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기환송심 판결 이후 법무부 재상고···2009년 소 제기 후 14년째 소송
법무부 “공권력 행사 방식·한계 선례 남겨야···경찰 재상고 입장도 고려”
노조 측 “청장 사과, ‘전향적 검토’ 입장 뒤집어···노동계에 재갈·족쇄”

2009년 7월20일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이 연기에 휩싸인 모습. / 사진=연합뉴스
2009년 7월20일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이 연기에 휩싸인 모습.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쌍용자동차 국가 손해배상 사건에서 소송수행청인 경찰청이 재상고 의견을 낸 것으로 확인됐다. 공권력 남용에 대한 경찰청장의 공식적인 사과가 있었음에도 노조와 조합원을 상대로 한 민사적 절차는 유지하는 태도를 취하는 모양새다.

19일 법무부는 지난 13일 쌍용차 국가손배 사건 재상고 이유에 대한 본지 질의에 대해 “이번 재상고는 본 사건이 노조의 점거파업시 경찰의 공권력 행사의 방식이나 한계와 관련하여 추후 중요한 선례가 될 수 있어 대법원의 판단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특히 “소송수행청인 경찰청의 재상고 입장도 존중하는 등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했다고 부연했다.

경찰이 쌍용차 국가손배 사건에서 적극적으로 소송 유지 의견을 냈다고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경찰은 파기환송심 조정 과정에서도 법무부의 소송 지휘 등을 이유로 재판부에 별다른 의견을 내지 않았다. 지난 8월 파기환송심 선고로 종결 가능성이 있었던 쌍용차 국가손배 사건은 이번 재상고로 계속된다.

경찰의 재상고 의견은 과거 공권력 남용에 대한 경찰청장의 공식적인 사과 입장과 대치되는 것처럼 보인다.

앞서 민갑룡 전 경찰청장은 지난 2019년 7월25일 쌍용차 파업 관련자, 밀양·청도 송전탑 사건 관련 주민 등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피해자들에게 공식으로 사과했다. 그는 또 이튿날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진상조사위)의 활동 종료를 알리는 보고회에 참석해 “경찰의 법 집행 과정에서 목숨을 잃거나, 큰 고통을 받았던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당시 민 전 청장의 입장 표명은 진상조사위의 사과와 소송철회 권고에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가압류만 해제했을 뿐 민사소송은 철회하지 않았고, 14년째 관련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장은 이날 시사저널e와의 통화에서 “그동안 경찰은 ‘대법원 판결 이후 전향적인 입장에서 검토하겠다’고 말했었다. 대리인인 법무부 측에 중요 역할을 넘기는 분위기였다”면서 “본인들이 한 약속을 뒤집는 당사자가 국가라고 한다면 쌍용차 노동자뿐만 아니라 일반 서민들이 어떻게 국가를 신뢰하겠는가. 참으로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이어 “파기환송심은 국가가 이 사건 변호사비용 90%를 부담하도록 판결했다. 경찰이 소송을 취하하지 못한 여러 배경 중 하나는 배임 이슈도 있었는데, 심리불속행 가능성이 큰 사건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추가로 변호사 비용이 들어간다”라며 “대법원과 파기환송심 판결을 무시한 채 국민 세금으로 계속 소송을 진행하는 게 오히려 배임이 아닌가 싶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법무부에 대해서도 “자본도 아닌 국가가 선제적으로 노동자들에게 이 같은 장기적이고 집요한 국가 소송을 유지하는 것은 기업들의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부추기는 일종의 모범 사례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노동계의 정당한 요구와 불가피한 저항에 재갈을 물리고 족쇄를 채우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금속노조 측과 조합원들은 파기환송심 판결에 따라 이번 주 ‘기중기 손상’에 대한 배상액(1억6600여만원)을 지급한다는 계획이다. 지연이자 부담을 줄이는 한편 장기간 소송으로 조합원들이 겪는 심리적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정이다.

노조는 지난 2009년 전체 노동자의 37%에 해당하는 2646여명을 해고하는 사측의 대규모 구조조정에 반발해 77일간 파업을 벌였다. 당시 경찰이 파업을 무력으로 과잉 진압해 논란이 불거졌지만, 경찰은 오히려 헬기와 기중기 파손 등 손해를 입었다며 노동자 67명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2심은 파업 진압을 위해 경찰이 투입한 헬기·기중기 사용이 정당했다는 전제 아래, 금속노조 측에 11억2891만원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재판이 길어지면서 배상 지연에 따른 이자가 붙었고, 지난해 대법원 판결 시점 배상액이 30억여원으로 불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난해 11월 경찰의 과잉진압에 저항한 행위는 정당방위에 해당할 수 있다며 헬기 손상에 관한 노조 측 손해배상책임을 부인했다. 또 기중기 손상에 관한 손해배상액에 휴업손해액을 포함하고 노동자의 손해배상 책임을 80%나 인정한 것은 현저히 불합리하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지난 8월25일 파기환송심은 기중기 손상과 휴업손해액에 대한 노동자의 배상 책임을 80%에서 70%로 줄였다. 소송비용은 원고(대한민국)와 피고(금속노조 등)에게 각각 9대1 비율로 부담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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