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주택 등 주택 부문 예산 줄줄이 삭감
오 시장, 시의회 공개 비판···갈등 극에 달해
35층 규제 폐지 등 공약 실현 위해선 협치 필수

오세훈 서울시장과 서울시의회 간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오세훈표’ 주택 공급 계획에 빨간불이 켜졌다. / 그래픽=시사저널e DB
오세훈 서울시장과 서울시의회 간 갈등이 새해에도 이어지면서 앞으로 추진될 오세훈표 주택공급 계획도 차질을 빚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 그래픽=시사저널e DB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오세훈 서울시장의 주요 개발 정책이 서울시의회에 발목을 잡힌 모양새다. 시의회가 지천 르네상스와 상생주택 등 오 시장의 역점 사업 예산을 줄줄이 삭감하면서다. 이후 오 시장이 시의회를 공개 비판하고 시의회가 오 시장의 주장을 전면 반박하면서 날 선 공방전이 이어지고 있다. 양측의 갈등이 지속될 경우 35층 규제 폐지 등 시의회와 협의가 필요한 부동산 정책들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11일 서울시와 업계 등에 따르면 오 시장은 최근 정책 관련 예산들을 줄줄이 삭감한 시의회를 향해 연일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는 지난 10일 자신의 SNS에 “지천 르네상스 사업이 올해 본격적인 시작을 앞두고 암초에 부딪혔다”며 “민주당 시의원들이 사업 추진 의도를 왜곡하고 ‘오세훈표 사업’이라는 정치적 딱지를 붙였다”고 날을 세웠다. 이어 “시민을 위한 저의 고민과 노력이 정치 논리에 묻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발표된 지천 르네상스 사업은 서울 내 70여개 지천을 생활권 수변공간으로 개발해 주거지 개선과 연계하는 사업이다. 15년 전 오 시장이 추진한 ‘한강르네상스’의 후속격이다. 시는 올해 예산으로 75억원을 편성했지만 시의회 심의 과정에서 60억원(80%)이 삭감됐다. 오 시장은 “여가와 문화생활에 대한 시민의 수요는 나날이 커지는데 제가 서울시장으로 있는 동안에는 지천을 방치해야 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오세훈표 ‘스피드 주택공급’ 정책의 한 축을 맡은 상생주택도 예산 삭감으로 발목이 잡혔다. 상생주택은 서울시가 방치된 민간 토지를 빌려 짓는 장기전세주택 사업이다. 시내 전화국, 주유소, 대형마트 유휴 부지 등이 후보지로 거론됐다. 시는 2026년까지 3120가구 공급을 목표로 올해 70가구를 시범 공급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관련 예산은 당초 41억원에서 1억500만원으로 원안 대비 97% 감소했다. 사실상 전액 삭감된 탓에 올해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에 출자해 상생주택 시범 사업을 추진하려던 계획은 제동이 걸렸다. 오 시장은 지난 7일 “상생주택 예산 삭감은 ‘월세 난민’의 아픔을 공감한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결정”이라며 서울시의회를 비판했다.

시의회는 오 시장의 주장에 즉각 반박에 나섰다. 김인호 서울시의회 의장은 본인의 SNS에 “오 시장의 주장은 방향을 잘못 잡은 오발탄이다”며 “오 시장은 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상생주택 관련 예산 삭감을 수용했고 복원해달라는 일체의 요청조차 없었다”고 글을 올렸다. 지천 르네상스와 관련해선 “해당 사업에 대한 기본구상이나 타당성 조사도 없이 시장 방침에 따라 무작정 편성된 예산안을 그대로 수용할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양측의 갈등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오 시장이 지난해 취임할 때만 해도 시와 시의회는 협치를 주장하며 좋은 관계를 형성하는 듯했다. 오 시장은 취임 첫날 시의회를 찾아 “협력의 1년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시의회 민주당 역시 “원칙 있는 시정엔 적극 협력하겠다”고 화답했다. 하지만 오 시장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공약 사업과 ‘서울시 바로 세우기’를 추진하며 고(故) 박원순 시장 지우기에 나서 시의회와 마찰을 빚었다. 지난해 연말 시의회가 오 시장의 주택관련 부문 사업 예산을 줄줄이 삭감하면서 갈등은 극에 달한 모양새다. 그나마 민간의 큰 호응을 얻은 신속통합기획이 삭감을 면했다.

시장에선 양측의 갈등이 봉합되지 않을 경우 오 시장의 다른 부동산 정책들도 힘을 받기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선거 공약으로 내세웠던 ‘층고제한 폐지’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2013년 마련된 층고 제한 규제는 제3종 일반주거지역은 35층 이하, 한강 수변 연접부는 15층 이하로 층고를 제한하는 내용이다. 오 시장은 주택 공급 물량 확대와 사업성을 높이기 위해 층고제한 규제를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핵심 주택 공급 정책인 신속통합기획에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층고제한 규제를 폐지하는 내용은 시가 발표를 준비 중인 ‘2040 도시기본계획’(2040 서울플랜)에 담길 예정이다. 

하지만 2040 서울플랜은 시의회 협조 없이는 실현되기 어렵다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수립 절차에 ‘서울시의회 의견청취’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의결사항은 아니지만 빠른 추진을 위해선 시의회와 손발을 맞춰야 하는 상황이다. 이 밖에도 시의 5년간 도시계획이 담긴 ‘서울비전 2030’을 수행하기 위해서도 시의회 심의를 받아야 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오 시장이 취임할 때만 해도 과거의 악연은 잊고 서로 상생과 협치를 하자는 분위기였으나 지금은 대립이 극에 달했다”며 “각종 부동산 정책에서 시와 시의회가 맞부딪히는 자리가 많아 대치 상태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6월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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