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양육 병행 김은화·소준철·변한다 작가 대담
“부자만 아이 낳는 사회, 육아휴직도 양극화”
“주거지 따른 차별 없는 양육환경 구축 필요”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24시간을 쪼개고 쪼개도 늘 시간에 쫓겨요.”

대한민국에서 워킹맘, 워킹대디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최소한의 시간이 보장되지 않는 시간 빈곤을 절감하며 살아간다. 경력 발전과 자녀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한다.  

시사저널e는 서울 용산구 스튜디오에서 김은화 딸세포출판사 대표, 변한다 작가, 소준철 작가를 만났다. 이들 모두 자녀와 부대끼며 일도 하면서 고충을 겪었다. 절대적 시간 부족에 더해 부동산, 사교육 등 경쟁으로 점철되는 우리 사회에서 자신과 자녀 모두 뒤처지지 않아야 한단 압박감이 사람들의 출산 의욕을 꺾는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부동산 등 격차를 잡아야 한다. 근본적으로 일반 시민들이 먹고 살만하단 생각이 들 때 아기를 가질 생각을 하게 된다”며 “정부가 너무 저출산 문제에만 얽매이지 말고 넓게 시야를 갖고 사람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다음은 세 사람의 대담 전문.

왼쪽부터 변한다 작가, 김은화 대표, 소준철 작가. / 사진=김지윤  PD
왼쪽부터 변한다 작가, 김은화 대표, 소준철 작가. / 사진=김지윤  PD

김은화 : 한국이 1인당 국내총생산(GDP) 대비 자녀 양육비 비율이 1위이다. 아이 1명이 고등학교 졸업까지 드는 평균 비용이 3억8000만원 정도이다. 소득별 출산율은 고소득층에서 높은 상황이다.  

◇ “방학 동안 1개월 사교육비 100만~400만원”

변한다 : 중3 아들을 키우는데 가면 갈수록 사교육비가 너무 많이 든다. 특히 방학때는 직장 때문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없다보니 하루 전체의 학원 세팅을 해야 한다. 요즘 고시원이면서도 휴대전화를 압수하고 공부 타임라인을 짜주는 곳은 100만~150만원, 기숙학원을 보내면 350만~400만원 정도이다. 흩어지는 돈이 너무 많다. 단순히 피딩(먹이기)보다는 레이징(양육)에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 그리고 이건 아이가 자랄수록 점점 심해진다. 주위 사람들이 모두 (사교육을) 보내는데 내 아들만 안 보낼 순 없다. 

각 지자체별 출산 지원금 현황. /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각 지자체별 출산 지원금 현황. /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서울시 주요 자치구 출산 지원금 지급 현황. /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서울시 주요 자치구 출산 지원금 지급 현황. /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소준철 : 영유아 같은 경우 정부 정책 지원금이 있고 어린이집 비용도 나오지만 유치원, 초등학교만 가도 시간을 구매해야한다. 어떤 시간을 사느냐에 따라 내 계급이 나뉘는 기분이 든다. 마치 등수가 매겨지는 것 같은 상황은 육아, 보육, 교육에서 사라져야 한다.

김은화 : 아이가 어린이집 가기 전 문화센터 수업을 들었는데 선생님과 긍정적 경험이 어린이집에 적응하는데 도움이 됐다. 이걸 보면서 사람들이 사교육을 왜 하는지 알겠더라. 통계상 출생아 54%가 고소득층 자녀이고, 중산층 자녀는 37%, 저소득층 자녀는 9%다. 중산층은 아이 낳길 망설이고 저소득층은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변한다 : 난 주관이 좀 있었다. 그래서 사교육 안 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아이가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게 되더라. 일단 친구들이 다 학원에 있어 친구를 못사귄다. 코로나 팬데믹 땐 줌을 통해 학원에서 애들, 선생님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다 배우더라.  

국가별 자녀 양육비. /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국가별 자녀 양육비. /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김은화 : 관계를 맺고 커뮤니케이션하면서 그 안에서 인간으로서 받아야 할 사회적 자극을 사교육이란 수단으로 구매하는 것이다. 

소준철 : 이걸 쉽게 놓으라고 말하긴 어렵다. 애들은 학교를 마치고 부모가 없는 사이 아이들과 교류해야 하는데 갈데가 없다. 커뮤니케이션 공간이 학원으로 굳어져버렸다. 이를 바꾸기 위한 답은 쉽게 안나온다. 문제는 부모의 일(Work)이다. 불가피한 사정이 생겼을 때 보완할 수 있는 제도는 거의 없다보니 갑자기 아이를 맡기기 어렵다.

성별·연령별 시간빈곤 비율. / 사진=김은실 디자이너
성별·연령별 시간빈곤 비율. / 사진=김은실 디자이너

◇ “맞벌이 부부, ‘타임푸어’ 벗어나기 어려워”

김은화 : 시간을 쪼개고 쪼개도 늘 시간에 쫓기며 살고 있다. 맞벌이 부부들은 타임푸어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한국노동연구원 자료 조사를 보면 직장을 다니면서 미취학 자녀를 돌보는 40대 기혼여성이 가장 극심한 시간 빈곤에 시달린다고 한다.  아이 키우는데 들어가는 돈이 늘어나다보니, 일을 그만두지도 못하고 시간빈곤을 견디며 장시간 업무와 가사노동에 내몰리는 상황이다. 

