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尹 분권정부 약속 선언문 담아···"대통령에 권력 집중 돼 말 바꾸면 그만“
정권 초 법 개정 시기 놓치면 어려울 듯···"당선 누구냐에 논의 양상 다를 것"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대선 막판 단일화로 표심을 결집한 후보들은 한 목소리로 분권형 공동정부를 약속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법적 장치를 마련하지 않는다면 헛구호로 끝날 수밖에 없단 지적을 내놓는다. 여당이 과반을 점유한 국회 지형을 봤을 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보다는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집권했을 때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 압력이 더 크게 일어날 것이란 관측이다.
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대선 투표일이 임박하면서 후보 간 단일화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전날 김동연 새로운물결 후보가 이재명 후보 지지를 선언한데 이어 이날 오전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윤석열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단일화에 합의했다.
단일화를 한 후보들은 권력을 함께 나누겠단 취지의 정부 구성을 약속하고 있다. 이 후보와 김 후보는 국정운영의 동반자로서 국민통합정부를 구성하겠다고 합의했다. 개헌과 정치개혁, 독립적 의사결정체 구성에도 의견을 같이했다. 윤 후보와 안 후보는 인수위부터 두 후보가 함께 인사권을 행사하고 공동정부를 구성하겠다고 했다. 양측이 각각 내세웠던 가치를 집권시 함께 추구할 것이란 내용을 선언문 형식으로 담았다.
양대 대선후보 모두 집권시 후보직을 양보한 쪽과 권력을 나누겠다고 약속하지만, 전문가들은 대통령에 권력이 집중된 우리나라 정치체제 특성상 분권형 정부가 실현되긴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개헌이나 입법 과정을 통해 현행 대통령제를 근본적으로 손질하지 않는다면 권력을 나누는 것은 전적으로 대통령 의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안 후보가 단일화 조건으로 국무총리나, 장관 몇 명을 추천하더라도 대통령이 된 윤 후보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이다.
과거 사례도 있다. 15대 대선 당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는 김종필 자유민주연합 후보와 이른바 'DJP 연합'에 합의하고 공동 정부를 구성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김종필 후보가 실권형 국무총리에 올랐지만 두 진영간 파열음이 커지면서 1년여 만에 연정이 깨진 전례가 있다. 국무총리도 대통령이 권한을 주는 것이지 법적으로 독자적 권한을 보장받고 있진 않다.
김준석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공동 정부란 게 구두적, 정치적 약속일 뿐 법적 실효성이 없고 대통령 한 사람 손에 실현 여부가 달려있다"며 "제도화 하려면 법적 장치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장승진 국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제도적 뒷받침 없이 후보 간 합의나 대통령 개인 의지에만 의존해선 분권형 정부는 불가능하다"며 "대통령제 하에서는 분권, 통합 얘기가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고 말했다.
후보들이 약속하는 공동정부가 실현하려면 집권 즉시 권력을 나누는 법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단 지적이다. 선거를 앞둔 시점에선 정치권력을 나누겠다고 장담하지만 대통령 임기가 본격화하면 할수록 약속이 꺾일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된다는 것이다.
지금 단일화도 후보 자리를 양보한 쪽에서는 법적 장치로 약속을 보장받길 원할 것이고 양보를 받은 쪽에선 일단 당선이 급하기에 정치적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상황에서 권력을 좀 더 많이 가지려고 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번 대선을 치르면서 대통령 중심제에 대한 국민 생각 변화로 분권형 정부를 논의할 환경은 무르익었단 분석이다. 그동안 국민들은 무의식적으로 대통령이란 국가적 상징에 권력과 책임을 주는 게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번 대통령 선거에선 찍을 사람이 없고 차악을 고르는 선거란 얘기가 나오면서 대통령이란 1인에게 권력을 몰아주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상황이다.
이 후보나 윤 후보가 당선됐을 때 분권을 추진하는 양상은 다소 다르게 흘러갈 것이란 분석이다. 김 교수는 "이 후보가 당선된다면 정치 개혁을 추진하더라도 대통령 중심제 자체를 뒤흔드는 움직임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윤 후보가 이긴다면 개헌 논의가 강해질 것"이라며 "선거를 앞둔 지방권력은 어찌될지 모르지만 국회는 앞으로 2년간 민주당이 확실하게 장악하고 있어 갈등이 심해질 수 있고 그런 상황에서 타협점으로서 권력구조 개편에 양측 이해가 맞아떨어질 수 있다"고 봤다. 윤 후보 집권 시 대통령 입장에선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해야 하고 의회 권력을 쥔 민주당은 권력을 나누고 싶단 생각이 있을 수 있기에 분권형이나 의원내각제 등 개헌 논의가 나올 수 있단 설명이다.
우리나라 현실에서 바람직한 권력구조 방향을 놓고는 전문가 의견이 엇갈린다. 김 교수는 "하나의 정치 세력에만 맡겨놓으면 갈등이 깊어진다. 전 세계적으로 (대통령 중심제인) 미국이나 우리나라의 경우 정파 간 갈등이나 양극화 가장 심하다"며 "반면, 유럽 국가들은 양극화가 있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다. 권력 분할이 제도화된다면 양극화, 국민 편 가르기 식 갈등은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개인적으로는 대통령제를 더 선호한다. 선거를 통해 국민이 권한을 위임한 대통령이 자신이 추구하는 공약을 추진하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게 더 바람직하다"며 "분권이나 협치, 통합은 취지는 좋지만 대통령제를 유지하는 한 근본적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