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케미칼 박철 전 부사장 징역 2년, 양정일 전 부사장 징역 1년6월 실형 선고
윤리경영 담당하며 증거인멸 등 범죄···SK디스커버리·케미칼 임원 유지
피해자 측 “징계는커녕 주요 직책 맡겨 소비자 기만···내부에 잘못된 신호”

지난해 12월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장동엽 참여연대 상임간사가 가해기업과 임직원들에 대한 처벌을 촉구하는 피켓팅을 하는 모습. /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12월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장동엽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전 사무국장이 가해기업과 임직원들에 대한 처벌을 촉구하는 피켓팅을 하는 모습.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가습기살균제의 위해성과 관련된 증거들을 조직적으로 인멸·은닉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전 SK케미칼 임원들이 여전히 직을 유지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강조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과 거리가 멀고 내부 직원들에게 부적절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5단독 주진암 부장판사는 지난달 30일 증거인멸 등 혐의로 기소된 박철 전 SK케미칼 부사장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가습기살균제 성분에 대한 서울대학교 실험보고서에 대한 증거인멸·은닉 ▲노트북 저장자료에 대한 증거인멸 ▲USB 저장자료에 대한 증거인멸 ▲외장하드 저장자료에 대한 증거인멸 혐의가 모두 유죄로 인정됐다.

박 전 부사장은 2012년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장을 끝으로 퇴직한 뒤 SK그룹으로 자리를 옮긴 인물이다. 그는 SK케미칼 법무실장, SK에코플랜트 윤리경영총괄, SK가스 법무실장 등을 역임하다 2017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SK케미칼이 지주회사인 SK디스커버리와 사업회사인 SK케미칼로 인적분할한 뒤에도 SK디스커버리 윤리경영담당으로 근무하며 SK케미칼의 법무와 홍보 업무를 총괄했다.

박 전 부사장과 함께 재판에 넘겨진 양정일 전 SK케미칼 법무실장(부사장)도 같은 공소사실이 유죄로 인정 돼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판사 출신인 양 전 부사장은 2013~2014년 SK케미칼 법무담당 임원, 2015~2018년 SK케미칼 윤리경영부문 법무실장 등으로 근무하며 SK케미칼의 법무업무를 맡았다.

판결문에 따르면 가습기살균제 관련 증거인멸 범죄는 이들이 윤리경영이나 법무, 홍보 업무를 맡은 2013년부터 2019년까지 이어졌다. 수년간 이어진 기소와 재판과정에서도 두 사람이 윤리경영 등 업무를 맡은 게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두 사람은 최근 윤리경영부문에서는 물러난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아직도 임원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

SK디스커버리 반기보고서(2022년 8월16일자)에 따르면 박 전 부사장은 미등기 임원(상근)으로 이름을 올렸다. 담당업무는 ‘CEO 보좌’이다. 그는 SK가스 본사부 임원도 겸직하고 있다. SK케미칼 반기보고서(2022년 8월16일자)에 따르면 양 전 부사장 역시 ‘사장 보좌’라는 업무를 맡고 SK케미칼 미등기 임원(상근)으로 재직 중이다.

장동엽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전 사무국장은 “박 전 부사장은 한차례 구속됐다가 풀려났을 정도로 증거인멸 혐의가 뚜렷했던 인물로 윤리경영업무에 적합하지 않았다”며 “그 어느 기업들보다 ESG 경영을 강조해 온 SK그룹 계열사들이 이들에게 징계는커녕 여전히 주요 직책을 맡기고 있는 것은 소비자를 기만하는 모순적 행태다”고 지적했다. 이어 “회사가 이들을 중용한다면 내부 직원들에게 ‘소비자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불법행위를 저지르더라도 회사에 이익을 준다면 승승장구할 수 있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시사저널e는 SK디스커버리 관계자에게 ‘형사사건에서 실형을 선고받으면 임원에서 결격되는 법률적 또는 내부 기준이 존재하는지’, ‘회사는 두 사람에 대한 계약을 계속 유지할 것인지’ 문의하고 수차례 연락했으나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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