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등급 전망 하향···주가도 1만원 밑돌아
“전기차 성장 지속”···사업장 재편·확장 병행
[시사저널e=최동훈 기자] 전기차(BEV) 열관리시스템 시장의 세계 2위 업체인 한온시스템이 최근 전기차 시장 성장세 둔화 때문에 주춤하고 있다. 한온시스템은 불확실한 업황에 대응하는 한편 최근 단행한 대규모 투자의 효용을 입증하기 위해 분투하는 중이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한온시스템은 최근 불확실한 시장 흐름 속에서 기업가치 제고 가능성에 대한 시장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지난 15일 한온시스템의 회사채에 대한 신용등급 전망을 ‘AA-/안정적’에서 ‘AA-/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AA-’는 회사채 상환 가능성(확실성)이 매우 높을 때 매겨지고, ‘부정적’은 사업 안정성 등을 고려할 때 향후 중기적으로 등급이 하향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한온시스템이 이날 현재로서는 만기를 앞둔 회사채들을 상환할 능력이 있지만, 그 수준이 점차 약화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 가능하다.
◇올해 물가상승 이어져 전기차 구매부담 지속될 듯
한온시스템 신용등급에 대한 한신평 평가는 최근 전기차 시장 추세와 전망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고물가 기조로 인해 소비자들의 가처분 소득이 줄고, 전기차 구매부담은 지속 확대돼 시장 성장세가 더욱 둔화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영국 전기차 시장 분석기관 로 모션(Rho Motion)은 올해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PHEV)를 포함한 전기차 글로벌 판매 실적이 지난해(1360만대)보다 25~30%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에 전년 대비 31% 정도 성장한데 비해 증가폭이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난 2022년에 전년(2021년) 대비 약 60% 증가한 데 비하면 절반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한온시스템의 열관리 시스템 주요 공략지인 미국의 소비자들도 지난해 전기차 가격 부담을 크게 느낀 것으로 파악됐다. S&P 글로벌 모빌리티에 따르면 지난해 1~10월 기간 미국 소비자들이 전기차 구매 후 매월 지불한 평균 금액(할부액)은 828달러로 휘발유차(675달러), 하이브리드차(670달러)보다 높다.
이 가운데 한온시스템의 공급 확대 가능성을 저해하는 변수들이 잇달아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등 일부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의 신차 개발, 공장 설립 계획을 철회했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부품 계열사 현대위아에 전기차 열관리 사업 담당 조직을 신설하는 등 공급 내재화를 추진 중이다. 한온시스템의 밥그릇 경쟁이 더욱 치열해진 형국이다.
◇주가 2년 넘게 하락세
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요동치다 보니 한온시스템 주가도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한온시스템 주가는 코로나19 확산세의 완화와 현대차그룹의 E-GMP 기반 전용 전기차 출시 등 호재가 있던 2021년 상반기까지 1만7000원에 육박하는 수준을 보였다. 하지만 이후 반도체 수급난, 권역별 전쟁, 물가 상승 등 변수 때문에 전기차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주가는 줄곧 하락해 현재 1만원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다.
같은 기간 최대주주인 사모펀드 한앤컴퍼니의 한온시스템 매각 추진 사실이 알려졌지만 투자업계의 자금조달 차질로 인해 보류된 후 주가 하락세를 부채질했다. 한앤컴퍼니는 매분기 배당을 실시하며 투자자 달래기에 힘쓰고 있지만 주주들 사이에서는 “잠재 투자자들의 자금조달 난항으로 매각이 보류된 상황에서 결국 대주주 배불리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실정이다.
