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측 “소요시간은 주행 상황에 따라 가변적” vs 소비자 “심각한 위험·사고 가능성”
매매대금반환 민사소송 항소심, 0.1초 단위 변속시간 측정 ‘전문가감정’ 명령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이탈리아 상용차 브랜드 IVECO(이베코)가 자사 덤프트럭 한 모델을 대상으로 진행한 ‘자체실험’에서 변속소요시간이 1.3초를 초과하는 사례가 전체 변속 시도 횟수 중 53%에서 발생했다. 매매대금반환 소송을 진행 중인 사측과 소비자는 이 소요시간의 적정성을 놓고 팽팽한 공방을 펼치고 있다.
이 사건을 심리하는 항소심 법원은 0.1초 단위로 기록·저장하는 측정 장비로 변속시간을 확인할 필요성을 인정하고 추가적인 ‘전문가감정’ 명령을 내렸다.
7일 시사저널e가 파악한 이베코 덤프트럭(형식 AD410T50SR) 주행시험 결과에 따르면 28차례 변속시도 중 절반이 넘는 15번의 사례에서 변속소요시간이 1.3~1.4초로 확인됐다.
해당 주행시험 결과는 이베코 한국지사가 자사를 상대로 제기된 매매대금 반환 소송 재판과정에서 제출한 것으로, 결과에 대한 사측과 소비자의 해석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사측은 재판부에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실험에 사용된) 트럭은 이 사건 덤프트럭과 같은 변속기를 사용하는 동종 모델로 급격한 기어변속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인 경우 기어 변속 예비 신호와 실제 기어 변속까지 최대 1.4초가 소요됨에도 아무런 운행 상 불편이나 위험이 초래된바 없다”며 “해당 변속기를 사용하는 덤프트럭에서 기어변속 시 1.4초 정도가 소요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임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사측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소비자 측은 안전주행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고 사고를 발생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반박했다. 소비자 측은 변속소요시간에 대해 '변속지연'이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소비자 측은 반박 준비서면에서 “주행 중인 차량들 간의 충돌사고는 통상적으로 눈 깜작할 사이인 0.1초 사이에 발생 한다”며 “갑작스러운 변속지연에 대해 충돌회피 운전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나 공간적 여유가 없는 경우 충돌사고가 쉽게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언덕이나 고속도로의 경사진 곳을 올라가던 중 1~2초의 변속지연이 발생한다면 트럭의 정차나 밀림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게 소비자 측의 지적이다.
이에 사측은 재반박 입장문을 통해 “자동화 수동변속기를 장착한 건설 기계 차량의 특성상 변속에 소요되는 시간은 차종과 실제변속이 이뤄지는 주행 상황에 따라 가변적”이라며 “변속 예비 신호가 발생한 시점으로부터 몇 초 이내 실제 변속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명시한 국내 법규는 존재하지 않으며, 이에 따라 변속에 1.3초가 소요됐다고 해서 이를 ‘변속지연’으로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밝혀왔다.
◆ GM, 2~3초 변속지연으로 ‘수리’ 사례 有···GM SUV와 이베코 덤프트럭 작동구조 달라 단순 비교는 어려워
자동차 업계에서는 변속소요시간 문제를 단순한 운행 불편 사항이 아닌 사고를 유발하는 안전 위험 사항인 ‘결함’으로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변속소요시간 해석을 놓고 공방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실제 GM의 글로벌안전조사본부는 지난 2018년 자사의 대형 SUV에 장착된 10단 자동변속장치에서 발생하는 2~3초 변속지연과 관련해 ‘변속지연에 대한 수리지시서’를 공식 판매대리점에 발송하기도 했다.
해당 지시서에서 GM은 변속단 사이에 2~3초 변속지연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하면서 이때 운전자들은 ‘변속충격’을 겪거나 경사진 곳에서는 잠시 ‘밀리는 현상’을 겪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하자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변속기 제어 모듈(Transmisson Control Module, TCM)을 리프로그램(Reprogram)하라고 지시했다.
