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배상 책임 범위 노조와 개인 동일 적용은 불합리하다는 취지
노조법 개정안 국회 본회의 회부 전망···가결돼도 대통령 거부권 행사 가능

대법원. / 사진=연합뉴스
대법원.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불법파업에 참여한 노동자 개인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때 불법 행위의 정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하며, 사측이 요구하는 책임 범위를 노조와 개인에게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국회에서 개정을 논의중인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의 핵심 내용과 유사한 취지의 판단이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15일 현대자동차가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소속 조합원 4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에 돌려보냈다.

이 사건의 피고 조합원들은 2010년 11월∼12월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에 참여해 울산공장 일부 라인을 점거했다. 현대차는 파업으로 공정이 278시간 중단돼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며 파업 참여자 29명을 상대로 20억원의 손해배상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1·2심은 조합원들이 노동조합의 불법 쟁의행위에 참여한 만큼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노동조합의 의사결정이나 실행행위에 관여한 정도는 조합원에 따라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며 “개별 조합원에 대한 책임 제한의 정도는 노동조합에서의 지위와 역할, 쟁의행위 참여 경위 및 정도, 손해 발생에 대한 기여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불법 쟁의행위를 주도한 노동조합과 달리 참여 조합원 개인에 대해서는 개별적으로 참작할 사정이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노동조합원으로서는 쟁의행위가 다수결에 의해 결정돼 방침이 정해진 이상 쟁의행위의 정당성에 의심이 간다고 해도 노동조합의 지시에 불응하기를 기대하기는 사실상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급박한 쟁의행위 상황에서 조합원에게 쟁의행위의 정당성 여부를 일일이 판단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근로자의 단결권을 약화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런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노동조합과 개별 조합원의 손해배상책임의 범위를 동일하게 보는 것은 헌법상 근로자에게 보장된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부연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노동쟁의 사안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예외적으로 조합원별로 책임제한의 정도를 개별적으로 달리 평가할 수 있다는 점을 설시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대법원3부는 쌍용차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금속노조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도 같은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현대차 측은 “아쉽게 생각한다. 산업계에 미칠 파장도 우려된다”며 “판결문을 면밀히 검토해 파기환송심에서 잘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판단은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권이 추진 중인 노란봉투법의 입법 목적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노란봉투법에는 ‘법원은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경우 귀책 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해야 한다’는 조항이 담겼다. 노동자 개인이 노조 활동으로 인해 사측의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 부담을 지게 되는 것을 완화하겠다는 취지다.

노조법 2·3조 개정안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해 현재 본회의 회부를 앞두고 있다. 이 개정안이 본회의 직회부 뒤 가결되더라도 발효될지는 미지수다. 윤석열 대통령이 양곡관리법, 간호사법에 이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 노란봉투법이란 명칭은 2014년 쌍용차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에게 47억원의 손해배상 판결이 내려지자 한 시민이 노란 월급봉투에 4만7000원을 담아 보내며 모금운동을 제안한 데서 유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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