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스타트업 축제 '컴업 2022' 개막
삼성·롯데·마이크로소프트 등 국내 CVC 총출동
"벤처혹한기에 자금 풍부한 CVC 존재감 커질 것"

[시사저널e=염현아 기자] 국내 최대 스타트업 축제 '컴업(COMEUP) 2022'가 민간주도 행사로 오늘 문을 열었다. 고금리와 인플레이션 등 경제 불황으로 전 세계 벤처투자 시장에 불어닥친 한파를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지 업계 전문가들의 논의가 주를 이뤘다.

'컴업 2022'가 'We move the world(세계를 움직이는 스타트업들)‘을 주제로 9일 서울 동대문디지털플라자(DDP)에서 개막했다. 유례없는 벤처 혹한기로 제2벤처붐의 기대는 낮아졌지만, 국내외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해 함께 해결책을 고민했다. 올해부터 정부주도에서 민간주도형 방식으로 전환된 컴업은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이 기획 및 운영을 맡았다.

컴업의 첫 순서를 맡은 박재욱 코스포 의장(쏘카 대표)은 “스타트업 생태계에 유동성 파티는 이제 끝났다”고 포문을 열었다. 박 의장은 “그동안 어떻게든 성장하는 게 중요했다면, 앞으로는 장기적인 생존이 더 중요해졌다”며 “수익성에 초점을 맞춰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 구축에 초점을 맞춰야 할 때”라고 진단했다.

최근 벤처투자 혹한기는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이미 올 2분기부터 벤처투자가 감소세로 전환됐고, 9월엔 올들어 처음으로 벤처투자금이 5000억원 아래로 떨어졌다. 미국 금리인상과 경기 침체 우려 여파로 당분간 혹한기는 지속될 전망이다.

◇ 밴처혹한기에 CVC 역할 커져 ···"자금 풍부해 과감한 투자 가능"

이처럼 투자심리가 위축되자 최근 기업형 벤처캐피탈(CVC)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일반 벤처캐피탈(VC)은 외부 자금으로 펀드를 만들어 단기 수익을 내야 하는 반면, 자금이 풍부한 CVC는 중장기 전략으로 모험적인 사업 분야에 과감하게 투자한다. 사업성이 부족해도 기술력만 있으면 투자가 가능하다는 게 특징이다. 실제로 국내 CVC는 2018년 84개에서 올해 140개 이상으로 늘어났다.

컴업 오전 세션에 참석한 이성화 GS리테일 상무와 이종훈 익스플로어인베스트먼트 대표는 CVC의 투자 전략 발표에 나섰다. 엑스플로인베스트먼트는 GS그룹의 네 번째 CVC로, 내년부터 GS건설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건설업 및 유관 산업 신기술 스타트업에 본격적인 투자를 시작할 예정이다.

이성화 상무는 “대기업은 스타트업 투자를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보단 생존을 위해 한다”며 “GS그룹이 4개의 CVC를 설립한 것처럼 대기업들은 스타트업 투자를 미래 먹거리로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두 사람은 벤처혹한기가 CVC에게 기회라고 평가했다.

이종훈 대표는 “CVC는 단순 투자 말고도 M&A(인수합병)도 추진하고 있어 스타트업들의 기업 가치가 낮아진 지금을 기회로 본다”며 “최근 대기업 간에도 스타트업 투자 경쟁이 과열돼 스타트업에 구애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기업이 직접 유망 스타트업과의 협업 기회를 찾는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도 늘어나고 있다. 오픈 이노베이션은 스타트업과 글로벌 기업 간의 협업 모델을 공유하는 형태로, 신사업 구축이 쉽지 않은 대기업들은 스타트업의 아이디어와 기술력을 활용해 내부 혁신을 마련하고, 스타트업은 사업 모델을 검증해 시장을 확대할 수 있어 서로에게 윈윈이다.

이날 컴업에는 롯데, 삼성, 마이크로소프트 등 여러 대기업들이 오픈 이노베이션 기획 의도를 설명하는 발표가 이어졌다.

