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주택난에 임대료 높아···출산율도 덩달아 하락
뜨거운 감자 된 이민 정책···"장기적 영향 고려해야"

저출산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저출산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대한민국이 위기를 맞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우리나라 출산율은 0.65명까지 감소했다. 이대로 가면 2750년에는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세계지도에서 지워질 것이란 전망도 있다.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나라 대한민국에서 다시 우렁찬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100명의 입을 통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되살릴 방법을 들어본다. [편집자 주]

“작년에 이사하기 위해 집을 보러 가면 수십 명이 줄을 서곤 했어요. 도심에서 차를 타고 30분은 가야 하는 곳인데 말이에요. 집주인이 제시한 월세보다 더 주겠다고 나서야 겨우 집을 구할 지경이었으니까요.”

호주 시드니에서 만난 직장인 박모(42) 씨는 “호주 이민을 온 30~40대들이 비싼 집값을 감당하지 못해 도시를 떠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호주 이민 12년 차인 박 씨는 자기소득의 약 40%를 월세로 내고 있다. 그는 “호주가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란 인식이 있지만, 도시에 사는 사람에겐 언감생심”이라고 말했다. 

저출산 원인으로 꼽히는 ’비싼 집값‘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구 반대편 호주도 주택난이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생활이 여유롭고 근로 소득이 높아 이민하기 좋은 나라란 인식에 호주로 건너왔지만, 여기서도 맞벌이 생활을 하지 않으면 월세를 감당하기 힘들다”고 박 씨는 털어놨다.

호주 통계청(ABS)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평균 임금은 0.8% 올랐지만, 아파트 임대료는 3.3%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단독주택 임대료는 임금 상승률의 6배가 넘는 5%가량이 올랐다. 이런 임대료 상승률은 ABS가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래 최대치다.

지난 2010년 HSB은행이 해외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서 호주는 외국인들이 자녀를 키우기에 가장 좋은 나라로 선정됐다. 당시 호주의 출산율은 1.93명이었다. 14년이 지난 2023년 호주의 출산율은 1.63명대로 떨어졌다.

저출산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호주의 이야기를 시드니에 거주하는 이민자의 입을 통해 들어봤다.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상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이곳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다음은 호주 이민자 박 씨와의 일문일답.

호주 시드니에 거주 중인 박모 씨(42)는 높은 집값 탓에 호주도 출산하기 힘든 나라가 됐다고 주장한다. / 사진=시사저널e
호주 시드니에 거주 중인 박모 씨(42)는 높은 집값 탓에 호주도 출산하기 힘든 나라가 됐다고 주장한다. / 사진=시사저널e

Q. 출산율이 낮아지는데도 호주 인구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사실 호주 자체가 이민자들로 시작된 나라다. 이민 정책도 대체로 관대한 편이다. 하지만 이젠 무분별한 이민자 수용이 부작용을 낳았다.

우선 집값이 너무 뛰었다. 호주 정부가 코로나19로 인력이 부족해지자 이민 수용 인원을 대폭 늘리면서 주택난이 시작됐다. 임대 수요에 비해 주택 공급은 턱없이 부족하다. 최근 1년 새 집값이 10~20%는 올랐다. 호주 정부가 향후 5년간 3만가구를 더 건설하는 등 주택난 해소를 위해 여러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이민 정책의 부작용 중 하나다.

한인이 많이 사는 리드컴 지역만 해도 방 한 칸 임대료가 한 주에 350 호주달러(32만원)가 넘는다. 한국으로 따지면 월세가 120만원이 넘는 수준이다. 혼자 살면 모를까, 자녀를 계획한다면 더 큰 집으로 이사해야 하지 않겠는가. 방 두 칸에 화장실이 딸린 집에 살면 연 1억원을 벌어도 임대료로 수입의 30% 이상을 내야 한다. 외벌이면 생활이 힘들다. 대부분 교민은 맞벌이한다.”

Q. 인구성장을 통해 경제를 살리고자 하는 정책이 한계가 있다고 보는가

“이민자를 계속 받게 되면 장기적으론 문제가 커질 것 같다. 살 집은 없는데 이민자를 계속 받으면서 사회 갈등도 생겼다. 집을 보러 가면 보통 10~20팀이 경쟁을 한다. 

상황이 이렇자 시드니, 멜버른 등 대도시에는 집이 없어 자동차나 텐트 등 임시 숙소에서 지내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정부가 비자 발급 요건을 강화하는 등 뒤늦게 규제에 나선 상황이다. 한국도 이민 정책을 펼칠 때 이런 점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Q. 아직도 호주를 ‘아이 키우기 가장 좋은 나라’라고 생각하나

“예전엔 그랬지만 지금은 아니다. 출산율이 말해준다. 작년 기준 호주 출산율은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앞서 말했듯 가장 큰 원인은 ‘주거 불안정’이다. 호주 사람들은 출산을 계획할 때 ‘집을 살 수 있는지’ 여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문제는 집값이 계속 오르고 있단 점이다. 

교육격차도 심해지고 있다. 처음 이민을 온 당시만 해도 시드니에는 미술학원, 피아노학원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한국과 달리 아이들은 오후 3시면 하교했다. 하교한 아이들이 동네 공원에 모여 럭비를 하는 게 일상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여유가 되는 엄마들은 과외활동을 위해 하교한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이동하기 바쁘다.

한국보다 출산 지원 제도도 박하다. 이민자가 인구 증가에 상당한 역할을 해서 그런 것이라고 본다. 저소득층이 아니면 혜택이 거의 없다. 유급 육아휴직 기간도 한국보다 짧은 20주에 불과하다. 정부는 육아휴직 기간을 점차 늘려나갈 계획이지만, 육아휴직 수당을 최저시급 수준을 주기 때문에 높은 생활비를 감당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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