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IRA로 “국내서도 수입 전기차 대상 보조금 차별해야“ 목소리 높아져···대당 전기차 보조금 축소 흐름도
수입차 업계, 전기차 시장 제한적인 가운데 고가차 중심으로 수익 향상 전략
벤츠 EQE, BMW i7, 폴스타3 등 억대 전기차 출시 이어질 듯
[시사저널e=박성수 기자]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인해 국내에서 수입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 축소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최근 수입차 업계는 보조금 영향을 덜 받는 억대 이상 전기차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IRA 영향 뿐 아니라, 매년 전기차 1대당 지원 보조금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수입차 업계는 보조금에 좌우되지 않는 고가 전기차 판매를 확대하며 차별화를 두겠다는 전략이다.
29일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올 1~8월 억대 수입 전기차 판매는 2334대로 전년대비 78% 증가했으며, 전체 전기차 판매(9744대, 테슬라 제외)의 24%를 차지했다. 테슬라도 작년부터 가격 인상을 이어오며 모델Y 롱레인지는 9664만원, 모델Y 퍼포먼스는 1억473만원까지 올랐다.
앞서 내연기관 시대에서도 수입차 브랜드들이 국산차와 대비되는 고가·고급화 전략을 통해 성장한 만큼 전기차에서도 이 방식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앞서 출시한 억대 전기차 흥행으로 입증됐다. 아우디코리아는 지난 2020년 1억원이 넘는 전기차 e-트론과 고성능 모델인 e트론 GT, RS e-트론 GT 등을 선보였다. 아우디는 지난해 e-트론을 1500여대 판매하며 억대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1위를 차지했다.
아우디 뿐 아니라 포르쉐코리아는 지난해 타이칸이 크게 성공하며 억대 전기차 판매량 1296대를 기록, 아우디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전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도 아우디, 벤츠에 이어 3위다. 올해에는 전기차 932대를 판매하며 억대 수입 전기차 시장 1위를 차지했다.
아우디 e-트론, 포르쉐 타이칸, BMW iX 등 억대 전기차가 예상보다 선전하면서 고급화 전략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또한 최근 정부가 전기차 확대를 위해 대당 보조금을 줄이고, 가격 상한선을 둬 고가 모델에 대한 보조금을 축소하고 있어 수입차 입장에선 보조금 영향력이 줄고 있는 추세다.
여기에 지난 27일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가 전기 세단 ‘더 뉴 EQE’를 국내 출시하며 억대 수입차 시장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벤츠는 EQE 라인업 중 ‘EQE 350+’를 먼저 국내에 출시하기로 했으며, 가격은 1억160만원으로 정부 보조금을 받지 못한다. 그럼에도 국내 수입차 시장 최고 인기 모델인 E클래스 기반 전기차라는 점과 471㎞에 달하는 긴 주행거리, 3120㎜상당의 휠베이스(축거), 첨단 주행보조 시스템 및 편의사양 등을 갖춰 흥행이 점쳐지는 모델이다.
벤츠코리아 영업점 관계자는 “EQE가 지난해 국내에서 공개된 이후 사전계약 문의가 끊이지 않았다”라며 “출시 소식 이후 계약자가 급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벤츠 뿐 아니라, BMW도 연말에 7시리즈 기반 전기차 모델인 i7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i7 가격은 2억1570만~2억1870만원이다.
◇ 보급형 시장서 현대차와 경쟁하기 부담 커···한정된 시장 내 고수익 전략
수입차 브랜드들이 1억원대의 고가 전기차에 집중하는 것은 국내 보급 전기차 시장을 현대자동차그룹이 꽉 잡고 있어서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아이오닉5, EV6 등 순수 전기차를 출시한 데 이어 올해에는 아이오닉6를 내놓으며 세단 전기차 시장까지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자동차데이터 조사기관 카이즈유 데이터 연구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아이오닉5는 1만4179대, EV6는 1만2009대 등 총 2만6188대로 전체 전기차 판매(6만8996대)의 약 38%를 차지했다. 여기에 GV60 3254대, G80e 1591대 등을 포함하면 전기차 시장내 현대차그룹 비중이 45% 수준까지 올라간다.
전기차 보조금 경쟁에서도 현대차에 비해 밀릴 가능성이 높다. 최근 IRA로 인해 국산 전기차가 미국에서 전기차 보조금을 받지 못하게 되자, 국내에서도 수입 전기차에 대해 차별을 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국산·수입차에 상관없이 가격과 주행거리 등을 기준으로만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아직 전기차 보조금 정책이 정해지지 않았으나, 향후 국산차에 유리하게 정책이 변경된다면 수입차 브랜드 입장에선 보조금에 영향을 덜 받는 고가 위주 차량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전기차가 대중화되기 전까진 아직 시간이 많이 필요한 만큼 한정된 시장에서 억대 이상의 고수익 모델을 늘려 실적을 개선하겠다는 전략을 펼칠 가능성이 높다.
한 수입차 관계자는 “5000만원짜리 차를 팔 때와 1억원 차를 팔 때 마진이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며 “아직 전기차 시장이 크지 않은 가운데, 억지로 물량을 늘리기보다는 대당 수익이 높은 고가의 차를 판매하는게 실적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중저가 수입 전기차가 주춤하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상대적으로 보급형 브랜드인 일본차가 불매운동 이후 판매 감소와 함께 전동화 전환 속도가 뒤처지고 있다는 점도 있다.
일본차 브랜드의 경우 지난 2019년 일본 불매운동 이후 판매가 급감해 아직까지 여파가 이어지고 있다. 올해 1~8월 일본차 판매는 1만527대로 불매운동 전인 2019년(2만7554대)와 비교하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또한 최근 렉서스가 전기차 UX300e를 내놓은 것 말고는 아직까지 일본차 브랜드에선 마땅한 전기차가 없다.
아울러 아우디도 최근 Q4 e-트론을 출시하며 보급형 시장 진출을 선언했지만, 겨울철 주행거리 측정 기준에 못 미쳐 보조금을 받지 못하게 돼 판매 확대를 기대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그나마 폴스타가 폴스타2를 통해 보조금을 받으며 중저가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으나 향후 폴스타도 1억원이 넘는 폴스타3를 내놓을 계획이라 억대 위주 수입 전기차 시장 흐름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