이밖에 올해부터 미국 테네시주(洲)에 거액인 1163억원을 투자 종료 기간없이 투입해 전기차 열관리 설루션 생산공장 설립을 추진하는 점도 업계의 모니터링 대상에 올랐다. 급변하는 북미 시황 속에서 한온시스템이 앞으로 쏟아부을 투자금에 대한 회수 능력을 입증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온시스템이 기업가치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영업실적을 확대해 기업을 둘러싼 부정적 전망 요인들을 제거하는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한국신용평가 기업평가본부 관계자는 “당초 예상대비 더딘 전기차 수요 성장과 일부 고객사의 친환경차 판매부진 등이 (한온시스템의) 이익창출력 개선폭을 제한할 전망”이라며 “중장기적으로는 근원적인 이익창출력 제고를 위해 친환경차 부품 수요 증가로 생산설비 가동률이 개선돼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사업장 재편통한 효율 강화 추진
한온시스템은 업황 개선에 따른 공장 가동율 제고를 위해 만전을 기하는 한편, 단기적 관점에서 실행 가능한 비용절감 방안을 다각도로 모색하고 있다. 사업장 구조조정, 협상조건 개선 등을 통해 비용 줄이기에 힘쓰는 중이다.
올해 말까지 유럽 일부를 포함한 글로벌 사업장에서 임직원을 1000명가량 축소해 인력 운용 효율을 개선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권역별 사업장을 통합하거나 제조 프로세스를 개선하는 등 방식으로 설비종합효율(OEE)을 높이고, 공급망 관리를 강화해 물류비 등 비용구조를 재편한다는 전략이다.
또한 고객사들을 대상으로 납품단가를 현실화해 수익구조를 개선하는데도 힘쓴다는 방침이다. 그간 강화해 온 기술력과, 글로벌 유력 고객사들을 대상으로 축적해 온 공급실적을 앞세워 거래 조건을 향상시키며 이윤을 증대시킬 계획이다. 지난해 완성차 업체들이 물류비, 원자재값 인하의 혜택을 누려온 가운데 한온시스템이 상호 호혜적 거래 관계를 위한 새 협상을 시도해볼 만하다는 관측이다.
한온시스템 관계자는 “그간 전기차 분야에 선제적으로 투자하고 선행 기술을 양산화해왔기 때문에 앞으로 (거래 조건 등 사업 여건이) 개선될 여지가 있지 않겠냐”며 “구조조정 경과를 추후 알릴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이브리드차 확산·차세대 전기차 경쟁에 ‘회심의 미소’
한편 현재 한온시스템 기업가치에 중립적인 변수로 여겨지는 대규모 투자 계획들이 향후 업황 개선 흐름에 따라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북미 공장 투자 등을 위해 자금을 조달해 온 것이 단기적으로는 이자 부담을 키우겠지만, 시장수요가 개선되는 대로 투자금을 차질없이 회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전기차 대안으로 하이브리드차가 세계 시장에서 부상하고 있는 점도 한온시스템 실적 확대의 긍정적인 요인으로 분류된다. 한온시스템은 현재 하이브리드차, 전기차 등 친환경차에 공통적으로 탑재 가능한 최신 공조시스템을 양산 적용 중이고 관련 특허 신규취득을 지속 추진하며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2019년 친환경차 핵심 장치에 관한기술을 보유한 마그나 인터내셔널 사업조직을 인수한 것도 하이브리드차를 비롯한 동력원별 차량 시장 공략에 힘 싣는 부분이다. 한온시스템이 전기차 시장 둔화 흐름 속에서 나름의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일부 완성차 업체들이 내년부터 신규 전기차를 선보이며 새로운 경쟁의 서막을 여는 점도 한온시스템에게 절호의 기회로 여겨진다. 현대차, BMW 등 한온시스템 주요 고객사들은 내년 새로운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기반으로 개발한 차세대 전기차를 앞다퉈 출시하며 시장 주도권 확보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완성차 업체들이 뒤숭숭한 시장 분위기를 뚫고 생산 확대를 추진하는 것은 한온시스템의 공장 가동율 개선에 필요한 요소로 꼽힌다.
김귀연 대신증권 연구원은 “BEV 수요 우려가 있으나 완성차 업체 생산과 라인업 투자 지속됨에 따라 중장기 성장세가 지속될 것”이라면서 “올해 현대차, 내년 벤츠와 BMW에 물량을 투입하며 투자 회수기가 도래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