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 가치주 펀드들 저조한 성과에 설정액도 감소세
가치투자 상징적 인물들도 일선에서 물러나
가치주 시대 다시 올 수 있을 지 의견 분분
가치투자를 앞세운 운용사들이 성장주와 직접투자 선호 현상에 큰 도전을 맞았다. 대표 펀드들의 설정액 감소뿐만 아니라 가치투자 시대를 열었던 스타 펀드매니저 출신들의 퇴장이 이어졌다. 투자 패러다임 변화에 이들 운용사의 위기가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예측이 있는 반면 성장주 거품이 걷힐 때 다시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9일 자산운용업계에 따르면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가 최근 한국금융지주 측에 사의를 밝히면서 업계가 술렁인다. 2006년 창립 멤버이자 최고투자책임자(CIO)로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전성기를 이끌었던 인물인 데다 한국 주식 투자 시장에 가치투자 문화를 뿌리내리게 한 상징적인 투자자로 평가받는 까닭이다.
특히 그의 용퇴를 두고 가치투자 하우스 위기와 연결짓는 해석도 나온다. 현재 주식 시장은 확정되지 않은 미래 성장성을 바탕으로 높은 수익을 거두려는 성장주 투자가 각광을 받는다. 반면 측정 가능한 내재적인 가치에 집중하는 전통 가치 투자는 주식 시장에서 큰 성과를 내지 못한다.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한국밸류10년투자증권투자신탁1호(주식)(모)’의 올해 수익률은 -0.08% 수준이다. KB자산운용 ‘KB 밸류 포커스 증권자투자신탁(주식)(운용)’과 신영자산운용의 ‘신영마라톤 증권자투자신탁(주식)운용’도 각각 4.66%, 14% 수익률을 보였다. 이는 같은 기간 코스피 상승률인 24.64%에 미치지 못한다.
성과가 나오지 않다보니 설정액도 감소세다. 한때 설정액이 1조원6000억원에 이르렀던 ‘한국밸류10년’ 펀드는 이달 8일 기준 3977억원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지난 2015년 설정액이 1조원에 가까웠던 ‘신영마라톤’ 펀드 역시 최근 5400억원 수준으로 줄었다. 펀드평가사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가치주 펀드 92곳에서 연초 이후 1조9148억원의 자금이 유출됐다. 성장주 펀드라 할 수 있는 4차산업 펀드, IT 펀드, 헬스케어 펀드 등에 자금이 각각 1169억원, 6647억원, 4268억원이 유입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일부 자산운용사에서의 가치투자 관련 조직 축소 움직임도 차가운 현실을 반증한다. KB자산운용은 지난 9월 ‘밸류운용본부’를 ‘밸류운용실’로 축소 개편했다. 밸류운용본부는 KB자산운용을 가치투자 하우스로 부각시킨 최웅필 전 KB자산운용 밸류운용본부장이 이끌던 조직이다. 하지만 최 전 본부장이 퇴사를 결정한 이후 곧바로 조직 개편에 나섰다.
산업 구조 변화와 직접 투자자 증가에 따라 향후 가치주 투자를 내건 운용사들의 위기감은 더욱 고조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4차산업과 친환경 등 구조적 성장이 예상되는 산업에 글로벌 자금이 몰리면서 성장주에 대한 프리미엄이 더욱 높아질 것이란 분석이다. 여기에 펀드를 통한 간접 투자보다는 직접 투자에 나선 투자자들이 많아지면서 운용업계는 전반적으로 수요 감소 우려에 놓였다. 이에 전통적인 가치 투자를 내건 펀드의 외면 현상은 더욱 짙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성장주의 버블 우려에 가치주가 다시금 각광받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현재의 경우 성장주들이 많은 관심을 받고 있지만 모든 기업이 결과를 내놓지 못해 결국 버블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가치주와 성장주를 깔끔하게 나눌 수는 없지만 성장주에 버블 우려가 생기고 그동안 내재가치 대비 주가가 많이 오르지 못했던 종목들이 주목받기 시작한다면 가치주 펀드들이 다시금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