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S 손실 우려···비이자이익 확대 어려워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시중은행이 주가연계증권(ELS) 손실 우려 사태로 향후 기업금융과 글로벌 부문에서 더욱 치열하게 경쟁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모펀드 사태에 이어 ELS까지 문제가 발생하면서 비이자이익을 늘리기가 더욱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시중은행은 경기침체 장기화 속에서 부실위험이 낮은 평가받는 대기업 대출을 늘리기 위해 전력을 쏟을 것으로 예상된다. 더구나 국내에서 이자이익 확대에 대한 비판이 큰 만큼 글로벌 사업 확장을 위한 노력이 이어질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부실위험 적은 대기업 대출 확보 '사활'
7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KB국민·하나·NH농협은행은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편입한 ELS 판매를 중단했다. 이 ELS 상품이 대규모 원금 손실을 입을 우려가 커지자 내린 결정이다. 신한·우리은행은 이미 지난해 말 판매를 정지한 바 있다.
이번 사태로 시중은행의 비이자이익 사업은 큰 타격을 피할 수 없다. 은행 비이자이익의 핵심은 자산관리(WM) 사업이 직격탄을 맞게 됐기 때문이다. 2019년 은행권을 강타한 사모펀드 사태 이후 은행 WM 사업에서 그나마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상품은 ELS(ELS의 신탁형 상품인 ELT와 펀드형 ELF)였다. 하지만 ELS 마저 불완전판매 논란까지 번지면서 시중은행은 더 이상 금융투자상품 판매 확대에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이에 시중은행은 국내 사업에선 기업금융 부문에 더 집중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결국 이자이익을 늘려야 하는데, 가계대출을 확대하는 것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 강한 규제로 인해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내 가계부채 규모는 경고등이 켜진 지 오래이기에 금융당국은 시중은행이 가계대출을 확대하는 것에 경계하고 있다. 최근 신한·우리은행이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대출 심사를 강화하는 등 가계대출 문턱을 높인 이유다.
특히 시중은행이 벌이고 있는 대기업 대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대기업들은 앞다퉈 은행 대출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고금리 경향이 장기화되면서 채권 시장에서 대규모 자금을 확보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근 은행채 발행금리가 내려가면서 대출금리에 대한 부담도 줄어든 점도 대기업 대출이 늘어나는 원인이 됐다.
은행 입장에선 경기 침체 속에서 상대적으로 안전 자산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중소기업 대출은 부실 위험이 계속 커지고 있기에 더 많이 늘리기엔 한계에 달했다는 평가가 대다수다. 물론 대기업 대출은 대출 금리가 낮아 수익성이 높지 않다. 하지만 해당 기업을 상대로 퇴직연금 등 다른 영업을 통해 수익을 늘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 결과 올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대기업 대출은 크게 불어났다. 지난 9월 말 기준 5대 은행의 대기업대출 총 잔액은 약 151조원으로 작년 말과 비교해 50% 급증한 것이다. 더구나 지난 9월 우리은행이 ‘기업금융 명가 재건’을 선언하고 ‘영업 드라이브’를 걸었기에 대기업 대출 확보를 위한 쟁탈전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선 출혈경쟁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해외투자 늘려 '글로벌 순익 비중 30%' 달성
글로벌 사업도 시중은행이 더 적극적으로 뛰어들 영역으로 꼽힌다. 특히 시중은행은 ‘이자장사’ 비판에서 자유롭기 위해서는 결국 해외에서 수익을 더 많이 거둬야 한다는 데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전체 당기순익에서 약 30%를 해외에서 얻으면 이자장사에 대한 비판도 줄어들 것이란 것이다.
그런데 국내 시중은행의 전체 순익에서 글로벌 부문이 차지는 비중은 아직 낮다. 올해 3분기 누적 기준 글로벌 순익(4049억원) 1위를 차지한 하나은행도 전체 순익 중 글로벌 비중은 약 15%에 그쳤다. 신한·우리은행도 10% 수준에 머물렀으며 국민·NH농협은행은 한 자리수 비중에 불과했다. 그만큼 해외에서 할 일이 더 많다는 의미다.
최근 우리은행이 글로벌 사업 강화를 외친 것도 이러한 의미에서다. 우리은행은 인도네시아, 베트남, 캄보디아 등 주요 해외 법인에 약 6700억원 규모의 자금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더구나 금융당국의 규제 완화도 향후 시중은행의 글로벌 투자 확대를 기대하게 하는 대목이다. 당국은 금융지주 소속 해외 현지법인에 대한 신용공여 한도 규제를 개선했다. 또 금융사의 해외 지점·사무소 설치 및 투자 관련 신고 의무를 대폭 줄이기로 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이자이익을 늘리면 비판받고, 비이자이익을 확대하려 하면 금융사고가 터져 문제되는 것이 현재 시중은행의 상황"이라며 "기업금융은 은행의 본연의 역할이며 글로벌 사업 역시 은행의 미래가 달린 문제이기에 시중은행은 두 사업에 더 많은 노력을 쏟을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