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수요 부진에 '투자 속도 조절' 나선 배터리 업계
보수적 투자 기조 보였던 삼성SDI, 기존 설비투자 계획 '이상 무'
경쟁사 대비 양호한 재무 상태로 차입 여력 커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최근 전기차 판매가 주춤하며 글로벌 완성차 업계가 속도 조절에 나서며 공격적인 투자에 나섰던 배터리업계도 증설 일정을 조율하는 등 주춤한 모습이다. 이런 가운데 배터리 3사 가운데 가장 투자에 소극적이란 평가를 받았던 삼성SDI의 ‘수익성 우위의 질적 성장 전략이 시장 상황과 맞아떨어졌다는 평가다.

3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기준 삼성SDI의 배터리 사업을 담당하는 에너지솔루션 사업부의 설비투자액은 2조3967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동기 대비 196% 증가한 수치다.

북미 생산설비 증설이 본격화하면서 설비투자액도 급증한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SDI는 미국 스텔란티스와 인디애나주 1공장을 건설 중이다. 해당 공장은 연간 생산능력 33GWh 규모로 오는 2025년 상업생산에 나설 예정이다. 최근에는 생산설비 구축을 위해 한화모멘텀과 장비 공급 계약도 체결하는 공장 건설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외에도 삼성SDI는 2026년과 2027년 가동을 목표로 제너럴모터스(GM)와 연산 30GWh 규모의 합작공장을, 스텔란티스와는 34GWh 규모의 2공장을 건설 중이다. 

그간 삼성SDI는 배터리 3사 가운데 북미 투자에 가장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가 집계한 올해 1월부터 9월까지의 연간 누적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사용량 현황에 따르면 삼성SDI는 점유율 9.5%로 5위를 기록했다. 1위 LG에너지솔루션(28,1%)과 4위 SK온(10.7%)보다 점유율 면에서 상대적으로 뒤처졌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글로벌 전기차 수요가 꺾이면서 최윤호 삼성SDI 사장이 강조해 온 ‘수익성 우위의 질적 성장’을 중심으로 한 경영 전략이 시장에 먹혀들었다는 평가다.

그간 공격적인 증설에 나섰던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은 시장 둔화에 따라 투자 전략을 수정하고 속도 조절에 나섰다. 업계 1위 LG에너지솔루션은 유럽 지역의 전기차 수요 둔화 영향으로 최근 포드·코치와 함께 준비 중이던 튀르키예 배터리셀 합작공장 건설 프로젝트를 철회했다. 올 하반기 가동을 목표로 했던 GM과의 미국 테네시 합작공장 가동 시기도 내년으로 미뤘다.

SK온은 미국 테네시주와 켄터키주에 각각 1개, 2개의 배터리 합작공장을 건설 중인데, 이 가운데 켄터키 합작 2공장 증설에 제동이 걸렸다. SK온은 켄터키 합작 2공장 가동 시기를 기존 목표 시점인 2026년보다 늦출 예정이다. 최근에는 충남 서산 배터리 공장 증설도 한시적으로 중단했다가 재개했다.

반면 삼성SDI는 무리 없이 해외 공장 증설을 이어나가는 모양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SDI)는 경쟁사 대비 영업이익률이 높고 영업현금으로 투자비를 충당하며 우수한 재무건전성을 갖췄다”면서 “결과적으로 전기차 시장 성장세가 둔화하면서 위기대응 능력이 빛을 발하게 됐다”고 말했다.

삼성SDI의 대표 삼원계 배터리인 ‘PRiMX’ 제품. / 사진=삼성
삼성SDI의 대표 삼원계 배터리인 ‘PRiMX’ 제품. / 사진=삼성

그간 보수적 투자 기조를 유지해온 덕에 향후 생산설비 신·증설을 위한 재무 여력도 3사 가운데 가장 크다고 분석된다. 경쟁사가 국내외 회사채 시장에서 자금 조달에 나설 때에도 삼성SDI는 영업활동에서 벌어들인 현금으로 투자를 진행해왔다. 

삼성SDI 관계자는 “현재까지는 회사채 발행 관련 계획이 없으며 영업으로 벌어들인 현금을 우선적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라면서도 “부채비율이 낮아 차입 여력은 충분하다”고 했다.

부채비율, 차입금의존도 등 재무부담을 나타내는 지표도 배터리 3사 중 가장 양호한 것으로 집계됐다. 올해 3분기 기준 삼성SDI의 부채비율은 78,3%, 차입금의존도는 18.3%를 기록했다. 업계 1위인 LG에너지솔루션(각각 83%, 23%) 보다 낮은 수준이다. 지난 1년간 10조원이 넘는 자금을 조달한 SK온은 전 분기에 이어 부채비율 180%대, 차입금의존도는 30%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부채비율과 차입금의존도 모두 기업의 건전성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로 활용된다. 부채비율과 차입금의존도가 높을수록 금융비용이 많아지고 수익성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통상 부채비율은 200%, 차입금의존도는 30% 미만일 경우 재무구조가 안정적이라고 판단한다.

내년 실적 전망도 밝다. ‘초격차 기술경쟁력’ ‘최고의 품질 확보’ 기조하에 프리미엄 시장에 주력한 행보 덕이다. 삼성SDI 북미 고객사 비중 44%를 차지하는 리비안의 R1 시리즈가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면서다. 리비안은 오는 2024년 전체 생산능력 내 R1 비중을 43%에서 57%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이안나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삼성SDI의 미국 첫 공장인 스텔란티스와의 합작 공장도 PHEV 및 프리미엄 모델 중심이기 때문에 2025년 양산(23GWh)이 예정대로 시작된다”며 “따라서 국내 배터리 3사 중 2024년 수요 둔화에 대한 우려가 상대적으로 적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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