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소재 투자은행 두 곳 총 560억원 규모 무차입 공매도 드러나
기존 주문 실수와 착오와 달리 의도적으로 불법 저지른 첫 사례로 평가
당국 “사전 방지 시스템 마련 쉽지 않아”···재발 가능성에 투자자 불안

[시사저널e=송준영 기자] 외국계 IB(투자은행)이 국내 증시에서 고의로 불법 공매도를 한 것으로 드러난 가운데 시장 신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어 주목된다. 이번 사례로 무차입 공매도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의혹이 현실화된 데다 투자자 피해를 가늠할 수 없다는 점에서 불안감을 높인 것이다. 금융당국은 사전에 걸러낼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어렵다는 입장이어서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외국계 무차입 공매도 적발···실수 아닌 ‘고의’ 첫 사례

1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BNP파리바 홍콩법인과 홍콩 HSBC 등 홍콩 소재 글로벌 IB(투자은행) 두 곳이 국내 주식시장에서 합산 560억원대 규모의 무차입 공매도를 한 사실이 적발됐다. 무차입 공매도는 주식을 빌리지 않고 파는 것으로 한국은 증시 변동성을 키운다는 이유로 2008년 이후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기존 불법 공매도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를 엄중히 보고 있다. 기존 불법 공매도 적발 건이 대부분이 헤지펀드의 주문 실수, 착오에 의한 것이었다면 이번의 경우 고의성이 다분하고 지속적이었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국내 증시 제도를 잘 아는 글로벌 IB가 이 같은 불법 공매도로 적발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우선 BNP파리바 홍콩법인은 2021년 9월부터 2022년 5월까지 카카오 등 101개 종목에 대해 400억원 상당의 무차입 공매도 주문을 제출했다. 이 과정에서 BNP파리바 홍콩법인은 부서 간 소유주식을 중복으로 계산해 공매도 주문을 냈다. 실제 차입한 주식 수량에 맞지 않게 공매도 주문을 낸 것이다. 매매거래 익일에 결제수량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지했지만 사후 차입하는 방식으로 위법행위를 방치해온 것으로 조사됐다.

한 외국계 증권사의 불법 공매도 방식. / 그래프=금융감독원.
한 외국계 증권사의 불법 공매도 방식. / 그래프=금융감독원.

홍콩 HSBC 역시 방식은 비슷했다. 홍콩 HSBC는 2021년 8월부터 12월까지 호텔신라 등 9개 종목에 160억원 상당의 무차입 공매도 주문을 냈다. 이 과정에서 홍콩 HSBC는 사전에 차입이 확정된 주식 수량이 아니라 향후 차입이 가능한 수량을 기준으로 계약을 체결하고 공매도 주문을 제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다만 금융감독원은 이들이 악재성 정보를 활용한 차익실현용 공매도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금융감독원 측은 이들의 불법 공매도 목적에 대해 “IB는 중개 역할만 하기 때문에 가격 변동에 따른 손익은 최종 투자자에게 귀속된다”며 “수수료 수입을 위해 불법적인 프로세스를 방치했던 것으로 추정한다”라고 밝혔다. 

◇ 재발 방지 가능할까?···금융당국 “시스템 마련 쉽지 않아”

굴지의 글로벌 IB가 국내 증시에서 불법 공매도 주문을 냈다는 점에서 시장 신뢰 저하 우려가 다시금 고개를 들고 있다. 주문 실수가 아닌 고의성을 띤 무차입 불법 공매도 사례가 등장하면서 불법 공매도가 이뿐만이 아닐 것이라는 의심에 기름을 부은 것이다.

무엇보다 시스템적으로 재발을 방지하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공매도 논란이 재점화되는 모양새다. 공매도를 반대하는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선 불법 공매도를 사전적으로 차단하는 전산 시스템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데 금융당국이 현실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쉽지 않다고 선을 그어놓은 상황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서 기존 수기(手記) 방식의 공매도 거래 방식을 전산화하자는 목소리에 대해 “실시간 모니터링을 발동하려면 공매도를 거래하는 시스템과 거래소 시스템과 연결해야 한다. 또 그 전에 대차거래가 어떤 경위로 이뤄지는지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며 “하지만 주식을 빌리는 거래의 목적과 방식이 저마다 너무 다르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이를 파악한다는 게 불가능하고 설령 파악한다고 하더라도 기술적으로 강제할 방법도 없다”라고 밝혔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11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답변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11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답변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사실상 공매도 매매와 관련해선 투자자의 양심과 시스템, 프로세스에 일정 부분 기대야 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는 이번 사례에서도 나타나는데, 홍콩 HSBC는 금융감독원 적발 이후에서야 차입이 확정된 수량을 기준으로 매도스왑계약을 체결하고 이 수량만큼만 공매도 주문이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개선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에 보다 강력한 예방 수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불법적인 공매도의 피해자는 해당 주식에 투자하고 있는 투자자다. 문제는 사후 적발을 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난 상태이고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없다는 점에 있다”며 “시스템적으로 사전방지가 원천적으로 되지 않는다면 강력한 처벌을 통해 불법 유인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이번 적발 건에 역대 최대 규모의 과징금이 부과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지난 3월 불법 공매도에 대한 과징금제도가 도입된 이후 최대 과징금은 38억7400만원이다. 오스트리아 금융회사인 ESK자산운용이 2021년 에코프로에이치엔 주식 21만744주(251억원어치)를 무차입 공매도했다가 적발돼 해당 과징금을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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