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CATL, '캐즘'에도 올 1분기 수익성↑···원재료 공급망 확대 전략
SK온, 9분기 연속 적자·LG엔솔, AMPC 제외하면 사실상 적자
좁혀진 기술 격차···앞서가는 LFP, 뒤따라오는 '전고체 배터리'

/그래픽=시사저널e DB
/그래픽=시사저널e DB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전기차 '캐즘'(대중화 전 일시적 수요 정체기)에 국내 배터리업계가 올해 1분기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배터리 1위 업체인 CATL은 되려 전년 동기 대비 영업이익이 증가하는 등 성장세를 이어간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업체들이 자국 외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시장 점유율을 더욱 확대한 데다 리튬·니켈 등 핵심광물 수직계열화를 통해 안정된 공급망을 갖추면서 우월한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29일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자회사 SK온이 올해 1분기 영업손실 3315억원을 기록했다고 공시했다. 9개 분기 연속 흑자 전환에 실패한 데다 영업손실 규모도 전 분기(186억원)에 비해 18배가량 뛰었다. SK온 매출은 같은 기간 49%(1조395억원) 줄어든 1조6836억원을 기록했다.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사업의 처참한 실적 원인을 시장으로 돌렸다. SK이노베이션 측은 "캐즘에 따른 판매 물량 감소와 판가 하락 등으로 1분기 수익성이 다소 부진했다"고 설명했다. 

수요 감소에 따른 생산량 감소로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상 첨단제조 생산 세액공제(AMPC)도 축소됐다. 올 1분기 SK온의 AMPC 규모는 385억원이다. 

국내 1위 배터리 업체 LG에너지솔루션도 실적 부진을 피하지 못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25일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1573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5.2% 줄어든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공시했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상 첨단제조 생산 세액공제(AMPC) 금액인 1889억원을 제외하면 사실상 적자를 냈다. 

1분기 실적 발표를 앞두고 있는 삼성SDI 역시 부진을 피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삼성SDI의 올 1분기 실적은 매출 5조1911억원, 영업이익 2281억원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매출은 3.1%, 영업이익은 39.2% 축소될 것이란 관측이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시장에서 단기적으로 성장세 둔화가 나타나며 업황이 바닥을 찍었다”며 “배터리 광물 가격이 급락한 원인도 있다”고 말했다. 

중국 푸지엔성 닝더시의 CATL 본사. /사진=CATL
중국 푸지엔성 닝더시의 CATL 본사. /사진=CATL

중국 배터리 업계 분위기는 위기감에 휩쌓인 국내 3사와는 사뭇 다르다. 리튬·니켈 등 핵심광물 가격 하락분 판가 반영, 전기차 수요 감소라는 외부 요인 속에서도 점유율·수익성 모두 성장하는 모양새다. 

지난해 기준 글로벌 이차전지 시장은 중국 업체가 선두를, 한국이 뒤를 잇는 실정이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CATL의 매출 기준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30.6%로 1위 자리를 유지했다. LG에너지솔루션(16.4%)이 뒤를 이었고 SDI(7.8%)와 SK온(7.5%)은 각각 4위와 5위로 집계됐다. 출하량 기준으로는 CATL(35.6%)과 BYD(15.6%)가 각각 1위와 2위를 기록했다. 그다음으로는 LG에너지솔루션(14.9%), SK온(6.6%), 삼성SDI(5.7%) 순이었다.

중국 CATL은 올해 1분기 105억위안(약 2조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전통적인 비수기로 분류되는 1분기임에도 순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7% 성장한 것이다. 이는 LG에너지솔루션 영업이익의 약 12배 수준이다. 

국내 배터리업계와 달리 CATL이 수익성을 지킬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 미국의 IRA 발효 등 서구의 중국 배터리 굴기를 저지하려는 움직임에도 중국 업체들은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시장을 개척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CATL은 포드에 배터리 기술 라이선스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미시간주에 공장을 짓는 등 미국 완성차 업체와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주요 배터리 공급업체인 테슬라와도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 CATL의 로빈 젱 회장 겸 창립자가 중국 베이징을 깜짝 방문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만났다고 로이터통신이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하기도 했다. 블룸버그는 “CATL의 가격 경쟁력은 IRA 등 각국 정부의 지원에도 다른 기업의 경쟁을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배터리 업계가 배터리를 싸게 팔 수 있는 비결은 '공급망 수직 계열화'에 있다. 전기차 수요 침체기에 가격 경쟁력은 더욱 큰 무기로 작용한다. CATL은 호주, 칠레 등 리튬 매장량이 많은 해외 광산 지분을 투자하는 방식으로 공급망을 확보해왔다. 이를 통해 핵심 광물부터 배터리까지 수직계열화를 구축, 가격 경쟁력을 더욱 강화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중국 CATL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출처=연합뉴스
중국 CATL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출처=연합뉴스

단순히 우월한 수익성만 갖춘 게 아니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시장 점유율을 확대해왔던 중국 배터리업계가 이제는 기술력까지 확보하면서 한국을 바짝 뒤쫓고 있다는 평가다. 국내 배터리 업체가 장악하고 있던 프리미엄 배터리 시장도 중국 업체들이 속속들이 진출하는 모양새다. 

최근 CATL은 10분만 충전하면 1000km를 주행할 수 있는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신제품을 공개했다. 전기차 가격인하 경쟁이 시작되면서 CATL은 올해 중반까지 kWh당 LFP 배터리 비용을 50% 절감할 것이라고 밝히는 등 공격적으로 LFP 배터리를 키우고 있다.

반면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 중에선 아직 전기차용 LFP 배터리 양산에 나선 업체가 없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는 각각 이르면 2026년, 2027년부터 전기차용 LFP 배터리 양산에 나선다. 향후 2년간은 LFP 배터리 시장서 중국 업체의 독주 무대가 펼쳐질 예정이다. 

차세대 배터리 기술 확보를 위해 연구개발(R&D) 비용도 증액해야 한다. 최근 CATL이 오는 2027년 전고체 배터리를 양산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면서 삼성SDI 등 경쟁사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삼성SDI는 CATL과 같은 오는 2027년을, LG에너지솔루션은 2030년을 전고체전지(황화물계) 양산 시점으로 잡고 있다.

지난해 국내 배터리 3사는 연구개발 분야에 총 2조4743억원을 투자했다. CATL 연구개발(R&D)비(약 3조4000억원)에 못 미치는 규모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