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환·정진행 ‘연임유력’ 평가···독보적 경쟁력 자랑한 윤여철 입지 흔들리나
현대차 무분규 임금동결···서열화 된 노조처우 반발심리 자극 기아차 등 반발
[시사저널e=김도현 기자]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취임 후 정몽구 명예회장 측근들의 거취가 주목받는 가운데, 노무전문가 윤여철 현대차 부회장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차례 용퇴했다가 정 명예회장 요청으로 현업에 복귀한 윤 부회장은 금년에도 현대차와 무분규 기본급동결 협상을 이끌어내며 저력을 과시했다. 문제는 현대차를 제외한 타 계열사들이었다. 임금인상과 더불어 ‘양재동 가이드라인’을 철폐하라며 더욱 회사를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 부회장 거취도 이번 협상타결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나온 이유다.
양재동 가이드라인이란 노조서열화를 뜻한다. 그룹에서 현대차를 가장 상위단계에 올리고, 기아차·현대모비스·현대제철 및 기타 부품계열사 순으로 차등 대우하는 그룹의 풍토를 노조가 명명한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그간 이 같은 가이드라인의 실체가 없다고 반박했지만, 암묵적으로 지켜져 온 일종의 ‘룰(rule)’ 이라는 게 그룹 안팎의 공통된 전언이다.
가령 현대차 임금인상률이 10%라 가정할 때, 동일하거나 다소 낮은 수준으로 기아차 인상률이 정해진다. 마찬가지로 현대모비스·현대제철 등의 경우 기아차보다 낮은 인상률을 받아들여야 하며, 하위 등급에 속한 계열사들 역시 같은 방식의 인상률이 정해지게 된다. 노조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수년의 각 계열사 임금 인상률은 이 같은 체계아래 정해졌다.
같은 그룹이라 할지라도 노사관계는 각 법인(계열사)과 노조가 합의하게 돼 있다. 양재동 가이드라인이라는 뜻은 결국 개별 회사에 그룹이 마지노선을 지정해줌과 다름없다. 노조에서는 이를 두고 ‘윤여철 가이드라인’이라 규정하기도 한다. 현대차 노무담당총괄 윤여철 부회장 체제에서 유지돼 온 가이드라인이란 뜻에서다.
매년 현대차그룹 임직원들은 현대차와 노조의 협상에 주목했다. 해당 협상이 도출돼야 각 계열사 협상이 본격화되고, 현대차의 인상률을 통해 각 계열사의 인상률 역시 가늠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매년 반복돼왔지만 유독 올해 극심한 반발을 사게 된 것은 현대차노조가 기본급 동결에 서명했기 때문이다.
자연히 그룹의 가이드라인은 후퇴될 수밖에 없었고, 기아차를 비롯한 타 노조들은 이에 수긍할 수 없다며 공동대응에 나서기 시작했다. 노조는 정 회장에게 새로운 노사관계 정립을 주문하며 양재동 가이드라인의 철폐와 소위 ‘윤여철 사단’이라 불리는 윤 부회장과 현행 현대차 노무담당 임원들의 물갈이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윤 부회장은 현대차그룹 부회장단들 중 가장 전문성 있는 인사로 손꼽혀왔다. 현재 현대차그룹 부회장은 윤 부회장을 비롯해 김용환 현대제철 부회장, 정진행 현대건설 부회장,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등 4인이다. 정몽구 명예회장의 사위 정태영 부회장을 제외한 3인의 경우 정 명예회장 시대의 대표적인 측근들로 분류된다.
정의선 회장 체제로의 전환 과정에서 매년 이들 부회장 3인의 거취가 불분명하다는 전망들이 지속됐으나, 3인은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다만, 세력약화는 불가피했다. 정 명예회장 시절 확고한 2인자로 군림했던 김용환 부회장의 경우 현대제철로 옮긴 뒤 경영에 크게 개입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지며, 정진행 부회장 역시 비슷한 평가를 받아왔다. 일각에서는 과거의 활약을 예우하고 실익을 담보해주는 일종의 보은성 인사라 칭할 정도다.
이들 두 부회장이 과거의 위용을 더 이상 뽐내지 못하고 있는 반면, 윤 부회장은 노무담당이란 직함을 유지하고 금년 현대차와의 노사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내는 등 활약을 펼쳐왔다. 다만, 이 활약이 부메랑으로 돌아와 타 계열사 노조들의 상대적 공분을 불러일으킴으로서 더 큰 숙제를 안게 된 모습이 연출되게 된 것이다. 자연히 잔여 계열사의 협상결과가 추후 윤 부회장의 행보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란 관측이 나오게 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새로운 정의선 회장 체제가 본격화됨에 따라 그룹 내부에서도 노무관계에 대한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이를 달리 해석하면 윤 부회장으로 대표돼 온 과거의 노무전략에도 수정이 필요하다는 의미인데, 자연히 전략의 중추였던 윤 부회장 입지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귀띔했다.
이어 “윤 부회장 역시 임원직 연장에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을 것”이라면서 “윤 부회장과 달리 김용환·정진행 부회장의 연임 가능성은 오히려 높게 점쳐지고 있어, 정의선 부회장 체제가 가속화될 때마다 본인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가장 장기간 보직을 옹립할 수 있을 것이란 윤 부회장을 향한 평가와 전혀 다른 분위기가 최근 감지되는 추세다”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 23일 현대차 계열사 노조들은 공동성명을 통해 “총수 교체가 이름만 바뀌는 게 아니라 그룹의 고질적 관행과 노사관계의 경직이 바뀌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기아차 노조는 25일부터 부분파업에 돌입했으며, 현대제철·현대로템·현대위아 등도 노조 투표를 통해 파업권을 확보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