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미국, SAF 의무화 및 보조금 지원
韓, 법·제도적 근거 부족에 늦어지는 상업 생산···“법 개정·세제 지원 필수”
[시사저널e=유호승 기자] 유럽연합(EU) 등이 항공기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2025년부터 지속가능 항공유(SAF) 사용을 의무화하면서 관련 시장이 성장하는 추세다. 국내 정유업계도 SAF 개발 및 대량 생산을 위해 공장 설비 및 거점 마련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유사들이 SAF 등 바이오 연료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현재까지 없어 사업 확장에 발목이 잡힌 모양새다.
EU는 항공유의 SAF 의무 포함 비율을 2025년 2%에서 2030년 6%, 2035년 20%, 2050년 70%로 늘릴 방침이다. 미국 역시 올해부터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SAF를 현지에서 생산하는 정유사에 세제 및 보조금 혜택을 주기로 했다. 1갤런당 1.25달러에서 최대 1.75달러의 혜택을 주기로 규정했다.
SAF에 많은 국가들이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화석연료로 생산하지 않으면서도 석유제품과 화학적으로 유사해 기존 내연기관 항공기 등에 인프라·구조 변경 없이 사용이 가능해서다. 원료는 폐식용유 등 폐기물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일반 항공유 대비 최대 80% 적게 배출돼 탄소중립의 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 에쓰오일, HD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4사는 SAF 시장을 눈여겨보고 수년 전부터 연구개발 및 관련 기업과의 협력을 시작했다. 항공유가 정유사들의 주력 수출품목이기 때문이다.
대한석유협회에 따르면 국내 정유사의 지난해 석유제품 수출액은 570억3700만달러(약 74조원)다. 이 중 5분의 1인 약 18%가 항공유다. 정유업계가 SAF 생산에 집중하는 이유다.
정유 4사 중 가장 빠른 움직임을 보인 곳은 HD현대오일뱅크다. 2021년 6월 대한항공과 SAF 제조 및 사용 기반 조성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고 개발에 나섰다. 충남 서산 대산공장 1만㎡ 부지에 연산 13만톤(t) 규모의 SAF 생산라인을 올해 말까지 조성할 예정이다.
SK이노베이션은 올해 울산 거점에 SAF 생산 설비를 구축하는 동시에 미국에서는 현지 기업인 펄크럼을 통해 관련 사업을 전개한다.
펄크럼은 미국에서 생활 폐기물로 합성원유를 만드는 공정을 최초로 상업화한 기업이다. 폐기물 수집부터 가스화, 합성원유 생산 가능하다. SK는 지난해 펄크럼에 260억원을 투자해 합성 원유 생산을 추진 중이다.
GS칼텍스도 올해 6월 정부 로드맵에 따라 대한항공과 함께 ‘바이오항공유 실증연구 운항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고 인천발 대한항공 국제선에 바이오 항공유를 사용하는 실증연구에 돌입해 정부의 품질 기준 설정에 활용할 방침이다.
단, 국내 SAF 산업 활성화에 넘어야할 장애물이 있다. 현행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사업법(석유사업법)은 정유사가 ‘석유’를 정제해 석유제품을 제조하는 것만 해당 사업으로 규정한다.
SAF는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에 포함되지 않아 폐식용유 등으로 석유제품을 생산하는 것은 엄연한 ‘불법’에 해당한다. 이로 인해 SAF 상용화를 위한 법적 근거가 빠르게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는 실정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SAF 생산이 상업 생산화되지 못하고 연구개발 단계에 머물러 있는 이유는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라며 “석유사업법상 석유의 범주에 폐식용유 등이 포함되는 법적 근거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정부와 국회에서도 현행 석유사업법의 문제를 깨닫고 개정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은 SAF의 도입 확대를 위한 석유사업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정유사들이 정제할 수 있는 석유를 석유 이외의 원료를 혼합한 것으로 개정하고, 석유대체연료의 정의도 바이오·재생합성연료 등으로 범위를 넓히는 것이 핵심이다.
김 의원 측은 “글로벌 지속가능 항공유 등 바이오 연료 시장의 성장에도 우리나라의 경우 법적 근거가 부족해 투자 및 상업화 속도가 느리다”며 “법안 개정과 함께 정책 지원 방안도 마련해 국가 경쟁력 확보와 탄소중립 등의 목표가 동시에 달성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석유사업법이 개정되면 향후 세제 지원 등의 혜택 등을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글로벌 SAF 시장 진입 시기는 아직 늦지 않았다”며 “EU가 2025년부터 SAF 의무화를 도입한 만큼 아직 시간은 있어 국가 사정에 맞게 제대로 된 법안 마련과 경쟁력 있는 연료 생산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