라고 밝혔다.
증거인멸 염려도 있다고 했다. 검찰은 “증인신문이 예정된 다수의 증인들은 SPC나 계열사에 재직 중으로 여전히 피고인의 지휘나 영향 아래에 있다”면서 “총책임자인 피고인이 범행을 일체 부인한 이후 공동피고인들이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했던 것처럼 (보석 인용시) 증인들에게 일종의 방탄 시그널을 줄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피고인의 보석이 허가되면 자신이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있는 그대로 진술할 수 있는 사건관계인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면서 “보석이 허가되면 보다 적극적인 진술 회유가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라고 덧붙였다.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에 대해서도 “피고인은 수사과정에서 검사의 출석요구에 수 차례 불응하고, 임의로 퇴청하는 행태를 보였다. 해외 출장을 핑계로 국회의 출석요구에 장기간 불응한 전적도 있어, 석방될 경우 재판에 충실히 임할 것인지도 의문이다”면서 “방어권 제한과 건강 이상을 주장하나, 충분히 변호인과 접견하고 있고 구체적 병명 확인이 어려운 등 보석을 허가할 상당한 이유 또한 없다”라고 강조했다.
허 회장도 발언 기회를 얻어 미리 준비한 메모를 읽었다. 허 회장은 “사회적으로 물의일으켜 매우 송구하다. 조직의 책임자로서 이번 일에 대해 책임은 저에게 있다. 처음 경험하는 복수노조 체재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저의 불찰이다”면서 “수감 생활 중 많은 후회와 생각했다. 소수노조가 소외감 느끼지 않도록, 많은 신경을 쓰면서 노사관계가 건전하게 형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선처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날 변론내용과 기록을 바탕으로 보석 청구를 허가할지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양측의 공방은 1시간 이상 진행됐다. 허 회장의 두 아들 허진수 SPC그룹 글로벌BU장 겸 파리크라상 사장과 허희수 SPC그룹 부사장도 이날 보석 심문을 방청했다. 노조법 사건과 무관한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 변호인단도 법원에 나왔다.
허 회장은 SPC 자회사인 PB파트너즈 내 민노총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 지회가 회사에 비판적인 활동을 이어가자, 지난 2021년 2월~2022년 7월 조합원 570여명에게 탈퇴를 종용한 혐의 등으로 지난 4월 21일 구속기소됐다.
또 2021년 5월 민주노총 화섬노조 소속 근로자라는 이유로 승진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부여하는 등의 방법으로 승진 인사에서 배제한 혐의, 2019년 7월 사측에 친화적인 한국노총 조합원 모집을 지원하는 한편, 2021년 4월~2022년 8월 한국노총 노조 위원장에게 사측의 입장을 대변하는 인터뷰를 하게 하는 등 노조의 조직과 운영에 깊게 개입한 혐의도 받는다.
황재복 SPC 대표이사는 이 같은 부당노동행위가 허 회장의 지시 아래 이뤄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허 회장은 황 대표이사에게 노조 관련 보고를 받은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범죄요건이 성립하지 않는다거나 범죄에 대한 인식 등이 없었다며 무죄를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