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전쟁·기준금리 인하 지연···'강달러' 현상 지속
원화가치가 유독 하락폭 커···당국 '비상 대응 체제'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올해 원·달러 환율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가장 높게 오른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달러 강세로 인한 결과지만, 다른 국가의 화폐보다 원화가 더 크게 하락해 한국경제의 대외 취약성이 반영됐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19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382.2원에 거래를 마쳤다. 작년 말 종가(1288.0원)와 비교해 7.3% 올랐다. 한해 첫 4달 남짓한 기간 동안 환율이 7% 넘게 뛴 경우는 외환위기가 터진 지난 1997년 이후 처음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과 2009년에는 같은 기간 각각 6.9%, 5.8% 오른 바 있다.
원·달러 환율이 급등한 핵심 이유로 달러화 강세 현상이 꼽힌다. 달러 인덱스는 같은 기간 4.8% 올랐다. 이 지표는 유로, 일본 엔, 영국 파운드, 스위스 프랑, 캐나다 달러, 스웨덴 크로나 등 6개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나타낸다.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 인하 시기를 미룰 가능성이 커진 탓이다. 최근 미국은 고용시장이 계속 호조인 것으로 나타나는 등 인플레이션 수준이 쉽게 진정되지 않고 있다. 통상 고금리는 통화가치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란이 이스라엘을 침공하는 등 중동전쟁이 격화돼 안전자산인 달러 수요가 늘어난 점도 달러 가치를 높이는 이유로 제기된다.
하지만 다른 통화 대비 원화가치가 유독 더 많이 하락한 점은 강달러 현상만으로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해석이 많다. 원화 가치 낙폭은 연준이 달러지수를 산출할 때 활용하는 주요 교역국 26개국 가운데 7번째로 높은 수치다. 한국보다 통화가치가 더 크게 하락한 국가는 칠레(10.0%), 일본(9.8%), 스웨덴(9.0%), 스위스(8.5%), 브라질(8.1%), 아르헨티나(7.6%) 등이다.
더구나 이번엔 환율 상승으로 인한 수출 호재를 누리기도 어렵다는 관측도 나온다. 보통 환율이 오를 때 마다 수출품의 외화가격이 내려가 무역수지가 개선되는 효과가 발생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수출 경쟁국인 일본 엔화 가치도 저평가되고 있어 이 효과가 미미할 것이란 전망이다. 고환율로 인해 물가 상승이란 악재만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외환당국도 원화가치가 지나치게 하락했다고 보고 비상대응 상태에 돌입했다. 기획재정부는 매일 차관보 주재로 실물 및 금융부문 '관계기관 콘퍼런스콜'을 통해 환율 동향을 면밀히 파악하기로 했다. 또 경우에 따라 차관급 또는 장관급 회의로 격상해 대응한다는 방침도 세웠다.
지난주 'IMF·세계은행(WB) 춘계회의'에 참석한 미 워싱턴D.C.를 찾은 한·일 재무장관은 "원화와 엔화 통화가치 급락에 심각한 우려를 공유한다"는 입장을 밝힌 이유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이후 열린 '한·미·일 3개국 재무장관 회의'에서도 "엔화와 원화의 급격한 평가절하에 대한 일본과 한국의 심각한 우려를 인지했다"는 공동 메시지를 발표했다. IMF 춘계총회 참석차 방미 중인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원·달러 환율 변동에 대해 경고성 메시지를 잇따라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