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LG·롯데·넥슨, 법정 세율 맞춰 연부연납 성실 납부
재계, 증여세도 5→10년 주장···현대차·한화 지배구조 개편 탄력 기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부터)과 구광모 LG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사진=연합뉴스
(왼쪽부터)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광모 LG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유호승 기자] 재계의 상속세 납부 방식에 과거와 다른 기류가 감지된다. 정해진 세율에 따라 정확히 산정하고 수년에 걸쳐 분할납부하는 정공법을 택하고 있다. 천문학적 규모의 상속세 납부 의무를 피하기 위해 편법·탈법을 통해 경영권 대물림에 나섰던 예전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현행 상속법에 따르면 물려받는 재산이 30억원을 넘을 경우 최고세율인 50%가 적용된다. 최대주주 주식의 경우 할증이 붙어 최대 65%로 높아진다. 1조원의 주식을 상속받는다면 상속세로 6000억원이 넘는 돈을 내야하는 셈이다.

이로 인해 과거 일부 기업은 공익재단을 통한 상속 등의 ‘편법’을 사용했다.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1965년 설립한 삼성문화재단으로 계열사 지분을 꾸준히 이전해왔다. 이를 아들인 고 이건희 회장이 재차 사들이는 방식으로 상속이 이뤄졌다. 당시 상속법에 따르면 공익사업에 기부한 재산은 과세액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이 회장은 이 창업주가 1987년 별세한 후 상속세로 176억원만 납부했다.

이 방식이 무조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이 회장이 총수로 취임할 당시 다른 형제와 일부 마찰이 있어 방식과 법정세율에 따라 곧이곧대로 상속세를 납부했다면 경영권이 흔들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단, 편법이라는 의구심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반면 최근 상속 방식은 다르다. 법정 세율에 따라 투명한 방식으로 납세의 의무를 다한다. 국내 5대 기업 중 현재 상속세를 납부 중인 곳은 삼성과 LG, 롯데 등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일가의 상속세 규모는 12조원 수준이다. 유족은 5년 동안 나눠서 이 세금을 납부 중이다.

구광모 LG 회장 등도 고 구본무 회장으로부터 상속받은 재산에 대해 9000억원의 상속세를 납부 중이다. 구 회장은 상속 당시 법정세율에 따라 성실하게 납세할 것을 약속했고, 이를 실천 중이다.

고 신격호 롯데 창업주의 별세로 신동빈 롯데 회장 등이 내야하는 상속세는 3000억원 수준이다. 신 회장은 본인이 보유한 롯데케미칼 주식을 롯데지주에 매각하는 등의 방식으로 상속재원을 마련했다. 그 역시 연부연납 방식을 택해 상속세를 납부 중이다.

고 김정주 넥슨 창업자의 유족도 법령에 따라 상속세를 납부하기로 했다. 6조원 규모의 상속세를 주식담보대출과 배당금으로 마련해, 최대 10년에 걸쳐 나눠 내기로 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정해진 세율에 따라 상속세를 납부하지 않을 경우 총수의 도덕성을 의심 받아 글로벌 투자자로부터 외면받을 수 있다”며 “이러한 인식이 경제계에 퍼지면서 편법이 아닌 정공법으로 세금을 납부하는 흐름이 어느 정도 자리잡은 것 같다”고 말했다.

정의선 현대차 회장(왼쪽)과 김동관 한화 부회장. /사진=현대차·한화
정의선 현대차 회장(왼쪽)과 김동관 한화 부회장. / 사진=현대차·한화

재계는 정부가 지난해 기업승계와 관련된 상속세 납부연한을 기존 5년에서 10년으로 늘린 것처럼 증여세 역시 같은 기간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최근 국세청에 이같은 내용을 건의했다. 증여세도 연부연납 기한이 늘어난다면 기업의 경영권 승계가 최대주주의 사망 시점보다 앞서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상대적으로 조직이 젊어지면서 해당 기업에 변화 및 활기가 돌 수 있다.

대한상의는 “평균 수명이 늘고 있어, 기존 최대주주의 사망 시점에 경영권 승계가 이뤄진다면 후계자도 고령일 수밖에 없다”며 “최대주주가 사망이나 실제 경영활동에 참여하기 어려운 건강 상태가 되기 전에 지분 증여가 이뤄져야 하는 만큼, 증여세도 상속세처럼 납부기한을 하루 빨리 10년으로 늘려야 한다”고 밝혔다.

재계의 주장처럼 증여세 납부기한이 늘어난다면 현대차와 한화의 경영승계 과정도 한층 탄력을 받을 수 있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정몽구 명예회장에서 정의선 회장으로 경영의 중심이 바뀌었지만, 지분구조는 크게 변하지 않아 지배구조 개편이 마무리된 상황은 아니다.

한화 역시 마찬가지다. 김동관 부회장이 최근 승진하면서 후계 구도가 뚜렷해졌으나 그가 보유한 한화 지분은 크지 않다. 김승연 회장이 본인이 가진 주식을 김 부회장에게 상당 부분 증여한다면 상속 시기보다 큰 잡음 없이 경영권 승계가 마무리될 수 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