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래프톤 직장내 괴롭힘 신고…당국 등 조사 중
관리자의 막강한 권한 견제 못해…업계 전반 문제
과중한 업무 및 고용 불안…인재를 보는 시각 차이
[시사저널e=이하은 기자]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된 지 2년이 됐지만, 포털·게임 업계 등은 여전히 몸살을 앓는다. 네이버에 이어 크래프톤도 최근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접수돼 관계당국과 회사가 조사에 나섰다. 업계는 단순히 한사람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25일 IT업계에 따르면 크래프톤 일부 직원들은 A유닛장과 B팀장의 지속적인 갑질에 시달렸다며 사내 인사팀에 고충 신고를 했다. 이들 중 일부는 변호사를 선임해 서울동부고용노동지청 신고도 했다.
신고내용에 따르면 A유닛장은 “앞으로 업무가 늘어날 것이니 더 쥐어짜야 한다”고 했으며 회사가 보장한 반일 휴가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또 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한 직원에게 전화부스로 출근해 업무와 식사를 해결할 것을 종용했다.
◇ 네이버에 이어 크래프톤도 상사 갑질 이슈
B팀장은 “내가 마음만 먹으면 당신 일하는 동안 숨 막히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하거나 이명 때문에 업무를 줄여달란 요청에 “인사고과에 불이익 줄 수밖에 없다”고 협박했다.
크래프톤 관계자는 “신고 접수 후 즉각 조사를 진행하고, 구성원을 보호하기 위해 유급휴가를 제공해 공간을 분리했다”며 “외부 노무사를 고용해 양측의 입장을 모두 확인하는 단계다. 조사가 완료되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신고 처리와 조치 규정에 대해 “구성원 보호를 위해 말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서울동부고용노동지청이 해당사건을 조사 중이다. 조사가 끝나면 고용노동부가 자료를 제출받아 사후조치를 검토할 예정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조사가 진행 중인 사안으로 아직 지청으로 연락받은 것은 없다”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만한 사건이나 중대한 위법 행위라고 판단되면 특별감독에 들어간다. 노동법 전반을 위반했는지 조사하고 사법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전했다.
앞서 네이버도 개발자가 직장 상사의 갑질에 못 이겨 극단적인 선택해 사회에 충격을 줬다. 25일 네이버는 자체 진행한 조사결과 일부 임원의 직장 내 괴롭힘 행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최인혁 최고운영책임자(COO)의 사의를 수리할 것을 밝혔다. 고용노동부는 이 사건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하면서 특별감독을 기간을 2주 연장했다.
◇ 무소불위 권한의 관리자…구조적 결함 드러나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용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 이후 신고건수는 총 9788건이었다. 이 중 IT기업을 포함한 정보통신업은 377건으로 전체의 3.7%로 집계됐다. 다만, 네이버에서 단 한 건의 신고도 없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숨겨진 사례는 더욱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실제 화섬식품노조 IT위원회가가 지난해 10~11월 판교 지역에서 조사한 ‘IT 노동자 노동환경 실태’에 따르면 응답자 809명 중 47%가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거나 목격했다고 답했다.
IT·게임 관계자들은 ‘사적 문제’가 아닌 ‘구조적 결함’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관리자에게 쏠린 과도한 권한과 견제장치가 없는 것을 문제 삼았다.
관리자가 가진 권한은 근태관리부터 인사까지 광범위하다. 특히 인사권한은 승진과 인센티브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막강하다. 스톡옵션 회수 권한도 주어진다. 반면, 팀원이 관리자를 평가하거나 제재하는 시스템은 없다.
오세윤 네이버노조(공동성명) 지회장은 “조직장에 ‘잘못 찍히면’ 1년 한해를 날리는 것”이라며 “창업자들은 본인의 말을 잘 듣는 소수에게 권한을 부여한다.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소수 권력에 의해 돌아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승욱 화섬식품노조 IT 위원장은 “조직장의 과도한 권한에서 비롯된 문제”라며 “조직장의 말이 회사의 지침보다도 세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이 전체적 IT 업계의 특징”이라고 지적했다.
◇ “직원을 컴퓨터 부품으로 보는 인식도 문제”
크래프톤은 올해 파격적인 연봉인상으로 ‘꿈의 직장’으로 불렸다. 인재를 대우한다는 평가도 받았다. 그러나 일부를 제외하면 고용불안과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는 등 ‘부품’ 취급을 받는다는 불만이 나온다.
고생 끝에 성공한 창업 멤버들은 조직원들에게 ‘열정’을 강요한다. 조직원들과의 괴리가 여기서부터 나타난다.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이 중앙일보에서 한 인터뷰에서 인식의 차가 분명히 드러난다.
장 의장은 “나는 20대 때 2년 동안 주 100시간씩 일했다.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다. 스타트업에는 그런 사람들이 꽤 있다”며 “중국은 200~300명이 야전침대를 놓고 주2교대 24시간 개발해 모바일 게임을 만들어 낸다”고 말했다. 크래프톤은 포괄임금제를 도입해 업무 강도가 높다는 것이 내부 평가다.
고용불안으로 직원들의 근속연수가 짧아 노조가 설립되지 못한 것도 기업문화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크래프톤은 고용인이 1200여 명에 달하지만 노조가 설립되지 않았다. 노조를 둔 게임사는 넥슨(스타팅포인트), 웹젠(위드), 스마일게이트(SG길드) 정도다.
고용이 불안한 원인은 게임업계 독특한 제도에서 비롯된다. 게임사는 프로젝트 단위로 게임을 개발한다. 개발이 무산되면 프로젝트 소속 직원들은 리부트팀으로 배정돼 사내 면접을 치르게 된다. 불합격하면 대기하는 곳도 있지만 해고로 이어지는 일도 빈번하다. 정규직으로 입사했지만, 사실상 비정규직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게임업계에 따르면 프로젝트가 무산되지 않고 생존할 확률은 10% 남짓이다.
크래프톤 역시 고용불안으로 직원들의 불만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정보 플랫폼 잡플래닛에는 “해고의 명가” “고용불안에 방점을 찍은 회사”라는 평가가 심심치 않게 올라와 있다. 어떤 이용자는 “큰 결심하고 크래프톤으로 이직했는데, 프로젝트 드랍으로 1년 만에 퇴사했다”고 전했다.
서 위원장은 “인재를 대우한다고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인재의 범위는 매우 좁다”면서 “당국이 회사의 내부처벌을 강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회사에서 인력을 확보하고 제대로된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