변한다 : 결혼 후 16년 동안 주말부부로 지냈다. 월~금은 내가, 주말은 남편과 같이 아이를 돌본다. 지금은 아이가 어느정도 자라 타임푸어를 지났지만, 이전엔 전혀 시간이 없었다. 원래 친구와 소통하고 얘기하는 걸 큰 즐거움으로 느꼈는데 이젠 친구가 많이 없다. 옛날에 막역했던 친구였지만 지금은 생사를 모르는 경우도 많다.

직장인들 대상으로 실시한 타임푸어 관련 설문조사. / 그래픽 = 김은실 디자이너
직장인들 대상으로 실시한 타임푸어 관련 설문조사. / 그래픽 = 김은실 디자이너

소준철 : 아이가 아직 어리고 아내는 출근을 일찍 한다. 그래서 일하기 전에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낸 뒤 일을 하고 어린이집 끝날 시간에 애를 데리러 간다. 이러면 일이 중간에 끊겨버린다. 집안일까지 어느 정도 하면 자유시간이 하나도 없다. 친구를 1대 1로 만난 지가 3~4년 이상 됐다. 아이 태어난 뒤는 한 번도 없었고, 사생활이 정말 없다. 

김은화 : 나도 비슷한 상황이다. 어린이집 등하원 시키고 밥먹고 하다보면 일에 집중할 시간이 없다. 일에 대한 욕심을 많이 포기하고 있는 것 같다. 지난 2년 간 내 커리어라고 할 만한게 없다. 육아휴직에 있어서도 양극화가 심하다.

변한다 : 2018년까지 대기업을 다녔기에 육아휴직 제도를 충분히 사용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출산휴가 3개월만 쓰고 근무지인 경남 거제로 바로 복귀했고, 아이 양육은 엄마가 많이 했다. 지금와서 보면 육아휴직을 쓰지 않은게 후회된다. 당시엔 일에 미쳐있었고, 이걸 놓치면 '경단녀'가 될 것이란 엄청난 불안감이 있었다. 그시절 소중한 아이와 추억, 기억이 없다.

기업체 육아휴직 규모별 비중. / 그래픽 = 김은실 디자이너
기업체 육아휴직 규모별 비중. / 그래픽 = 김은실 디자이너

 김은화 : 프리랜서라 육아휴직은 해당사항이 없었고, 남편이 회사에서 남자로서 첫 육아휴직을 썼다. 주변에서 남편을 두고 얘기가 정말 많았는데 기저엔 퇴사, 이직 여부가 깔려있었다. 중소기업은 남성 육아휴직이 드물다. 육아휴직을 쓴 사람은 구조조정할 때 굉장히 취약한 위치에 있을 수도 있다. 남녀 구분없이 출산휴가, 육아휴직을 의무화하면 커리어상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 “육아휴직, 부모와 아이 모두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

소준철 : 난 육아휴직을 써본적이 없고, 아내가 육아휴직을 했었다. 부모와 아이가 경험하는 시간이 다양해지려면 육아휴직은 진짜 필요하다.

독일과 스웨덴의 육아 휴직 관련 법률. /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독일과 스웨덴의 육아 휴직 관련 법률. /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김은화 : 아이 하나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단 얘기가 있다. 아이를 키위는데 집, 환경이 중요하단 의미이다.

변한다 : 어릴적 이사를 많이 했는데 불안정함을 느꼈다. 아이에게 주거 안정감을 주는게 굉장히 중요하다.

소준철 :주거는 결국 환경이다. 소아과 오픈런, 걸어서 도서관을 못가는 환경은 줄어야 한다. 사교육을 넘어 도시에서 사람들이 균등한 수준의 정보에 접근하고 생활할 기반이 확보돼야 한다. 집은 잠자고 일어나는 의미를 넘어 생활 자체이다.

김은화 : 우리나라는 마을이 없다. 그래서 대단지 아파트를 가려고 한다. 그 안엔 차도 없고, 놀이터도 있고 친구도 만들 수 있고, 커뮤니티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그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육아가 어렵다. 도서관, 공공놀이터, 공원 등에 접근하기 어렵다. 경제적 여력에 따라 아이에게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격차가 너무 크다. 그 격차가 커질수록 저소득층을 넘어 중산충들도 점점 출산을 포기할 수 있고, 그러면 정말 돈 많은 사람들만 아이를 낳는, 출산이 특권인 세상이 올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에게 어떤 부모가 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소준철 : 아이에게 엄마 아빠도 열심히 살고 있고, 우리가 가족을 이루며 잘 살고 있단 얘기를 해주는게 먼저인 것 같다. 물질적인 조건도 조금은 갖춰주고 싶은 부모가 되고 싶다. 그간 연구해왔던 것과는 어찌보면 모순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 모순을 어떻게 극복할지 시도는 한 번 해보려 한다.

변한다 : 부모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아이의 독립이다. 그런데 주거비도 비싸고 여러 가지가 다 비용이다보니 우리 자녀세대는 더더욱 독립할 수 없는 세대가 된 것 같다. 그럼에도 자녀가 독립할 수 있고, 뭘 잘하고 뭘 원하는지 빨리 깨우칠 수 있도록 물가에 데려다 줄 수 있는 부모가 되고 싶다. 경륜을 가질 수 있는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

김은화 : 살면서 경쟁을 포기할 수 없고, 있는 그대로 만족하란 얘기만 할 수도 없다. 계속 모순을 안고 살아갈텐데 그래도 삶의 순간마다 내가 살아있어 너무 기쁘단 마음을 갖고 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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