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공수처법 악용, 가동 자체 저지돼”···김태년 “개정 작업 본격 착수”
주호영 “부적격 인사 추천 후 강요해”···25일 법사위 법안소위 병합심사 전망
[시사저널e=이창원 기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후보 선정이 끝내 불발되면서 공수처법 개정 여부에 관심이 모아진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공수처 연내 출범’ 목표를 재확인하며 이를 위해 공수처법 개정작업에 본격 착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다.
반면 국민의힘은 강하게 반발하면서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저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어 한달 여 남은 국회 일정 동안 진통이 전망된다.
민주당은 19일 공수처법을 개정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조속한 공수처 출범이 절실한 상황에서 야당의 ‘지연작전’을 더 이상 괄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이날 당 소속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들과 긴급간담회를 열고 “소수 의견을 존중하려고 했던 공수처법이 악용돼 공수처 가동 자체가 저지되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며 “공수처법의 합리적인 개선을 법사위에서 국회법 절차에 따라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13일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회가 3차 회의에서 공수처장 후보를 확정짓지 못하고 사실상 활동을 종료한 것은 야당의 ‘비토권 악용’에 따른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번뿐만 아니라 다음을 위해서라도 소수 의견은 존중하되 공수처 구성과 가동이 오랫동안 표류하는 일은 막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실제 민주당은 이날 공수처법 개정 작업 관련 방침을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발의된 김용민·박범계·백혜련 민주당 의원의 개정안과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의 개정안을 오는 2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소위에서 병합심사하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거쳐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 상정해 처리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이제 중대 결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본격적으로 공수처법 개정 작업에 착수하겠다”며 “무슨 일이 있어도 공수처는 연내 출범시킬 것”이라고 못박았다.
야당을 향해 그는 “공수처장 중립성과 독립성 보장을 위해 7명 위원 중 6명 이상 찬성하는 합의제에 가까운 추천 절차를 마련했으나, 아무리 훌륭한 제도도 악용하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는 것을 야당 스스로 증명했다”며 “더 기다린다고 야당의 반대와 지연 행태가 개선될 여지가 없어 보인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공수처법 개정안에는 정당 추천위원 배제, 비토권 악용 방지 등 내용이 주 골자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구체적으로 정당 추천위원 추천이 지연될 경우 국회의장이 학계 인사를 지명하는 방안과 의결정족수를 현행 ‘추천위원 7명 중 6명 찬성’ 부분을 ‘추천위원 2/3 이상 찬성’ 등으로 완화하는 방안들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같은 움직임에 국민의힘은 즉각 반발하고 나서는 분위기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민주당이 공수처법 개정을 추진할 경우) 우리 나름대로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동원해 반대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자기들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처장을 임명하기 위해 제대로 시행해보지도 않은 법을 또 바꾸겠다고 한다”며 “참 후안무치(厚顔無恥, 낯가죽이 두꺼워 부끄러움이 없다)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부적격인 사람들을 추천해놓고, 그중에서 반드시 골라야 한다는 강요가 어디에 있나”라고 반문하면서 “법치주의 파괴, 수사기관 파괴, 공수처 독재로 가는 일을 국민이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박병석 국회의장이 중재에 나서 공수처장 추천위원회를 재가동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민주당이 과반 의석 이상을 확보하고 있는 만큼 이 방법 외에는 공수처법 개정을 저지할 수 있는 방법은 현실적으로 없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하자 정치권에서는 이변이 없는 한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공수처법 개정안이 통과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민주당 관계자는 “지난 20대 국회에서 공수처법이 통과됐고, 이에 따라 진즉에 공수처가 출범됐어야 했지만 우리당은 야당을 기다려줬다”며 “그동안 충분히 논의했고, 심지어 공수처법 처리 과정에서도 상당한 기간 토론이 있었다. 더 이상 공수처 출범을 지연시킬 명분이 야당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추천위원회를 재가동하자는 야당의 주장은 추천위원회의 1~3차 회의의 모습을 반복하겠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며 “같은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도 공수처법의 개정은 더욱 필요해 보인다”고 부연했다.
다만 한국당 관계자는 “공수처가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공룡조직’이라는 점에서 어느 때보다 신중해야 하고, 국민들도 이를 우려하고 있다”며 “민주당이 의석수를 무기로 일방적으로 개정할 수는 있겠지만, 여야의 합의가 부재한 공수처법 개정 시도는 국민적 저항을 이끌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울러 “중요한 것은 공수처의 조속한 출범이 아니라 온전한 중립적 기구로 시작할 수 있도록 올바른 공수처장을 세워야 하고, 이를 위해 민주당은 자신들의 추천 후보를 물리적으로 강요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고 지적했다.