다만 GM의 사례를 이베코 덤프트럭 사례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차량의 작동원리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사측은 “GM의 수리지침서 내 명시된 대형 SUV는 유체 속에서 변속이 이뤄지는 자동변속기(Automatic transmission)가 장착된 모델이다. 이베코의 덤프트럭 모델은 물리적으로 기어의 탈착과 결착이 이뤄지는 자동화수동변속기를 장착했다”며 “따라서 근본적인 작동 구조와 원리 및 소요시간이 다른 두 변속기가 탑재된 차량들을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 1심 서 ‘1초 단위’ 감정 놓고 논란···2심서 0.1초 진단 데이터 제출 후에도 공방 치열
이베코 덤프트럭 변속소요시간에 대한 전문가감정은 앞서 1심에서도 진행됐다. 하지만 진단장비를 1초 단위로 샘플링하면서 실제 변속 시간과 다르게 기록상으로는 변속 예비신호가 나타나 실제 기어변속이 이뤄지기까지 2초 이상의 차이가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논란이 생겼다.
사측은 항소심에 이르러 샘플링 시간을 0.1초로 세팅한 진단장비를 사용한 자체 주행시험 데이터를 제출했다. 사측은 준비서면에서 “원고들이 1심의 감정서를 잘못 이해해 기어변속 소요 시간이 언제나 2초를 초과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샘플링 시간을 0.1초로 세팅해 주행 실험을 진행했다”며 “초 단위 미만의 변속능력이 (1심에서의) 감정 당시 주행데이터에 확인되지 못한 것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도리어 소비자 측은 변속소요시간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는 입장이다. 사측은 1초 단위 소요시간을 반박하기 위해 자료를 제출했는데, 결과적으로 소비자가 0.1초를 기준으로 한 전문가감정을 재차 신청할 근거를 준 것 이라는 주장이다. 2심 재판부는 0.1초 단위로 기록·저장하는 측정 장비로 변속소요시간을 조사할 필요성을 인정하고 추가적인 ‘전문가감정’ 명령을 내렸다.
소비자 측 대리인은 “잘 포장된 주행시험장에서 진행된 정속주행 실험에서도 변속지연이 28차례 중 15차례 발생했는데, 가속과 감속을 반복하는 실제 도로 주행에서는 훨씬 많은 변속지연이 발생할 수 있다”며 “사측으로부터 0.1초 세팅이 가능한 진단 장비를 제공받아 이 사건 차량에 변속지연이 얼마나 빈번하게 발생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길게 발생하는지 전문가감정을 통해 확인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 1심은 소비자 패소 결론···“변속기어 하자 등 입증 불완전”
이베코의 덤프트럭은 이미 제작결함에 의한 시정조치(리콜)가 이뤄진 바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017년 9월 이 사건 덤프트럭과 같은 모델의 덤프트럭에 ‘특정 기어단수에서 출력부족, 변속 지연 등으로 인하여 시동꺼짐 현상이 발생했다’고 보고 사측에 제작결함 시정조치를 내리기로 결정했다.
사측은 같은 해 11월 국토교통부에 당시까지 판매된 덤프트럭 309대에 대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한다는 제작결함 시정조치 계획서를 제출했다.
소비자인 이 사건 원고도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받았으나, 기어변속 이상 증상이 개선되지 않았다며 이번 소송까지 제기했다. 실시된 리콜이 부적정했다는 주장이다.
원고는 1심에서 패소했다. 1심 재판부는 “이 사건 덤프트럭에 대한 품질보증서에는 ‘덤프트럭의 하자가 부품의 재질 또는 제조상의 결함에 의한 고장임이 기술적 분석에 의해 밝혀진 경우 피고(사측)가 수리 등의 보증책임을 부담한다’고 명시돼 있다”면서도 “원고(소비자)가 주장하는 기어변속 현상이 이상현상인지, 즉 이를 결함으로 볼 수 있는지, 나아가 그러한 기어변속이 시동 꺼짐의 원인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기술적 분석에 의해 밝혀진 바 없다”고 판단 한 바 있다.
1심에서 이뤄진 1초 단위 감정에 대해서도 1심 재판부는 “감정인은 원고들이 제출한 자료 등을 바탕으로 ‘이 사건 덤프트럭에 변속기어 이상 및 시동꺼짐 현상이 간헐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을 단정적으로 배제하기 어렵다’는 취지의 감정의견을 개진했다”면서도 “덤프트럭에 기어변속 이상 등이 현존한다기 보다는 그 발생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정도의 의견으로 이해함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원고가 이 사건 덤프트럭에 변속기어 이상 등의 하자가 있는지에 대한 증명책임을 다했다고 보기어려우므로, 하자가 있음을 전제로 한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항소심에서 0.1초 단위로 측정하는 추가 감정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감정결과에 근거해 항소심 재판부가 어떠한 판결을 내릴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