전영민 롯데벤처스 대표는 “롯데그룹에 입사한 지 31년 됐는데, 롯데가 스타트업의 혁신을 따라가기엔 역부족이었다”며 “스타트업 씬에 2년반 있어 보니 이제 스타트업 협업 없이 기업 혼자 혁신 이루는 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강조했다.

전 대표는 “롯데벤처스는 오픈 이노베이션 외에도 극초기 시드 단계부터 IPO(기업공개)까지 기업 규모와 상관없이 투자하고 있다”며 "최근 얼어붙은 벤처투자 시장은 CVC가 녹여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9일 서울 DDP에서 열린 '컴업 2022'에서 한인국 삼성전자 창의개발센터 상무가 발표하고 있다. / 사진=염현아 기자

삼성전자도 2012년 12월 벤처 육성 프로그램 ’C랩 인사이드‘를 도입해 현재까지 다양한 스타트업을 발굴·투자하고 있다. 2015년 ’C랩 스핀오프‘, 2018년 ’C랩 아웃사이드‘를 통해 벤처 투자를 활성화했다.

C랩을 이끄는 한인국 상무는 “C랩 아웃사이드는 경쟁력 있는 비즈니스 모델, 전문성 있는 조직, 삼성전자와의 시너지 가능성이 있는 5년 이하 국내 스타트업들을 발굴·투자하고 있다”며 “스타트업 500개에 투자하겠다는 C랩의 목표를 거의 달성했다”고 설명했다.

이지은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대표도 오픈 이노베이션, M12, Founders Hub 등 마이크로소프트의 다양한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 글로벌 VC들도 주목하는 K-스타트업···"어려울수록 현금흐름 관리해 겨울 나야"

9일 서울 DDP에서 열린 '컴업 2022'에서 이은세 541 벤처스 매니징 파트너, 음재훈 GFT 벤처스 매니징 파트너, 이호찬 ACVC 파트너스 대표의 대담이 진행되고 있다. / 사진=염현아 기자

자금난이 심화되자 국내 스타트업들의 글로벌 VC 투자 유치 시도도 늘고 있다. 투자 규모가 제한적인 국내를 넘어 해외로 눈을 돌리는 것이다. 정부도 해외 VC들과 함께 3000억원 규모의 글로벌 펀드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글로벌 VC들의 대담이 이어졌다. 미국 LA 기반 541 벤처스의 이은세 매니징 파트너, 실리콘밸리에 기반을 두고 있는 GFT 벤처스의 음재훈 매니징 파트너, 이호찬 ACVC 파트너스 대표가 참여했다. 이들 전문가는 글로벌 VC 업계에서 한국 스타트업들의 높은 위상을 소개했다. 

실리콘밸리 기반 딥테크 전문 글로벌 VC인 ACVC 파트너스의 이호찬 대표는 "글로벌 VC들은 이미 카카오, 쿠팡, 우아한형제들, 토스 등 국내 기업들의 엑시트(투자금 회수) 사례를 보며 국내 스타트업 투자에 망설임이 없다"며 "한국 기업들은 이미 투자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음재훈 파트너도 "글로벌 VC들은 빠른 성장, 높은 생산성, 높은 효율성만 충족한다면 출신과 상관없이 과감히 투자한다"며 "한국에서 성공하면 글로벌 VC들이 알토스벤처스 등 로컬 지사를 둔 파트너사를 통해 연결을 요청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거시경제의 불확실성으로 시장 규모가 큰 미국을 노리는 국내 스타트업들에게 조언도 건넸다. 

음 파트너는 "한국에서 투자 받기 어렵다고 미국을 노리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어려울수록 기본으로 돌아가 현금 흐름을 관리해 겨울나기를 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파트너도 "최근 글로벌 VC들도 10억달러 규모에서 3억달러 스타트업으로 투자 대상을 바꾸고 있다"며 "현재 스타트업들의 기업가치가 내려가고 있는데, 글로벌 VC들에게는 이때가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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