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관계인 사이 주식 체결률 99% 육박···법원 “우연한 결과 배제 못해”

'일감 몰아주기'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구자은 LS그룹 회장(왼쪽부터), 구자엽 LS전선 회장, 구자홍 LS니꼬동제련 회장이 지난해 8월10일 오후 첫 공판이 열리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일감 몰아주기'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구자은 LS그룹 회장(왼쪽부터), 구자엽 LS전선 회장, 구자홍 전 LS니꼬동제련 회장이 지난해 8월10일 오후 첫 공판이 열리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LS그룹 총수일가가 한국거래소 상장주식 종목과 물량, 가격 등을 사전에 짜고 거래했다는 이유로 부과된 세금을 취소해달라며 세무당국을 상대로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승소했다.

주식 체결률이 99%에 달했지만, 법원은 경쟁매매가 아니라고 볼 증거가 부족하고 거래소 시스템에 의한 우연한 결과임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재판장 이주영 부장판사)는 구자은 LS그룹 회장 등 총수일가 13명이 중부세무서 등 7개 세무서를 상대로 제기한 양도소득세부과처분취소 소송을 최근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고 7일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들이 원고들에게 한 부과처분을 취소한다”고 판시했다.

이 사건 원고에는 구자은 회장 외에도 구자홍 전 LS니꼬동제련 회장, 구자엽 LS전선 회장, 구자철 예스코홀딩스 회장, 구자열 전 LS그룹 회장, 구자용 E1 대표이사 회장, 구자균 LS일렉트릭 회장 등이 포함돼 있다.

◇과세당국 “특수관계인 양도는 양도소득세 포탈···경영권 승계 작업 일환”

국세청은 지난 2018년 12월~2019년 6월 LS그룹 총수일가의 주식양도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한 결과, LS그룹 총수일가가 2015년 2월16일, 2017년 11월3일 한국거래소의 장내매매방식으로 총 63만5000주를 주고받은 사실을 확인했다.

국세청은 원고 4명의 매도주문과 LS그룹 사주일가의 다른 구성원의 명의로 매수주문이 동일 또는 유사한 시기에 이뤄졌다는 이유 등으로 부당행위계산 부인 규정을 적용해 양도소득세를 경정하기로 하고 이 같은 세무조사 결과를 통지했다.

원고 4명은 2015년 및 2017년 귀속 양도소득세 합계 27억여원을 수정신고·납부했는데, 각 세무서는 이 사건 주식거래(제1거래)가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라며 부당과소신고가산세(40%)를 적용해 수정 신고된 가산세와의 차액인 총 5억4000여만원을 경정·고지했다.

국세청은 또 2019년 9월~2020년 1월 나머지 원고들에 대해서도 세무조사를 실시해 특수관계인 사이 46만주(제2거래)의 주식거래를 추가로 확인하고, 양도소득세(가산세 포함)를 각 증액경정·고지했다.

국세청은 이들의 주식거래가 ‘경영권 승계 작업’의 일환으로 지분을 직계일가로 이전하는 계획 아래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국세청은 LS그룹의 최대주주들이 상장주식을 장내에서 특수관계인에게 양도하면서 불특정 다수인에게 양도한 것처럼 위장해 양도소득세를 포탈했다고 봤다.

구 회장 등은 각 처분에 불복해 조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했지만 모두 기각됐고, 이번 행정소송까지 제기했다.

◇ 법원 “거래소 경쟁매매로 특수관계인 간 거래 아냐···거래가 왜곡 정황도 없어”

구 회장 등은 주식양도가 한국거래소의 장내 경쟁매매 방식으로 이뤄졌다며 특수관계인 간 거래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 각 주식의 매매가액 역시 실지거래가액에 해당해 ‘저가 양도’가 아니며, 사회통념 등에 비춰 경제적 합리성이 없는 비정상적 거래도 아니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이 같은 거래 방식에 적극적 은닉 의도가 없었기 때문에 ‘사기나 그 밖의 부정한 행위’라는 전제에서 부당과소신고가산세율 40%를 적용한 것은 위법하다고 했다.

법원은 이 사건 주식거래가 거래소 시장 내 경쟁매매로 이뤄진 점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거래가 ‘특정인 사이에 이뤄진 거래’인지에 대해 “거래소 시장의 경쟁매매에서는 다른 투자자를 배제하고 주문할 방법이 없고, 지정한 호가대로 거래가 100% 체결된다는 보장도 없다. 실제로 증권회사나 매도인이 거래 상대방을 확인할 방법도 없다”며 “원칙적으로 거래소 시장에서의 경쟁매매는 특정인 간의 매매로 보기 어렵고, 이 사건 각 거래가 그와 같은 경쟁매매의 본질을 상실했다거나 경쟁매매로 보기 어려울 정도라는 점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저가 양도’ 여부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이 사건 각 거래의 주문평균가는 항상 각 거래일 당시 주식 가액의 고가와 저가 사이에서 형성됐고, 각 거래를 원인으로 거래소 시장 내 거래가격이 왜곡된 것으로 볼 만한 정황도 발견되지 않는다”며 “부당하게 저가로 거래되었음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경제적 합리성을 결여’했는지에 대해서도 “거래소 시장의 경쟁매매는 상장주식의 일반적인 주식 거래 방법이고, 특수관계가 있는 사람들이 거의 동시에 동일한 금액으로 각 매도․매수주문을 하는 것 자체를 특히 금지하거나 하는 규정도 없다”며 “매도, 매수주문이 거의 동시 또는 인접한 시간에 동일한 또는 유사한 금액으로 행해졌다는 점을 제외하면 이 사건 각 거래가 시세조종행위 등을 금지하는 자본시장법에 위배된다고 볼 근거도 없다”고 봤다.

특히 재판부는 “각 거래에 관한 사전 합의가 있었다고 보더라도 원고들이 의도한 것이 아니라 거래소 시장의 거래 시스템에 의한 우연한 결과다”며 “제3자와 체결된 일부분에 대해서는 정상적인 거래로, 특수관계인과 체결된 일부분에 대해서는 비정상적인 거래로 판단하는 것은 지나치게 기교적이다”고 했다. 또 “피고들은 원고들과 특수관계인 사이의 주식 체결률이 99%에 이르는 점을 들어 각 거래의 실질을 특정인 간 거래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지만, 이는 거래량이 적었던 우연한 사정에 의한 것이라고 보일 뿐이다”며 “각 거래의 실질이 특정인 간 특정물의 매매로 전환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사기 및 그 밖의 부정행위’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이 사건 각 거래는 특정인 간의 거래로 볼 수 없고, 양도가액 역시 정당하며 경제적 합리성이 없는 비정상이라고 볼 수도 없다”며 “부당행위계산부인 대상이 될 수도 없다”고 판단했다.

한편, LS그룹 총수일가의 주식 양도 행위에 관여한 혐의(특정범죄가중법상 조세)로 기소된 도석구 LS니꼬동제련 대표이사(전 LS 재경부문장)는 지난해 12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LS그룹은 재경부문에 사주일가가 보유한 계열사 지분율을 유지하는 업무를 맡겼고, 도 대표이사는 2008년~2015년 재경부문장으로 재직했다.

도 대표이사의 사건을 심리한 서울북부지법 재판부는 “거래소 시장 내 경쟁매매로 이뤄진 주식거래는 특수관계인 간의 거래에 해당하지 않아 소득세법상 부당행위계산부인 규정이 적용될 수 없고, 주식거래방식을 사기나 그 밖의 부정한 행위로 볼 수 없으며 조세포탈의 범의가 있었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은 검사가 항소해 항소심이 계속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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