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동 중단시 재시작까지 2주일”···손해에도 생산 지속하는 이유
투자 계획 전면 재검토, 재무안정 확보까지 핵심 사업 外 ‘연기’

LG화학 전남 여수 생산라인. / 사진=LG
LG화학 전남 여수 생산라인. / 사진=LG

[시사저널e=유호승 기자] “업황과 시장이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현재 상황은 위기를 넘어 절망 수준입니다.”

한 석유화학업계 관계자의 토로다. 경기침체 등으로 글로벌 석유화학 제품 수요가 크게 줄어드는 ‘보릿고개’가 계속되면서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하소연이 불거진다. 어려움에 대응하기 위해 감산에 감산을 거듭하며 공장 가동률을 최대한 낮췄음에도 시장 회복 가능성이 불투명해 ‘한계’에 직면했다는 얘기다.

2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LG화학 석유화학부문과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 케미칼 부문, 금호석유화학 등 국내 대표 석유화학 4사의 공장 가동률은 매년 하락 추세다. 지난해 3분기 기준 4사의 가동률은 각각 ▲LG화학 75.3% ▲롯데케미칼 80.1% ▲한화솔루션 72.1% ▲금호석유화학 64.7%다.

2년 전인 2021년에는 LG 91.9% 롯데 89.6% 한화 93.3%, 금호석화 85.3% 등으로 평균 90%에 가까운 가동률을 보였지만, 2년 만에 약 20%가 하락했다.

수익지표인 에틸렌 스프레드(에틸렌에서 나프타를 뺀 가격)는 손익분기점인 300달러 선을 오랜 시간 밑돌고 있다. 에틸렌은 석유화학 제품의 기초 원료다. 석유화학 기업은 나프타를 열분해해 나온 에틸렌 등 다양한 원료를 판매해 수익을 얻는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집계한 원자재 가격 정보를 보면 현재 에틸렌 스프레드는 210달러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는 “시황 악화로 감산 규모를 늘리면서 공장 가동률을 축소하고 있다”며 “수요가 없다고 가동을 중단한다면 안정적인 재가동까지 최소 2주일 이상의 시간이 필요해, 공장 운영이 손해라는 것을 알아도 생산라인을 멈출 수는 없다”고 귀띔했다.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국내 4사의 최대 수출국인 중국은 자국 정부 주도로 석유화학 제품 자급률을 빠르게 끌어올리는 중이다. 이로 인해 우리 기업의 판매량은 현재보다 더욱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서는 중국의 석유화학 기초 유분 자급률이 조만간 100%에 달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하루 빨리 국내 기업의 재고를 처분하거나 앞으로 지속적으로 거래를 할 공급 국가를 다변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재고 정리와 공급망 다변화에 속도가 나지 않는다면, 늘어나는 재고자산으로 인한 평가손실은 눈덩이처럼 커진다. 재고자산은 한 기업이 구매한 원재료 및 판매를 위해 생산한 제품 등의 가치다. 판매를 목적으로 보유 중인 상품과 원자재, 부재료 등이다.

국내 4사 중 재고가 가장 많은 곳은 롯데케미칼로 약 3조원 규모다. 이를 보관할 창고나 관리·유지비로 발생하는 손해가 재고평가손실이다. 증권가가 파악한 롯데케미칼의 재고평가손실은 1000억원에 달한다.

국내 4사는 가동률을 낮추는 감산은 이미 한계에 직면했다며, 업황이 회복될 때까지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투자 계획을 ‘보수적 추진’으로 방침을 바꿨다.

대표적으로 한화솔루션은 고부가가치 소재 ‘크레졸’의 신규 투자 계획을 연기한다고 최근 공시했다. 2020년 1200억원을 투입해 연산 3만톤(t) 규모의 관련 시설을 짓겠다고 밝혔지만 경영환경 변화에 일정을 잠정 연기한 것이다.

한화솔루션의 크레졸 사업 연기는 이번이 두 번째다. 사업 시작 계획 시점을 지난해에서 올해로 미룬 데 이어, 이번에는 연구개발 및 설비보완 등을 이유로 미룬 것이다.

다른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인도네시아 라인 프로젝트 등 핵심 사업을 제외한 투자 건에 대해서는 재무 건전성 확보를 위해 보수적 관점에서 전면 재검토하고 시기를 재조율하고 있다”며 “업황이 회복됐다고 판단되는 시점에 자금 상황을 살펴 밀린 투자를 집행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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