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엔솔, IRA 세액공제 제외하면 올해 1분기 적자전환 전망
세계 평균 가격보다 54% 저렴한 中 배터리팩
韓 가동률 조정·원재료 직접 조달·투자 일정 조절 등으로 대응
[시사저널e=유호승 기자] 국내 배터리 업계가 중국의 낮은 가격을 앞세운 물량공세에 ‘삭풍(朔風)’을 맞고 있다. 분기를 거듭할수록 영업이익이 쪼그라들면서 앞서 나타난 빠른 성장세에 제동이 걸린 모양새다.
고객사인 완성차 업체들도 원가절감을 이유로 중국산 저가 배터리 투입량을 늘리고 있어서다. 우리 기업들은 중국산 배터리에 맞서기 위해 판매가격 인하를 고민해야 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3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한국 배터리 3사 중 글로벌 점유율이 가장 높은 LG에너지솔루션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은 3382억원이다. 이 중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세액공제 2501억원을 제외하면 실제 이익은 881억원이다.
같은 해 3분기 7312억원과 비교하면 초라한 수치다. 분기마다 역대급 실적을 기록하며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지만, 전기차 수요둔화 및 중국 기업의 약진 등으로 하락세가 두드러진다.
김현수 하나증권 연구원은 “LG에너지솔루션의 매출 비중 64%를 차지하는 자동차 전지 부문은 유럽 전기차 시장의 부진으로 실적이 감소했다”며 “올해 1분기에는 IRA 세액공제 보조금을 제외하면 적자전환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연구원은 LG에너지솔루션의 올해 1분기 실적으로 매출 6조3000억원, 영업이익 296억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28%, 영업이익은 95% 줄어든 수준이다. IRA 보조금이 지난해 4분기 규모라면 영업손실은 2200억원 수준이다.
LG에너지솔루션뿐만 아니라 삼성SDI, SK온 등도 실적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익하락의 가장 큰 원인은 전기차 수요의 부진이다. 현대차그룹의 싱크탱크인 ‘HMG경영연구원’은 전세계 전기차 시장 성장률이 2021년 117.1%, 2022년 65.2%에서 지난해 26.0%로 줄어든 데 이어 올해는 23.9%로 둔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줄어든 전기차 수요에 국내 배터리 판매량도 줄어들면서 실적이 하락 전환하는 것이다. 또한 글로벌 1위 배터리 기업인 중국 CATL과 2위 BYD가 제품 판매가격을 크게 낮추는 저가 공세에 나서면서 우리 기업의 입지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CATL을 비롯한 중국 기업의 배터리팩 가격은 1킬로와트시(kWh)당 75달러(약 10만원)다. 전기차 배터리는 조립 단위에 따라 셀·모듈·팩으로 나뉜다. 여러 배터리 셀을 외부 충격 및 열·진동 등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프레임에 넣은 것이 모듈, 이 모듈을 묶어 각종 제어 및 보호 시스템을 장착한 것이 팩이다.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지난해말 기준 글로벌 배터리팩의 평균 가격은 139달러(약 18만5000원)다. 중국 제품이 세계 평균 가격의 54.1%에 완성차 기업에 공급 중인 셈이다. 배터리는 전기차 생산 원가의 약 40%를 차지한다. 고객사 입장에서는 원가를 절감하기 위해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배터리의 투입량을 늘리고 있다.
국내 기업은 악재가 가득한 이 시기를 이겨내기 위해 감산과 더불어 판매가격 인하까지 고려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유럽에서 전기차 수요가 크게 줄어들고 있어 현지 공장 가동률을 낮춰 재고가 많아지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하고 있다”며 “중국 업체가 가격을 무기로 시장 점유율을 늘리고 있어 우리 기업 역시 판가하락 압박을 받고 있어 조정이 불가피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칠레 등에 리튬 생산 공장을 세워 현지에서 저렴한 가격에 원재료를 조달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칠레의 리튬 매장량은 930만톤(t)으로 세계 1위다. 이차전지 소재 기업을 거치지 않고 직접 리튬을 채굴·가공하면 그만큼 원가를 절감해 판매가격을 낮출 수 있어서다.
예정된 투자 일정도 시장 상황에 따라 재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업계 상황과 고객사 수요 변화를 예의주시해 투자 진행에 속도 조절이 필요하면 프로젝트 관계자들과 협의해 조정을 검토할 방침”이라며 “유연하고 능동적으로 투자를 집행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