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 대한항공 유럽 노선 배분·아시아나 화물사업 입찰서 빠져···미주 노선도 가능성 희박
유럽 가진 티웨이항공에 통합 LCC 출범 등으로 경쟁력 악화 우려
일본, 중국, 동남아 등 기존 먹거리 사업 주력할 듯
[시사저널e=박성수 기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에 따라 배분되는 운수권, 슬롯(공항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 화물 사업 등을 확보하기 위해 항공사들이 분주한 가운데 제주항공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번에 시장에 나온 운수권, 슬롯, 화물 사업은 양사 합병으로 인한 독점 우려가 예상됐던 것들이며, 수익성도 그만큼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업계에선 양사 합병으로 인해 진에어, 에어부산, 에어서울 등 계열사가 합친 통합 항공사가 등장하면서 기존 저비용항공사(LCC) 1위인 제주항공이 선두권을 뺏기지 않기 위해 적극적으로 운수권 및 화물 사업 쟁탈전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제주항공은 유럽 운수권에 이어 화물 사업 입찰도 손을 떼면서 독자 노선을 걸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합병 과실을 확보한 다른 항공사 대비 경쟁력 악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제주항공은 지난 25일 진행된 아시아나 화물사업 본입찰에서 최종적으로 불참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초 제주항공은 예비입찰에서 적격인수후보자로 선정되며 아시아나 화물 입찰을 준비했으나 결국 본입찰에선 빠졌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아시아나 화물 매각 사업을 실사한 결과, 여러 가지 불가피한 사정으로 구속력 있는 인수제안을 준비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제안서 미제출했다”며 “인수 후 성과에 대한 불확실성, 기존 여객 사업과의 시너지 등 제한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검토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아시아나 화물 사업은 에어프레미아, 이스타항공, 에어인천 중 한 곳이 가져갈 것으로 예상된다.
화물 사업 뿐 아니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유럽 일부 노선도 티웨이항공이 확보했다.
앞서 티웨이항공은 유럽연합(EU) 경쟁당국 조치에 따라 파리, 로마, 바르셀로나, 프랑크푸르트 등 4개 노선을 가져갔다.
미주 노선의 경우 아직 정해지진 않았으나 에어프레미아가 넘겨 받을 가능성이 높다. 앞서 미국 법무부는 샌프란시스코, 호놀룰루, 뉴욕, LA, 시애틀 등 5개 노선에 대해 독점 우려를 표했는데, 해당 노선 중 상당수를 에어프레미아가 현재 운영하고 있다.
해당 노선들은 단거리 노선 대비 수익성이 상당히 높은 알짜 노선으로 알려졌다. 최근 티웨이항공이 제주항공을 맹추격하고 있는 가운데 유럽 노선까지 확보하면서 추격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 B737-8 구매, 득인가 독인가
제주항공의 이같은 행보는 차세대기 기종 구매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제주항공은 지난 2018년 11월 보잉사와 ‘B737-8’ 50대(확정 40대, 옵션 10대)에 대한 구매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통상 국내 LCC들은 항공기를 리스로 운영하는 경우가 많은데 제주항공은 이례적으로 구매기로 전환했다.
문제는 B737-8의 경우 기존 LCC 주력기인 ‘B737-800’ 보다는 운항거리가 길지만, 유럽까지 가기에는 부족하다.
앞서 티웨이항공이 중대형기를 도입해 유럽을 운항할 수 있게 된 반면, 제주항공은 운항거리가 짧아 대한항공의 유럽 노선 운수권 배분에서도 제외됐다.
당시 회사 내에서도 티웨이항공의 중대형기 도입과 통합 LCC 출범에 따라 제주항공도 중대형기를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으나, 회사는 “장거리 기재를 도입하는 것은 회사 근간을 바꾸는 것”이라며 “장거리 기재 도입을 고려할 때가 아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일각에선 이번 아시아나 화물 사업 인수 포기도 B737-8 구매에 따른 자금력 부족이 일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 “잘하는 거 하자”
제주항공은 기존대로 일본, 중국, 동남아 등 중·단거리 노선에 집중하면서 규모의 경제를 통해 수익을 내겠다는 전략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제주항공 국제선 실적은 222만명으로 LCC 중 독보적인 1위이며 아시아나(284만명) 뒤를 바짝 쫓고 있다. 국내 노선 이용객 중 약 85%가 일본, 중국, 동남아 등 아시아권에 몰려있는 만큼 아시아 내 운항 점유율을 늘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계산이다.
또 단일 기종으로 운영하면 항공기를 대량으로 구매할 때 항공기 제조사에서 할인율을 높여주기 때문에 비용을 줄일 수 있으며 정비 및 조종사 인력, 운항 스케줄을 관리할 때 이점이 크다.
아울러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합병에 따라 일본 오사카, 삿포로, 후쿠오카 등 일부 슬롯이 배분되는데 이를 확보해 일본 점유율을 더 늘리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제주항공은 기존 단거리 위주 기조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며 “이번에 아시아나 화물 인수전에 참여한 것도 신사업 다각화를 위한 하나의 검토 과정 정도였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