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확보 방안, SK㈜ 주식 외 자산 매각·대출 등
SK㈜ 주가 부양, 배당 확대 예상···자회사 상장 가능성도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로 1조3808억원을 지급하라고 2심 법원이 판결했다. 재판부가 재산분할액을 현금으로 지급하라고 한 만큼 지분을 쪼개서 줘야 하는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그 규모가 상당해 현금 마련 방법 찾기에 고심할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이 SK㈜ 지분 매각을 최소화하며 현금을 확보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재계 중론이다. 다만 비상장사인 SK실트론 지분 매각, 주식 담보 대출 외에 달리 선택할 방법이 없어 최 회장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가사2부(부장판사 김시철 김옥곤 이동현)는 전날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위자료 20억원과 재산분할로 1조3808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면서 최 회장이 재산분할액을 노 관장에게 현금으로 지급하라고 했다.
2심 재판부는 두 사람의 재산총액을 약 4조115억원으로 추산하고 최 회장과 노 관장이 각각 65%, 35%로 재산을 나눠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가 노 관장의 경영 기여를 인정하며 SK그룹 지주사인 ㈜SK 주식을 비롯해 최 회장의 재산은 모두 분할 대상이라고 판단하면서다.
‘재산분할 대상’이 된 최 회장의 재산 대부분은 주식이다. 최 회장이 친족 23명에게 증여한 SK㈜ 지분(약 1조원)도 분할 대상이 됐다.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을 약 2조원760억원으로, 비상장사인 SK실트론의 지분 29.4%는 대략 7500억원으로 봤다. 약 115억원으로 산정된 SK디스커버리 지분, SK케미칼 우선주 지분, SK텔레콤 주식, SK스퀘어 주식 등도 재산분할 대상이 됐다.
◇ SK실트론 지분 매각 유력
1심과 달리 2심서 재산분할 규모가 대폭 커지면서 SK그룹은 대응 방안 마련에 고심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은 ㈜SK 지분 17.73%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최 회장→SK㈜→그룹 자회사’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공고히 하기 위해선 경영권에 위협이 될 지분 처분 방식은 피할 것으로 보인다. 2003년 불거진 ‘소버린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증권업계는 최 회장이 보유한 SK실트론 지분(29.4%) 매각안이 유력하다고 보고 있다. SK디스커버리 등 최 회장이 보유한 다른 계열사 주식의 값어치는 이날 기준 약 115억원 수준으로 그다지 크지 않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최태원 회장이 SK㈜ 지분을 지키기 위해 SK실트론 등 비상장사 지분을 처분하는 방안도 고민할 것”이라고 했다.
SK㈜는 2017년 LG로부터 LG실트론 주식 51.0%를 6200억원에 취득했는데, 최 회장은 지분 29.4%에 대해 총수익스왑(TRS) 계약을 체결했다. TRS는 투자 자체를 담보로 잡고 추가로 돈을 빌려주는 일종의 대출이다. 지분 가치가 오르면 최 회장이 수익을 갖고, 금융 회사는 수수료를 수취한다.
최 회장의 SK실트론 지분의 가치는 약 7500억원이지만, 인수 당시 가치가 2535억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최 회장이 수취할 손익은 5000억원 수준으로 평가된다. 양도소득세도 고려해야 한다. 판사 출신 이현곤 법무법인 새올 변호사는 “(최 회장은) 1조가 넘는 현금이 있을 리 없으니 현금 마련을 위해 주식을 팔거나 주식으로 대체 지급할 수밖에 없다”면서 “추가로 양도세까지 내야 해 수천억 이상의 추가 비용 지출이 예상된다”고 주장했다.
◇ 주식담보대출 가능성도···SK㈜ 몸값 높이기 작업 이어질 듯
SK㈜ 지분을 담보대출 형태로도 활용할 수 있다. 주식담보 대출은 통상 대출일 전날 종가 기준으로 40~70% 수준에서 자금을 조달한다. 최 회장이 보유한 SK㈜ 지분(17.73%)의 가치는 전날 종가 기준 2조514억원이다. 다만 최 회장이 이미 보유 주식 59.2%인 767만주를 담보로 4115억원을 대출받은 바 있어 추가 대출 여력은 줄어든 상태다.
다만 주식담보대출을 활용할 경우 이자 부담은 감수해야 한다. 연 6~10% 수준의 주식담보대출 이자를 감당하기 위해선 매달 50억원 이상을 지출해야 한다.
주식담보 대출 가능성이 커지면서 SK가 주가 부양책을 내놓거나 배당을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빌린 돈 보다 담보로 맡긴 SK㈜ 주식 가치를 높여야 최 회장에게 유리하기 때문. SK㈜의 별도기준 배당 성향은 2020년 19%에서 2022년 51%로 크게 올랐다. 지난해는 70%를 상회했다.
담보주식의 주가가 떨어지면 증권사는 최 회장에게 추가로 담보 설정을 요구하게 된다. 최 회장이 이를 이행하지 못하면 주식을 강제 처분하는 반대매매를 강행할 수 있다. 반대매매는 곧 최 회장의 의결권 축소로 이어진다.
최근 SK그룹의 활발한 자사주 매입·소각 움직임도 주목할 만하다. 전날 ㈜SK는 이사회를 열고 지난해 매입한 자기주식 69만5626주의 전량 소각을 의결했다고 공시했다. 통상 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하고 소각하면 주당 가치가 높아지는 효과로 이어진다.
SK㈜ 기업가치 상승을 위한 자회사 상장에도 속도가 붙을 수 있다. 현재 SK㈜의 주요 비상장 계열사는 E&S와 SK에코플랜트, SK실트론 등이다. SK㈜ 배당금 수익 중 SK E&S가 차지하는 비중은 30% 이상으로 추산된다.
재산분할 지연이자도 대법원 확정 판결 이후 발생한다. 2심 재판부는 판결 확정일 다음날부터 재산분할 지연이자를 연 5%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계 관계자는 “대법원의 최종 판결에서 재산분할 결과가 달라질 가능성도 있지만, 연 5% 수준의 지연이자 비용도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법원 이자 비용, 주식담보대출에 따른 이자 비용, 양도세 등으로 최 회장이 실제 지출하는 금액은 2조원 대에 육박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