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 출석 기업인 상대 망신주기에 비판 여론
올해 국감 출석 기업인 실무자급 하향 추세
개선 시급한 대책 요구엔 오너 출석 더 효과적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집에 못 들어간지 열흘은 된 것 같아요.” 최근 국정감사 준비에 한창인 한 의원실 관계자가 기자에게 건넨 말이다.

국정감사는 국회의 중요 업무 중 하나이다. 정부 정책 미비로 국민들이 불편을 겪는 부분은 없는지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 국감 활동이 의정활동을 평가받는 주요 지표이기도 해 의원실에선 준비에 온 역량을 쏟아붓는다. 

국감을 진행하는 데 있어 기업인 소환은 연례행사다. 기업의 애로사항을 들으려는 이유도 있지만 주로 잘못을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하기 위한 목적이다. 

올해도 기업인들이 국정감사에서 진땀을 빼고 있다. 지난 4일 행정안전부 국감에는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이 나와 태풍 ‘힌남노’로 인한 포항제철소 침수 사태 대응이 부실했단 질책을 받았다. 다음날 고용노동부 국감에선 박두선 대우조선해양 대표이사가 하청근로자 파업에 대해 손해배상 소송을 낸 것을 두고 의원들의 거센 질타를 받았다. 

앞으로 불려나갈 기업인들도 상당수다. 농협(권준혁)·하나(박성호)·우리(이원덕)·KB국민(이재근)·신한(진옥동) 등 5대은행장은 은행권 횡령사고 이슈로, 교촌에프앤비(윤진호)·BHC(임금옥)·BBQ(정승욱) 등 치킨 프랜차이즈 3사 경영진은 가맹점 착취 및 갑질 문제로 각각 줄소환을 앞두고 있다.

삼표산업·DL이앤씨·동국제강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HDC현대산업개발은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사고 문제로 각 대표가 국감 출석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국회가 기업인들을 국감장에 불러내 과연 생산적 논의가 이뤄지는지를 두고 논란이 크다. 기업의 문제점을 찌르는 송곳 같은 질의 대신 호통과 망신주기로 흘러가는 경우가 다반사다 보니 바쁜 사람 불러놓고 시간만 허비한단 비판이 커지는 실정이다.

이에 경영활동에 전념해야 할 오너를 굳이 부를 것 없이 실무자가 국감에 출석시켜도 문제가 없단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실제 이번 국감 출석 기업인들을 전체적으로 보면 오너나 대표급보다 아래인 부사장이나 상무, 전무급으로 하향된 추세가 읽힌다.

그러나 국감 취지와 기업 특성을 봤을 때 이같은 흐름이 바람직해 보이진 않는다. 흔히들 오너와 전문경영인의 가장 큰 차이는 책임 경영이라고 한다. 오너는 미래 비전이 큰 분야라면 리스크를 감수하더라도 도전할 가능성이 전문경영인에 비해 높다. 이익과 손해를 고스란히 감수해야할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이는 기업에 문제가 생겼을 때도 마찬가지다. 사고가 터지면 오너는 책임지고 수습해야 하지만, 전문경영인은 쫓겨나면 그만이다. 실제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국회는 광주 철거공사 사고 문제로 HDC현대산업개발의 실질적 오너인 정몽규 회장이 아닌 권순호 대표를 불러 거센 추궁을 했다. 이후 권 대표는 자리에서 물러났으나 정 회장은 그룹 수장자리를 지키고 있다.

국감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들은 오너가 참석한 국감에서 기업 잘못을 지적했을 때 좀 더 확실한 시정이 이뤄지는 반면, 다른 실무자가 참석했을 때는 시정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입을 모은다. 정말 개선이 필요하면 오너를 부르는 게 해결책이란 것이다. 

기업인 출석 논란 등 국감이 효과적으로 진행되지 못한단 얘기는 쉽게 할 수 있다. 함량 미달의 질의, 과도한 기업인 증인신청 등 문제는 분명 시정해야 한다. 그러나 대안 없는 비판은 위험하다. 기업 잘못으로 국감장에 나온 오너와 실무진 중 누가 더 책임있는 조치를 약속할 수 있겠는가.

기업도 결국 국민 세금을 통해 국가가 구축한 기반을 토대로 경영활동을 한다. 답답하더라도 우리 기업이 국감에 성실히 임해야 하는 이유다. 기업인을 불러놓고 허송세월하는 국회의원은 국민이 심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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