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개인고객 관련 지표 실적 평가에서 제외 요구···사측 “경영진 고유 권한”
노조비판 이메일 논란으로 관계 악화···중노위 조정 결과따라 쟁의행위 가능성도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및 기업은행 지부 관계자들이 지난 18일 청와대 앞에서 윤종원 기업은행장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사진=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및 기업은행 지부 관계자들이 지난 18일 청와대 앞에서 윤종원 기업은행장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사진=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시사저널e=이기욱 기자]코로나19발 경제 위기 상황에서 중소기업 지원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해야할 기업은행이 노사갈등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기업은행 노사는 최근 임금·단체협상 과정에서 경영평가제도 개선 여부를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으며 중앙노동위원회 노동쟁의 조정 절차도 진행 중이다. 조정회의 결과에 따라 노조 측이 쟁의행위에 나설 가능성도 있어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지원 업무 차질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기업은행 노사, 21일 중노위 2차 조정회의 진행···경영평가제도 개선 여부 쟁점

21일 업계에 따르면 기업은행 사용자 측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기업은행지부(이하 기업은행 노조)는 이날 오후 중노위에서 2차 노동쟁의 조정회의에 참석해 논의를 진행 중이다. 앞서 지난 4일 기업은행 노조는 임단협 결렬을 선언하고 중노위에 교섭 조정을 신청한 바 있다. 1차 조정회의는 지난 17일에 열렸으며 당시 중노위는 기업은행 노사가 3일동안 집중교섭 기간을 가지고 상호 성실하게 교섭에 임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기업은행 노조는 지난 18일 청와대 앞에서 윤종원 기업은행장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하며 사측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이기도 했다.

현재 기업은행 노사 양측은 경영평가제도 개선 여부를 놓고 가장 첨예한 갈등을 보이고 있다. 노조 측은 내년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에 맞춰 개인고객 관련 지표를 직원들의 실적 평가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주로 중소기업 사업주들을 통해 개인고객들을 유치해왔던 기업은행의 영업방식이 앞으로는 불법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조장할 수 있는 개인고객 관련 평가가 없어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형선 금융산업노조 기업은행지부 위원장은 “대출 이자와 한도 등을 결정할 수 있는 은행이 중소기업 사장들에게 직원들의 계좌를 걷어오게 하는 등의 행위는 권유라는 형식으로 이뤄졌다고 해도 사실상 강압”이라며 “사실상 중소기업 사장들이 은행의 영업사업이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내년 금소법 시행 이후에는 이러한 행위들이 현행법 위반이 될 수 있다”며 “이러한 불건전영업행위를 없애기 위해서는 개인 고객 계좌 수 등 머릿수 채우기식으로 (실적을) 평가하는 행태가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금소법의 취지도 그런 것이기 때문에 시대적 흐름에 맞춰 나가자는 입장”이라며 “(평가제도가 개선되면) 중소기업 지원이라는 기업은행 본연의 역할에도 더욱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기업은행 사측은 경영평가 제도 관련 내용을 임단협 교섭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이 경영진 고유 권한 침해에 해당한다는 입장이다. 직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임금이기 때문에 임단협부터 우선 마무리하고 경영평가 제도 관련 갈등은 다른 절차를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임단협은 직원들의 처우개선을 다루는 자리”라며 “경영진의 고유 권한 중 하나인 평가제도를 임단협에서 논의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이어 “사측도 경영평가제도 개선을 위해서 영업점 직원들을 대상으로 전체 조사를 진행하는 등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며 “조사 과정에서 관련 문제를 공론화한다면 노조도 얼마든지 논의에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종원 vs 노조’ 대립관계 1년째 지속···파업시 중소기업 피해 우려

윤종원 기업은행장과 노조의 대립 관계도 이번 임단협의 걸림돌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기업은행 노조는 올해 초 윤 행장의 취임 당시 청와대의 낙하산 인사를 비판하며 약 한 달간 출근저지 투쟁을 벌여온 바 있다. 당시 노사 양측은 ▲노조추천이사제 적극 추진 ▲노조가 반대하는 임금체계 개편 추진 불가 등의 내용을 합의하며 사태를 일단락 지었지만 그 이후에도 윤 행장과 노조는 크고 작은 갈등을 빚어왔다.

지난달 말에는 노조와 소통을 담당하고 있는 전규백 경영지원그룹 부행장이 이메일을 통해 노조를 공개적으로 비판해 논란이 된 바 있다. 당시 전 부행장이 “노동조합이 억지를 쓰고 불법을 저지르며 예의에 어긋난 행동을 하고 있다”고 지적하자 노조는 즉시 성명서를 통해 “윤종원 기업은행장이 임원 서신을 통해 금융노조와 기업은행지부를 ‘법과 상식에 벗어난 예의 없는 행동’을 하는 집단으로 매도했다”고 반발했다.

김형선 위원장은 “노조를 부행장 서신명의로 그렇게까지 비난한 사례는 한 번도 없었다”며 “‘예의 없다’라고 하는 것은 아랫 사람들한테 하는 말인데 이는 윤 행장의 노사관이 어떤지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청와대 경제수석 출신이라는 계급의식이 내재돼 있다보니 노사간 관계가 악화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향후 기업은행 노조는 조정회의 결과, 교섭 여부 등을 살펴본 후 대응 방안을 결정할 예정이다. 최악의 경우 파업 등의 쟁의행위가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김 위원장은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경우 조합원 찬반 투표를 해야할 것으로 보인다”며 “문재인 정부의 낙하산 인사를 비판하고 윤종원 행장의 조직파괴 행위를 규탄하는 파업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코로나19 장기화로 금융지원이 절실한 중소기업이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윤종원 행장이 직접 경영진 회의에서 ‘(노조는) 같이 가야되는 관계기 때문에 최대한 협조해야 한다’고 지시한 바 있다”며 “소통을 위한 노력은 지속적으로 이어오고 있으며 앞으로도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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