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기환송심 “생명·신체 상당한 위험 없어···폭력행위는 정당행위 아냐”
‘헬기 파손은 정당방위’ 판단과 달라···대신 국가 측 책임 70% 물어
法 “대항행위에 따른 기중기 손상 예측 가능···국가 스스로 위험 감수”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쌍용자동차 파업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손상된 ‘기중기 파손’에 대한 노조 측 정당방위 주장이 헬기 손상과는 달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만 법원은 기중기 손상이 국가가 ‘스스로 감수한 위험’이라며 노조 측의 배상책임을 30%로 제한한 것으로 확인됐다.
4일 시사저널e가 확보한 ‘쌍용차 국가손배’ 파기환송심 판결문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38-2부(재판장 박순영 부장판사)는 기중기 손상에 대한 피고(노조 및 조합원)의 정당방위 주장을 배척하고 피고들이 공동해 원고(국가)에게 1억66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법원이 인정한 사실관계에 따르면 국가는 2009년 8월4일 크레인회사 A사로부터 220톤(t), 200톤, 100톤 규격의 독일제 기중기 3대를 임차해 이튿날 이 사건 점거파압의 진압작전 현장에 투입했다.
기중기 조종기사들은 기중기에 약 7톤 무게의 빈 컨테이너 1개씩을 매달은 후 경찰의 지시에 따라 약 1시간 동안 이 컨테이너를 이용해 조합원들이 자동차조립공장 옥상에 설치해 놓은 장애물들을 부숴 제거했다. 또 컨테이너들을 옥상에 내릴 것 같은 동작을 취하는 등으로 기중기를 급조작했으며, 이후 컨테이너에 경찰 병력을 태워 이들을 옥상에 내렸다. 이에 조합원들은 벽돌 및 화염병을 투척하고, 새총을 볼트와 너트를 발사하는 등으로 대항해 기중기의 손상이 발생했다.
피고들은 경찰이 기중기를 운영한 방식은 경찰 장비 사용기준과 이동식 크레인 안전작업지침 등에 어긋나 위법한 직무집행이고, 기중기 손상 역시 위법한 진압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이뤄진 것이므로 정당방위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경찰이) 점거파업의 진압 현장에서 컨테이너로 장애물을 부수거나 옥상에 내릴 것 같은 동작을 취하는 등으로 이 사건 기중기를 조작한 행위가 시위대를 위협하고 화력을 소모시키는 역할을 한 점은 인정된다”면서도 “이 같은 조작이 경찰 장비의 통상적인 용법의 범위를 ‘현저히’ 벗어났다거나 그로 인해 파업 참가자의 생명·신체에 상당한 위험이 초래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점거파업 참가자들이 이 사건 기중기를 향해 벽돌과 화염병을 투척하고 새총으로 볼트와 너트를 발사하는 등으로 대항한 폭력행위가 위와 같은 위협에 대항해 자신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이뤄진 정당한 행위라고 볼 수도 없다”며 “피고들의 정당방위 주장은 이유 없다”고 정당방위 주장을 물리쳤다.
하지만 재판부는 조합원들의 배상책임을 30%로 제한했다. 국가 측 책임을 이보다 두 배 이상 큰 70%로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기중기를 임차한 국가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사용할 의무가 있을 뿐 아니라, 기중기 손상 시 운휴보상을 하기로 한다는 내용의 약정을 맺은 이상 손상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었다고 꼬집었다.
재판부는 “국가가 임차한 기중기는 통상적으로 무거운 짐을 들어 올려 느린 속도로 이동시키는 용도로 사용되는 고가의 장비”라면서 “원고는 기중기를 그 용법에 벗어난 방법으로 장애물의 제거 등에 사용했는데, 이러한 기중기의 과다 조작으로 장비의 손상 및 오작동에 기여한 원고의 책임이 작지 않다”고 봤다.
이어 “원고는 진압작전 과정에서 기중기를 시위대에 대한 위협 및 화력 소모를 위해 사용함으로써 조합원들의 기중기에 대한 공격을 적극적으로 유도했다고 볼 수 있다”며 “그러한 대항행위로 인해 기중기가 손상될 수 있음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고 보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따라서 진압작전 중 이 사건 기중기가 손상된 것은 원고 스스로가 감수한 위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고가의 장비 손상은 불법 집회·시위에 통상 수반되는 것으로써 일반적으로 예견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나아가 재판부는 대법원 파기환송 취지대로 헬기 손상에 대한 조합원들의 배상책임을 부인했다. 국가가 점거파압 진압을 위해 헬기를 이용해 최루액을 직접 살포하거나 사람을 직접 하강풍에 노출시키는 방법으로 한 직무수행은 ‘부적합한 직무수행’이라고 본 것이다. 또 이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이뤄진 가해행위는 위법한 직무수행에 대한 정당방위라고 확인했다.
피고 측은 노조와 조합원 모두에게 배상책임을 인정한 이번 판결이 아쉽다면서도 상고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법무부가 재상고할 경우 이 소송은 재차 대법원 판단을 받게 된다. 민사소송의 상고장은 판결이 송달된 날로부터 2주일 이내에 원심법원에 제출해야 한다. 법무부는 지난달 30일 판결정본을 수령했으며 4일 현재까지 상고장을 제출하지 않았다.
◇쌍용차 재정난과 점거파업 그리고 경찰의 진압작전
쌍용차는 2008년 유가급등과 금융위기에 따른 판매 감소 등으로 심각한 재정난에 빠지자 2009년 1월 서울중앙지법에 회생절차개시를 신청해 같은 해 2월 회생절차 개시결정을 받았다.
쌍용차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실시하라는 회생법원의 지침에 따라 그 해 4월 ‘쌍용차 근로자 7177명의 37%에 해당하는 2646명을 희망퇴직, 분사 등의 방법으로 구조조정하고 신차 개발 투자 자금 등으로 2500억원 상당을 대출받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경영정상화 방안을 발표했다. 회사는 또 4월8~24일까지 6차례에 걸쳐 쌍용차지부에 정리해고의 규모와 기준 등에 관한 노사협의를 요청했다.
그러나 쌍용차지부는 회사의 노사협의 요청을 거부했다. 대신 4월13~14일 ‘임금교섭 및 정리해고 분쇄’를 목적으로 하는 쟁위행위에 대한 조합원 찬반투표를 실시해 제적 조합원 5151명 중 84%(4328명)의 찬성으로 파업을 결의한 다음, 같은 달 24일부터 부분파업을 개시했다.
쌍용차지부는 5월22일 정리해고 철폐를 주장하면서 총파업 출정식을 개최한 다음 쌍용차 평택공장 정문에 컨테이너 박스를 쌓아 출입구를 봉쇄하고 공장을 점거하는 파업을 시작했다. 26일에는 쌍용차 관리직원들을 공장 밖으로 강제 퇴거시켰다. 회사는 같은 달 31일 직장폐쇄를 신고하고 점거파업 참가자들에게 퇴거를 요청했으나, 점거파업 참가자들은 불응했다. 6월26일 쌍용차 직원들이 1차 방어선을 뚫고 평택공장 내로 진입을 시도하자, 군사작전을 모방하는 지휘체계를 구축하는 등의 방법으로 점거파업을 계속했다.
쌍용차와 쌍용차지부는 2009년 7월25일부터 8월2일까지 교섭을 진행했으나 결렬됐고, 경찰은 8월4일~5일 헬기, 기중기 등을 동원한 진압작전을 실시했다. 진압작전 직후인 6일 노사합의가 재개됐고, 점거파업은 종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