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 지난 10일 사내벤처 육성 프로그램 ‘드림큐브’ 참여 5개 팀 선발
삼성전자·LG전자·현대차 등 대기업, 사내벤처 육성 프로그램 운영···신사업 발굴 노력
‘가성비 높은 투자’ 사내벤처···성과 내고 있어 향후 투자 더욱 활발해질 듯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대기업들이 사내 벤처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신사업 진출이 기업의 필수 생존전략으로 떠오르면서 모험적 시도를 할 수 있고 빠른 의사결정 구조를 가진 회사를 따로 구축하고 나선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사내벤처들의 성과가 가시화되면서 기업들의 투자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HD현대는 최근 사내벤처 육성 프로그램 ‘드림큐브’에 참여할 5개 팀을 선발해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선임급 이상 직원이나 팀(최대 4인)을 선발해 1년간 사업화를 지원하는 제도다.
HD현대는 그동안 추진했던 프로그램이 성공적이라고 판단하고 사내벤처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팀당 사업비 1억5000만원을 보장하고 독립된 업무공간까지 지원하기로 했다.
사내벤처 설립 붐은 대기업 전반으로 퍼지는 추세다. 대기업이 사내벤처 육성 프로그램을 줄줄이 도입하는 건 ‘포스트 코로나’ 시대 신사업 진출이 기업의 필수 생존전략으로 떠오르면서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에 따르면 기업의 평균 존속기간이 1958년에는 61년 수준이었지만, 오는 2027년에는 12년으로 49년가량 줄 것으로 전망된다.
대기업들이 미래 경쟁력을 갖기 위해선 기존 사업을 통해 창출한 풍부한 자원을 새 먹거리 창출에 투자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한 사내벤처 관계자는 “대기업의 경우 조직 규모가 거대해 의사결정까지 구조적으로 많은 시간이 걸린다”면서 “업종 간 경계가 무너지고 극변하는 사업 환경 속에서 신사업 발굴을 위해 유연한 조직문화를 갖춘 사내벤처를 시도하는 것”이라고 했다.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차 등 주요 대기업은 자체 사내벤처 발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삼성전자가 2012년 도입한 ‘C랩 인사이드’가 있다. 삼성전자는 우수 사내벤처를 뽑아 스타트업으로 분사할 수 있도록 스핀오프(분사)제도도 시행 중이다. 현재까지 391개 사내벤처를 육성, 61개의 사내벤처가 분사했다. 매년 평균 5개사 이상이 분사한 셈이다.
LG전자는 사내벤처 프로그램 ‘스튜디오341’를 4기째 운영 중이다. 인공지능(AI), 스마트홈, 로봇, 메타버스 등 미래 산업 분야 아이디어를 사업화한다는 계획이다. 올해 11월 선정된 5팀에겐 분사 자격이 주어진다. 팀당 최대 4억 원의 창업 자금, 별도 업무공간도 제공된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2000년부터 사내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 ‘벤처플라자’를 운영하고 있다. 2021년 명칭을 ‘제로원 컴퍼니빌더’로 바꾸고 자동차 분야뿐만 아니라 바이오, 물류, 헬스케어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 선발 범위를 넓혔다. 제로원 컴퍼니빌더로 선정한 스타트업에는 개발비로 최대 3억원을 지원한다.
최근에는 눈에 띄는 성과도 내고 있다. 사내벤처 육성 프로그램 시행 초기에는 성과가 지지부진하다는 시장의 비판도 있었지만, 개발비 확대·제도 개선 등을 통해 독립하는 스타트업이 늘었다는 분석이다.
HD현대의 선박 자율운항 전문 회사 아비커스는 현대오토에버와 함께 그룹의 해양 모빌리티 사업을 이끌고 있다. HD현대 사내벤처 1호인 아비커스는 지난해 6월 세계 최초로 대형 선박의 태평양 횡단에 성공하는 등 자율운항 솔루션 분야의 선도 기업으로 성장해 나가고 있다.
삼성전자는 사내벤처의 유럽 시장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달 프랑스 파리 전시장에서 열린 ‘비바 테크놀로지 2023’에 참여, C랩 인사이드를 통해 발굴한 시각 보조 솔루션 ‘릴루미노’를 전시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C랩 스타트업들이 해외로 진출해 한국 스타트업의 우수성을 알릴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하겠다”고 했다.
기업들은 앞으로도 ‘가성비 높은 투자’가 장점인 사내벤처 육성을 적극 활용할 방침이다. M&A을 추진하는 것보다는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신사업을 발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기업의 우수 인력 등 인프라를 적극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갖는다.
한 사내벤처 관계자는 “사내벤처는 모회사의 인프라, 자금을 활용할 수 있어 다른 스타트업 업체와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다”면서 “직접 사업을 일궈낸 경험을 한 사내벤처 구성원들은 회사에 대한 주인 의식도 강하다”도 했다.
성과주의를 중시하는 MZ세대의 근로의욕을 끌어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직접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이를 사업화하면서 MZ세대 직원들의 개인 만족도 향상을 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이를 위해 기업들은 사내벤처를 통해 수익을 내면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