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차 시장 개방 논의 3년 간 공회전···결국 대선 이후로 결정 미뤄져
대기업·수입차 업체는 중고차 시장 진출···완성차 업계만 막는 것은 역차별
소비자도 중고차 시장 개방 요구···“정치적 결정 아닌 정책적 결정해야”

[시사저널e=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 지난 3년 간 자동차 산업에서 완성차 업계의 중고차 시장 진출 건은 주요 현안 중 하나였다. 이와 관련해 수많은 기사가 쏟아지며 논란이 일었지만,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남아있다. 중고차 분야 관련 수십 번의 세미나와 정책연구를 접하고, 상생협력위원회 좌장까지 담당했던 필자로선 더욱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그동안 완성차 업계의 중고차 시장 진출은 중소기업적합업종이라는 제도 하에 이뤄지지 못했다. 9년 전 만들어진 중소기업적합업종 제도는 3년씩 두 번 중고차 사업을 중소기업만의 영역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이후 관련 규정이 일몰되며 완성차 업계의 중고차 시장 진출 제한이 가능해졌다.

중소기업적합업종 제도 이후에 생계형적합업종이라는 제도가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생겨났다. 중고차 단체는 중고차 사업을 생계형적합업종으로 신청했고, 중고차 시장 개방 건은 3년 동안 공회전하게 됐다. 당시 관련 기관인 동방성장위원회는 수 개월 동안 중고차 산업 실태를 조사하며 생계업 지정에 대한 부적합함을 보고서로 제출했다. 중소벤처기업부 등장 이전까진 동반위에서 사실상 모든 관련 사안을 결정했으나, 중기부가 생겨난 이후엔 동반위에서 의견을 내고 중기부 심의위원회에서 이를 검토해 결정하는 구조가 됐다.

현재 주관부서인 중기부는 심의위원회에 관련 건을 올리지 않고 지난 3년 간 지체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법적인 위반으로 추후 관련 사안이 결정된다고 하더라도 별도의 조치가 필요한 문제다. 중앙정부가 법을 위반하면서 국민에게 법을 지키라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지난해 중기부가 관련 사안을 방치하고 있는 사이 민주당 을지로 위원회는 완성차업체와 중고차업체 양측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도록 상생협력위원회를 결성해 한시적으로 운영한 바 있다. 하지만 결국 의견은 조율되지 않았고 결정권은 다시금 중기부로 넘어가게 됐다. 위원회에서 좌장을 맡으며 어느 정도 정리된 협력안을 맡은 필자는 불합리한 조건을 제시해 협의를 어렵게 만든 중고차 단체에 책임을 묻고 싶다. 당시 필자가 제시한 협력안은 완성차 업체의 중고차 시장 점유 비율을 3%, 5%, 7%, 10%씩 4년에 걸쳐 조금씩 늘려나가는 방안이었다. 협력안은 관련 이행에 대한 검증기관까지도 마련했다.

중기부는 지난해 후반부터 관련 사안에 대한 결정을 지연하고 있다. 앞서 중기부는 지난해 말까지 심의위를 개최해 관련 사안을 결정한다고 했으나 1월까지 지체했고, 1월 열린 심의원회에서도 다시 한 번 결정을 유보하며 3월 대선 이후로 심의위 개최를 미뤘다. 중기부는 결국 새롭게 당선된 대통령에 맞춰 결정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을 만들었다.

결국 중고차 시장 개방은 중고차 단체의 목적대로 대선 이후로 연기됐고, 중기부는 늦장을 부리며 대선 이후로 넘기는 악수를 둔 셈이다. 관련 사안은 정치적으로 결정될 문제가 아닌 정책에 따라 결정될 사안이다. 정치적 부담을 떠넘긴 중기부는 이러한 책임을 통감해야 할 것이다.

현재의 중고차 시장은 허위·미끼매물 등을 줄이는 새로운 방안이 필요하다. 동시에 대기업의 문어발식 경영으로 인한 골목 상권의 피해도 고려해 협력안을 마련해야 한다.

중고차 분야의 완성차 진출에 대한 목소리는 이미 이전부터 들려왔다. 현재 국내 중고차 시장엔 이미 SK엔카나 K카 등 대기업이 진출한 상황이다. 수입차 업체들은 10년 전부터 인증중고차를 통해 신차와의 리사이클링 효과를 얻으며 점유율을 넓혀가고 있다. 완성차 업계의 역차별은 문제는 이러한 점을 감안했을 때 더욱 심각하게 다가온다.

한편, 중고차 시장에서 소비자 피해는 끊이지 않고 있는데도 정부는 역량을 발휘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완성차 업계가 인증중고차 분야에 진출해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관련 소비자 단체도 나서서 개방을 요구하고 있으며, 국민들도 중고차 시장 개방을 바라고 있다. 소비자 단체는 현재 중기부에 감사원 감사청구까지 준비했다. 그럼에도 관련부처는 이를 등한시하고 있다.

현재의 문제는 중고차 업계가 대선 주자들의 정치적 성향을 활용하고 있다는 데 있다. 실제로 한 대선주자는 완성차 업계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공식적으로 반대한다고 표명하며 정책적인 이슈를 정치적으로 끌고 갔다.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글로벌 선진국 중에서 어떤 국가도 완성차 업계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제한하지 않는다. 미국 GM(제너럴모터스)은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중고차 분야의 공식적인 확대를 선언하기도 했다. 차량용 반도체 부족으로 인한 신차 출시 문제로 중고차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는 상황에서, 글로벌 제작사의 역할은 단순히 신차 보급에 국한되지 않는다. 생애 주기형 관리가 중요해지고 모빌리티 플랫폼 운영이 가능해진 시점에서 중고차 판매는 글로벌 제작사의 역량 강화에 필수적이다. 중고차와 신차 사이의 시너지 효과는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향후 혹시라도 정치적인 결탁으로 관련 사안을 결정한다면 후폭풍이 거셀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의 뜻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관계부처는 이와 관련해 현명한 결정이 필요하다.

중고차 사업이 중소기업적합업종 부적합 판정을 받고 사업조정 신청이 이뤄진 만큼, 3월 대선 이후 누가 대통령으로 당선 되더라도 필자가 제시한 합의안을 고려해 올바른 결정을 내리길 바란다. 기존의 합의안을 이용하면 섣불리 나서서 혼란을 초래하지 않고 정책적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정치적인 이슈로 끌고 가지 않고 국민의 바람도 실현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다.

현대자동차 등 국내 완성차 업계는 3년 간 중고차 시장 진출을 양보하며 최선을 다했다. 현재 중고차 시장 진출을 선언하고 준비를 끝낸 만큼, 중고차 시장 진출은 명실상부한 상황이다. 관련 사안이 정치적인 결정으로 이뤄지지 않고, 현명한 방식으로 보편타당함을 갖춰 조속히 이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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