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 투자 축소 가능성···마이크론, 설비투자 축소 발표
매출 인식 지연에 엔저 현상도 국내업계 불리
[시사저널e=이호길 기자] 글로벌 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소비심리 둔화로 하반기 반도체 업황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장비사들의 실적도 주춤할 것이란 예상이다. 반도체 수요 감소로 인한 재고 조정으로 장비 투자가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다. 엔화 약세로 일본 장비사들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진 점도 국내 업체들의 하반기 실적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인이다.
8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투자는 예정대로 이뤄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2분기부터 평택 P3 공장에 낸드플래시 장비를 반입 중이고, 3분기에는 D램과 파운드리 장비로 범위를 넓힐 계획이다. SK하이닉스는 이천 M16 공장에 추가 생산 공간을 마련하면서 극자외선(EUV) 노광기를 비롯한 D램 장비를 입고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올해 반도체 투자 규모는 각각 45조원과 15조원 수준으로 전년보다 소폭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변수는 있다. 마이크론이 오는 9월부터 투자를 선제적으로 줄이겠다고 밝힌 만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물량 조정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다. 마이크론은 최근 실적 발표를 통해 PC와 스마트폰 수요 감소를 전망하면서 반도체 과잉 공급을 방지하기 위해 신규 공장과 설비 투자를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장비업계 관계자는 “물가 상승 등 거시경제 지표가 악화되고 있어 반도체 수요가 둔화할 수 있다. 이 경우 기업들이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장비사들은 6개월가량을 선행해서 수주를 받다 보니 하반기 매출을 대략적으로 전망할 수 있는데, 연초에 생각한 것보다는 성장폭이 높지 않고 투자 속도도 느린 상황”이라고 말했다.
물류난 등 공급망 위기에 따른 장비 인도 지연으로 매출이 이연되고 있는 점도 장비사들의 하반기 실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장비 인도가 늦춰지면서 매출 반영 시점이 계속 밀리고 있는 원익IPS가 대표적이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 P3 장비 매출 인식 일부가 3분기로 이연될 것으로 판단된다”며 “2분기 실적은 기존 전망치 및 시장 컨센서스를 소폭 하회할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이어 “3분기로 예상됐던 P3와 M15 장비 매출 인식 시점도 각각 4분기와 내년 1분기로 지연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하반기 실적의 또 다른 변수는 환율이다. 달러 강세로 2분기 원달러 평균 환율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 상승한 점은 반도체 장비 수출에 유리한 조건이지만, 엔저 현상은 일본 장비사의 가격 경쟁력 개선으로 이어져 국내 업체들에 불리하단 분석이다. 엔화 가치는 1998년 이후 24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장비업계 관계자는 “달러 강세가 나타나면 실질 매출이 줄어도 수출 비중이 높은 업체는 환율 효과로 실적이 개선되는 반사이익이 있지만, 동시에 엔화도 약세를 보이고 있는 점은 일본 기업과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장비 공급은 달러 기준으로 이뤄지지만, 일본업체들의 할인 폭이 더 클 수밖에 없다”며 “매출을 원화로 바꿨을 때 환차익 측면에서 이득은 있을 수 있으나 엔저로 수주를 따오는 게 어려워져 꼭 좋은 상황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